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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롱혼 Jan 05. 2024

때가 있나니 아끼지 말지어다

지금 그 역할에 충실하라 하신다


베란다 구석에 작년에 사다 놓은 단감이 오렌지 상자를 차지하고선 떡하니 홍시가 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마주 보는 두 눈이 서로 놀라 서있다. 내가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다는 억울한 단감의 얼굴은 빨갛다.


우리의 삶에는 때와 자리가 있다. 그래서 매년 1월 정초가 되면 모든 것을 새롭게 하려고 애를 쓴다. 기분 탓일까 갑자기 여유롭고 착하게 변한 마음이 그동안의 생활 루틴을 점검하며 계획표를 다시 붙이고 온 집안을 정리정돈을 한다. 그리고 지인들에게 새해 인사를 한다. 왜냐하면 이때를 놓치면 의미가 퇴색해지기 때문이다. 여기 어색하게 익은 단감 홍시처럼 




단감은 생으로 달짝지근 씹는 맛에 먹는 것인데 이렇게 물컹하게 누른 단맛으로 맛을 버렸으니 얼마나 억울한가 또 그렇게 되었다고 못 먹을 것 인양 집안에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있다. 안타까워 조그맣게 움츠린 놈 두 개를 골라 들고는 왜 진작에 먹지 않았느냐는 이상한 핀잔을 들어가며 쟁반에 담아 반을 가르려니 한쪽은 딱딱하고 다른 한쪽은 물컹하다. 엉겁결에 툭 터져버리니 어쩔 수 없이 요란스럽게 쭉쭉 빨며 양손에 묻혀 들고는 어쩔 줄 몰라한다. 모두 등을 돌린다. 그래도 귀한 대접을 받던 홍시다. 


어릴 적 늦가을 앞마당 땡감이나 밭에서 따온 대봉감을 짚으로 다진 틀위에 올려 고방(창고)에서 숙성시켜 추운 겨울날 한 개씩 꺼내 먹었던 고급진 시원한 홍시 맛을 잊을 수 없다. 큼지막한 홍시를 수저로 퍼먹기도 하고 찰진 놈은 들고서는 손으로 죽죽 찍어 먹기도 했다. 눈이 내려 세상이 온통 하얀 밤이면 더욱 인기를 끌던 귀한 홍시인데 지금 단감이 왜 홍시가 되었냐고 어울리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이렇게 천대를 받고 있다.


어디 단감 홍시뿐 이겠는가

다 큰 어른들이 문방구 앞에 쭈그리고 앉아 뽑기를 하고 있다면 또 청춘이 애 늙은이가 되어 뒷자리를 맴돈다면 멋있게 보이겠는가 또 새로 산 비싼 장비, 새 옷을 아낀다고 모셔만 두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마르고 닳도록 험하게 다루어야 본전을 뽑는 것 아닌가 그래서 지금. 이때가 중요하다. 지금 누릴 것이 있으면 아끼지 말고 열정적으로 누려야 한다. 


우리 모두 새해에는 단감 홍시 처럼 되지 않기 위해 지금 가진 것을 아끼지 말고 효용가치가 높을 때 마음껏 활용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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