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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롱혼 Apr 16. 2024

오므론 혈압계 믿어도 되나

고집불통이 사고를 쳤다

나이를 먹을수록 약봉지를 달고 산다는데 아직 청춘?나도 책상 위 서랍 한편에 약서랍이 있다. 혈압과 고지혈증이 함께 들어간 줄줄이 사탕? 아닌 약이 두툼한 뭉치로 들어있다. 3개월에 한 번씩 약을 타러 가는데 별도로 가방을 가져가지 않으면 약봉자를 들고 다니기가 민망스러울 정도다.


체중도 줄고 식단도 관리하고 무척 애를 쓰는데도 가족 유전력이라며 계속 약을 처방받고 있다. 거기에 의사 선생님의 한 소리를 더 듣고 온다.


'집에 혈압계가 있지요? 자주 측정해 보세요 3개월에 한 번 재는 게 좋아요? 매일 재는 게 좋겠어요?'

'네 매일 재는거요' 삐약삐약.


그래서 가정용 오므론 혈압계를 구입했었다. 고것 참 편리하게 되어있다 팔뚝에 말아 넣으면 자동으로 맥박과 혈압을 표시해 준다. 그런데 그것도 하다 보니 별 의미를 못 느끼고 측정하는 것조차 잊고 구석에 모셔두고 있었다. 그러다 이사를 앞두고 찾아내어 며칠 재보니 고장이 난 것 같다. 계속 혈압 수치가 110 근처만 나온다 심지어 어떤 날은 그 아래로 나타나 놀라게 했다. 배터리도 교체해 보고 정신 차리라고 툭툭 처 보며 이 맥없는 혈압계를 이리저리 굴려도 마찬가지다. 맛이 간 것이다. a/s센터에 이야기해보라는 아내의 잔소리에 바람이 새는가 봐 하며 버려 버렸다.


지난달 주치병원에 혈압 약을 타러 갔더니 점심시간이 끝나 그런지 사람들이 많다. 그래도 차분히 앉아 깊은 호흡을 하면서 기다렸다. 병원에 오면 혈압이 높게 오를까 봐 무의식적으로 심신을 안정시킨다 ㅎ

얼마뒤 부름을 받고 들어서니 혈압을 재보자며 다가서는데 일반 가정용 오므론혈압계로 측정하신다. 아니 이게 뭐지? 병원에서는 전통의 수동형 혈압계를 사용하는데 이래도 되나?


'선생님 혈압계가 다르네요 이것 사용해도 정확한가요?'

'그럼요 괜찮아요 공인받은 장비들이예요 가격도 저렴하니 집에서도 가져다 놓고 자주 측정해 보세요'


그 상황이 신기하여 혈압과 관리상태의 이야기 듣는것은 뒷전이고 마치 상품을 사러 온 것처럼 기기에 정신이 팔려 선생님의 양해를 구해서 들춰가며 사진까지 찍어왔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가정용 혈압계라니 신뢰가 부쩍 올라갔다. 다녀오자마자 아내에게 주저리주저리 일러바치고는 곧바로 검색에 들어갔다. 저번 것과 별반 차이 없어 보이는 가정용 오므론 혈압계다. 하지만 이것은 특별하다. 왜냐하면 병원 선생님이 사용하시고 있는 것이라 바로 구매를 했다.


며칠뒤 이사한 새집으로 배달되어 왔다. 포장을 뜯으며 병원에서도 사용하는 믿을수 있는 장비라고 몇 번을 아내에게 되풀이 이야기하며 측정 앱까지 깔고는 곧바로 측정을 해봤다


107 / 66 mmHg   71 bpm


엥??  이게뭐지? 선명한 표시에 놀랐다. 또 고장 난 것을 사 온 것 같다. 다시 측정해도 결과는 같다. 덜 조여서 그런가 팔뚝이 아프도록 꽉 조여도 이놈의 고집은 변화가 없다. 아내를 불러 측정해도 알 수가 없다. 아내는 혈압환자가 아니지 않은가 변별력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며칠을 연속 측정하다 보니 드디어 하나 높은 게 나왔다. 반갑다

129 / 77 mmHg  61 bpm


이게 반가운 것인지 모르겠지만 변별력이 있다는 증거다. 이로써 기기는 정상이고 혈압도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약을 타먹는 고혈압 환자라고 140이 넘는 것만 나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그동안 간과했다. 마음도 편안하고 매일 운동에다 식단, 체중관리까지 잘하고 있으니 혈압도 정상으로 돌아온 것을 모르고 지냈다.


그렇다면 고장 났다고 버린 혈압계는 어쩌란 말인가 억울하겠다. 아주 정상적으로 정성껏 측정을 잘해 주었는데 140을 표시 안 해준다고 기기 탓을 하고는 버려 버렸으니 말이다.


아직 내 곳곳에 자리 잡은 고정관념의 고집불통이 문제다.

이제는 주변을 믿고 장비를 믿고 사람을 믿고 나의 고집은 한번 더 의심해 보는 유연한 사람이 되야겠다.


미안하다 혈압계야 오므론혈압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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