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도 입국심사대에서 얼굴 사진 찍더니 아무것도 보지 않고 미소로 그냥 나가라 하더니만 이번에는 왜 그래셨어요.
일 년 만에 다시 가는 미국. 이제 한 번만 더한다던 아내의 짐 싸는 소리를 작년에 들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도 아이들 생각에 하나둘씩 싸는 짐은 자꾸 늘어간다. 전문가 향기로 무게를 맞춰 배분하여 4개의 짐을 꾸리고 그래도 넘치는 것은 양손 가득 업고 들고 집을 나선다.
미리 예약한 공항택시가 집 앞에 대기를 하고 친절하게 짐을 블록 쌓아 올리듯 착착 실어주시는 기사님 덕분에 편안하게 인천공항에 들어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추석연휴가 있어서 인지 아침부터 북적이는 공항은 출국하려는 긴 대기 행렬이 마치 유명 연예인 공연 입장줄 같다. 처음 본 장면이다. 떡 벌어진 입에 우리도 그 한 몫하고 있으니 중얼거리다 조용히 끝에 섰다.
역시 인천공항이다.
보는 것과는 달리 시스템이 잘되어 있어선지 줄을 선 입장에선 거침없이 술술 들어갔고 그렇게 우리들 필수코스인 KAL 라운지까지 단숨에 들어왔다. 그런데 여기서는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던 컵라면이 왜 이리 맛있냐고
드디어 탑승안내 방송에 느긋하게 의자에 앉아 기다리다 미국을 자주 다니는 아내 덕분에 쫄랑쫄랑 뒤쫓아 그룹 1로 비행기에 탑승하자 괜스레 미안한 생각에 기내 수화물 올리는 내 손이 바빠졌다. 뒷사람의 통행에 방해하지 않으려 비켜주면서 올리고 또 비켜주다가 마음 같지 않은 박자 놓친 행동에 결국 손을 다쳤고 피가 조금 흐르는 손가락을 움켜쥐고 애를 쓰다 부탁하여 받은 밴드로 둘러 감고는 예상치 않은 요란한 미국 출발을 알렸다.
비행기 안의 세상에서 빠른 낮과 밤이 몇 번 오가다 특유의 낯선 냄새를 맡으며 DFW공항에 입성하였다. 아내와 달리 외국인 줄을 선 나의 출입 심사대는 역시나 줄이 길다. 3개의 창구만 열어놓고는 나름 열일하는 직원의 모습은 무언가 거들먹거리는 용자의 모습처럼 비쳤다.
그동안 미국을 들어오며 어떤 때는 자동 출입기기를 통해 들어갔고 또 어떤 때는 안면인식으로만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다시 깐깐한 일대일 면접이다. 수군거리며 앞서 걱정하는 주변분들을 보며 싱긋 나름 당당하다. 경험상 거칠게 없기 때문이다.
역시나 질문도 없이 조용히 사진 찍고는 곧바로 지문채취로 들어갔다. 오른손 끝내고 왼손을 할 때 피 묻은 밴드를 감은 손을 치켜들었다. 어찌할까요? 무언의 질문. 대답은 그냥 하라는 눈짓을 주며 빤히 바라보던 동그란 눈으로는 재빨리 뒤적뒤적 다시 타이핑 치며 검색하는 모습에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직감이 왔다.
아니나 다를까 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왜 왔냐, 언제까지 있을 예정이냐 등등 통상 질문에서 갑자기 낯선 글을 읊어대더니 맞냐고 묻는다. 뭐지?
분명 워킹이라는 단어가 들어왔길래 잠시 궁리를 하다 NO라고 했더니 더 커진 두 눈은 열외로 서서 머무를 주소를 다시 자기에게 보여달란다. 그게 주소였어?
나도 모르는 딸네집 주소. 아내가 발권한 항공권에 적어낸 주소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딸 네 집 주소에는 뜻하지 않게도 walking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나도 잘 모르는 주소를 어떻게 찾냐고~ 이놈아.
벌을 서듯 열외로 한참을 이리저리 찾다 겨우 전화를 해서 받아낸 주소를 얼른 쫓아가서 보여 줬더니.
출입관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씽긋 웃더니 좋은 시간 보내라며 손을 흔들며 쌩큐 한다.
아마 다친 손가락이 관광 외 다른 목적으로 입국하려는 사람으로 의심받은 모양이었다. 피곤이 겹친다. 이것은 시차 때문만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어쨌거나 오래 기다린 아들 덕분에 편히 여장을 풀고 피곤함은 한 잠으로 달래고 다시 나선 맥킨리 거리는 사방 하늘과 땅이 맞닿았다. 거침없이 광활하게 펼쳐진 하늘은 발갛게 달아오른 저녁노을과 곧 비가 올 것 같은 먹구름이 한 장의 스크린에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이렇게 탁 트인 시원한 시야는 마음까지 여유롭게 해서 이번 미국여행의 활기를 뿜뿜 넣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