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입성 두 돌을 자축하면서
나의 영어이름은 Graham이다. S사에 다니면서 운 좋게 10주간 영어교육을 받으러 창조관이란 곳에 들어간 적이 있다. 오리엔테이션 끝나고 원어민 선생님께서 우리들 영어이름을 지어 주겠다며 유리 항아리를 들고 들어와서 들어 있는 메모지를 하나씩 뽑으라 한다. 그게 너의 이름이라면서 그때 뽑은 이름이 Graham인데 지금껏 내 이름으로 쓰고 있다 몇 번 매력적인 다른 것으로 바꿔 봤지만 처음 접한 그것이 내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은 미국시민이 되어 살고 있는 아들도 자기 이름은 Kyle이라 부르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처음 간 어학원에서 부여받은 첫 영어이름을 버리지 못하고 잘 간직하고 사는 것이 신기했다.
이렇게 처음 만난 인연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감정이든 애착이 간다.
오늘은 브런치스토리와 인연을 맺은 지 두 돌이 되는 날이다. 22년 11월 18일 '브런치작가 되심을 축하드립니다'라는 메일을 받았던 그 감격스럽던 날이 바로 2년 전 오늘이다. 그동안 이것저것 끄적여도 보고 폼도 잡아보고 글 흉내를 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브런치에 입스(?)가 와서 글을 중단하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혼자 쓰는 Tistory의 '롱혼의 일상' 만큼은 매일 올리고 있기에 글을 아예 내려놓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
사실 내가 쓴 두서없는 글로써 브런치 장벽을 스스로 허물지 못해 때때로 다른 곳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언젠가는 감사하게도 초대를 받고 들어가 글을 풀어놓기도 했지만 곧 다시 돌아왔다. 왜 그랬을까?
아마 그것은 브런치와 첫 만남의 애착이 너무 순수했고 강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두 돌을 맞은 오늘 다시 마음을 다독인다.
원대한 작가라는 큰 목표보다는 지금 이 순간순간 그저 글로써 나눔에 즐거움을 갖자고 한다. 만일 나에게 자유로운 시간이 생긴다면 세상과 글로써 소통하고 싶다던 오랜 희망이 찾아든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순간을 처절하게 사랑하고자 한다.
' ~ '
잠깐 아내의 심부름으로 노트북을 덮었다가 되찾은 여유에 창밖을 멍하니 내려다보니 갑자기 아파트 정원의 낙엽이 지금은 아름답지만 곧 흰 눈에 덮여 더욱 운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나도 모르게 '세월 참 빠르네~' 중얼거린다.
내게 세월은 물리적 시간의 의미가 아니라 아껴둔 기회가 다시 오지 않는 것을 말한다. 오래갈 줄 알았던 것이 늘 여유 있어 보여 나중에 해야지 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것은 시간의 토너먼트였다. 그렇게 너무 쉽게 생각하고 다음을 노렸던 시간이 그 기회마저 가지고 가버렸음을 알았을 때 세월 참 빠르다고 느낀다.
이렇듯 시간의 마지막 기회에서 만난 이 소중한 첫 인연을 매 순간순간 귀하게 여겨 늦으나마 다음에게는 결코 양보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브런치스토리와 글로서 인연을 맺고 내가 짝사랑하는 작가님들을 계속 사랑하련다.
[추신]
이제는 멀리 바라보고 목표를 잡지도 그런 희망을 추구하지도 않기로 했다. 다만 지금 당장 이 순간을 헤쳐나갈 일에 희망을 품고 즐기는 사람으로 되려 한다. 참 잘한 것 같다. - 브런치입성 두 돌을 자축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