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오늘도 환자가 안 온다. 추울 때는 추워서, 더울 때는 더워서, 선선할 땐는 농번기라고 안온다. 환자 구경을 하기가 매우 힘든다. 그러다 어쩌다 오는 환자는 물리치료만, 약만, 늘 먹던 약 그거 달라고 그러는 진상들, 의사가 의사 다운 일을 해본 적이 십수년이 넘어간다. 구멍가게 사장만도 못한 원장이지만, 동네에서는 원장님으로 통한다. 언젠가부터 고민을 했다. 환자다운 환자를 만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 환자다운 환자가 없다면 환자다운 환자룰 만들자. 일단은 멀쩡한 사람을 환자를 만들려면 상해를 입히거나 신 의료기술을 도입해야 하는데, 고의로 상해를 만드는 것은 범죄의 위험이 있으니 신 의료기술을 도입하기로 했다. 뭐 엄밀히 말해 완전한 신 의료기술은 아니고 의원급에서 하기에 꽤나 부담수러운 시술들 인 것이다. 일단 입원실을 마련하기 위해 2층 전세를 더 얻고 입원시설을 갖줬다. 그리고 나만의 의료를 시작했다.
첫 환자는 배가 아파서 온 환자였다. 청진기를 몇번 대어 보고 이것을 수술이 필요한 질병이라 설명했다. 장을 잘라내면 장으로 인한 통증이 사라질 테니 장을 잘라 내기로 했다.일단 마취를 하고 배를 가르고 보니 궤양 부위가 보였다. 그래서 과감히 궤양 부위를 잘라내고 봉합을 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간단한 약물치료로 완치 가능한 위궤양을 수술을 해 버린 것이다. 그 환자의 수술후 통증은 극심했고 결국 창상 감염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두번째 환자는 교통사고 환자였다. 하지부위 개방성 골절 화자였는데, 그냥 수술로 정복하고 봉합하는 것은 왠지 시시해 보였다.그래서 반대쪽 하지에 절개부위를 만들고 골절부위를 정복한 다음 양 하지를 봉합해 벼렸다. 환자가 쉡게 움직이지 못해 회복 기간을 단축시킨다는 것이었다. 원래는 스플린트나 캐스트로 고정을 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정석은 이미 나에게 시시했다. 뼈가 붙을 때까지 양 다리를 붙여 놓았다가 뼈가 붙었을때 양 다리를 다시 분리시키는 수술을 시행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두 다리를 붙인 자리에 진물이 나더니 농이 차기 시작했다. 항생제를 쓰며 지며 보았으나 양 하지의 심한 감염으로 하지 절단 수술을 시행해야 했고 그 환자는 불구가 되고 말았다.
세번째 환자는 손가락 열상 환자였다. 뭘 하고 말고 할 거도 없이 그냥 봉합해서 보내면 되는 환자였다. 그러나 평범한 진료를 거부한 나는 복부에 절개면을 내어 손가락의 열상 부위와 봉합해 버렸다. 복부의 절개면과 손가락의 열상부위가 아물면 다시 분리 수술을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잘 되지 않았다. 복부 절개면과 손가락 열상부위가 붙지를 않는 것이다. 그 환자 역시 손가락을 잃고 말았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자, 괴기스러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경찰에서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경찰의 압수수색이 있었는데 입원 환자들 대게가 이상한 몰골들을 하고 있었다. 얼굴에 붙어있는 손가락, 다리에 붙어있는 팔 등 그냥 보기에도 비정상 적이고 기괴한 모습들이었다.
나는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신 의료기술을 연구 중이었다고 항변했지만 의사회의 자문의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 등에 의해 묵살되고 말았다. 나는 상해 및 살인미수 드의 혐의로 25년 형을 받았다. 그리고 교도소 내에서 조직폭력배들과 친분을 쌓게 되어었고, 교도소 내의 사소한 폭력 등의 상해는 대충 내가 해결해 주었다. 그리고, 출소 후 폭력조직 전담 의사로 일하기로 약속까지 받았다.
사람이 하던 일이 지겨우면 뭔가 변칙적인 일을 고안한다거나 새로운 일을 하게 된다. 다만, 나의 글쓰는 일이 본질적으로 변칙적인 일이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