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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무 May 03. 2024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퇴사 후 본가에 내려온 후로는 시간개념이 완전히 사라졌다. 언제 왔는지 오늘이 며칠이고 무슨 요일인지 모른다. 아니 관심 없다. 이제 더 이상 매달 켈린더에 빼곡히 일정들을 쑤셔 넣고 형광펜으로 중요 표시를 하고 마음을 졸이며  기한을 맞출 필요도 없다. 지금의 나는 제멋대로 일어나 씻고 대충 손에 잡히는 옷을 입고 커피를 사서 느적느적 걷다 산책로 벤치에 내킬 때까지 한참을 앉아 시간을 보낸다. 바람을 느껴본다. 햇살을 온몸으로 만끽한다. 종종 큰소리로 시간을 알려준다. 가끔 운다. 산책 나온 강아지가 내게 오게끔 텔레파시를 보낸다. 새소리를 듣는다. 겨우 걸음마를 뗀 아이의 손인사에 다소 과하게 답한다. 할머니파마를 한 내 모습을 상상한다. 지나가던 고등학생의 대화를 엿듣는다. 고의는 없다. 그 나잇대는 마치 누가 들어도 상관없다는 듯 목청이 좋지 않는가? 아무도 없는 틈을 타 명상을 해본다. 종종 기다란 벤치를 낯선 이와 공유한다. 이때고요함을 유지하는 것은 무언의 예의이자 약속이다. 518번 버스가 몇 번이나 지나갔는지 세어본다. 슬쩍 소심한 스트레칭을 해본다. 버석한 볼에 남은 눈물자국 위로 또 숨죽여 운다. 다시 한번 내가 완전히 소진되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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