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티첼리 - 비너스의 탄생
인간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현대는 미디어의 시대이고 미디어에서는 아름다운 풍경, 아름다운 물건, 미남미녀의 이미지가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외모지상주의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물건들마저도 디자인이 훌륭하면 잘 팔린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좋아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아름다움이 주는 시각적인 쾌감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그런데 아름다움이 절대적인 기준으로 나눠질 수 있느냐 하면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대 선진국에서 아름다운 여성상은 다소 마른 체형의 길쭉한 신체에 작은 얼굴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남태평양의 전통적 미인들은 다소 뚱뚱하다고 할 정도로 풍만한 여성들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미인이 되기 위해 목을 인위적으로 늘리는 링을 착용한다. 고대 중국에선 작은 발을 가진 것을 미의 전형으로 보아 어린 소녀시절부터 여성들에게 전족을 착용하도록 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각자 나름의 절대적인 미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위의 사례들을 보면 이러한 기준은 절대적이지도, 우리 정신에 내재된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미적 기준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미디어에서 끊임없이 이러한 얼굴과 몸매가 아름다운 것이다라고 주입한다. 또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탐내는 것을 탐내는 경향이 있다. 미디어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외모를 우리도 점차 더 좋아하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양인들에게 머리가 작다는 칭찬을 가끔 한다. 그러나 정작 칭찬을 받은 서양인들은 그것이 왜 칭찬인지, 도대체 그런 말을 왜 하는지에 대해 의아해한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다른 것이다.
세뇌되다시피 한 아름다움의 기준도 때론 다른 원인에 의해 무너지기도 한다. 일본에서 20명의 남성들에게 혼인을 빙자해 돈을 뜯어내고 심지어 그중 일부를 살해한 여성의 외모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예상과는 다르게 그녀는 현대 선진국의 기준에서 보는 미인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100kg이 넘는 체구에 이웃집 아줌마 같은 평범한 외모였지만 수많은 남성을 파멸로 몰아갔다. 외모를 제외한 다른 방면에서의 남다른 매력으로 피해자인 남성들의 눈에는 점점 매력적인 모습으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첫인상은 별로지만 훌륭한 인격으로 인해 점점 잘생겨 보이거나 아름다워 보이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첫눈에 반할만한 아름다운 외모라도 그 안에 이중적이고 위선적이며 독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그 매력은 점점 반감할 수밖에 없다. 꽃의 향기는 영원할 수 없다.
시각적 아름다움만이 그 경계가 모호한 것은 아니다. 나는 음악을 듣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음악에서도 이런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까지는 선율이 아름다운 팝송, 가요,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다. 그러다 우연히 친구가 특정 밴드의 음악을 광적으로 몰두해 듣고 있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한 번 들어보았다. 메탈리카라는 메틀 밴드였는데 처음 들었을 때는 소음 그 자체였다. 이런 시끄러운 소음을 왜 저렇게 좋아하는 거지라는 궁금함에 좀 더 인내하며 들어보았다. 계속 듣다 보니 메틀 음악이 주는 강력한 힘과 본능적인 생동감,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나도 메탈리카의 매력에 빠져 들게 되고 그 이후로 다른 음악도 저버리진 않았지만 주로 메탈과 록에 빠져 젊은 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메탈리카의 공연 사진
여전히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 예전보단 확실히 시끄러운 음악을 덜 듣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요즘은 명상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때로는 명상하며 느끼는 고요가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다라는 생각도 든다.
어떤 것이 내게는 추함으로 느껴져도 다른 이들에게는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 물론 새로운 것에 적응하려면 약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것을 보았을 때 그 순간 추하다고 느껴져 얼굴이 찌푸려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그것을 무조건 거부하고 비난하지는 않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그것을 단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내가 가진 아름다움과 추함의 기준은 매우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며 시대적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 기준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것은 단지 그것일 뿐이고, 그것 자체로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모든 사물에 적용된다.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으로 이 세상이 충만하다는 사실은 나를 가슴 뛰게 만든다. 이것이 내가 언젠가 세계를 마음껏 여행하며 여러 가지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살아가고 싶은 이유이다.
이 세상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