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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공 Aug 18. 2020

[서평] 김 훈 <칼의 노래>

장군이 숨겨왔던 내면의 목소리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 맞서 조선을 지켜낸 성웅 이순신 장군. 이순신 장군을 바라보는 시각은, 한 시대에 국가를 지킨 영웅의 면모를 부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김훈 작가가 이순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뭇 다르다. 김훈 작가는 영웅으로서의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그려냈다. 망망한 대해에서 국가의 존망을, 백성과 군사들의 생명을,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전쟁을 치러내야 했던 한 사람의 생애를 그린 것이다. 기나긴 절망의 전투에서 이순신은 조정에서 버림받아 신음했고, 가족을 잃어 슬픔에 잠겼으며, 전투에서 동료들을 잃어 애달파했다. 쇠약해진 몸으로 밤새 통증을 앓느라 버거워했다.

      

  비록 소설이지만, <칼의 노래>는 이순신이 전쟁 동안 기록했던 일기와 다양한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쓰인 소설이다.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한 장수의 기록 정신 토대에 김훈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되었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책 한 권이 마치 이순신의 자전적 기록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인간 내면을 꿰뚫는 김훈 작가의 상상력은 현실적이다.

     

김훈, <칼의 노래1, 2>, 생각의 나무

  특히 전쟁 당사자가 가질 수 있는 당연한 소회로, 인간이 인간을 베는 참혹한 환경이 가져다주는 허무의 감정을 그려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왜군에 대한 적개심이 장군의 면모라면, 전쟁 앞에서 삶의 허무를 느끼는 것은 인간의 면모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 공적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인간으로서의 고뇌, 슬픔, 연민의 감정을 김훈 작가는 예리하게 포착해 낸 것이다.      


  “죽은 자는 죽어서 그 자신의 전쟁을 끝낸 것처럼 보였다. 이 끝없는 전쟁은 결국은 무의미한 장난이며, 이 세계도 마침내 무의미한 곳인가. 내 몸의 깊은 곳에서, 아마도 내가 알 수 없는 뼛속의 심연에서, 징징징, 칼이 울어대는 울음이 들리는 듯했다.”   김훈, <칼의 노래1>, 생각의 나무, 21.    


  김훈 작가가 아니라면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이렇게 잘 풀어낼 수 있었을까. 김훈 작가만이 가진 특유의 강직한 문체와 절도 있는 호흡, 그리고 풍부한 어휘들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연안 바다의 풍경을 묘사하는 대목은 문장가로서 김훈 작가의 탁월함이 느껴진다.     


  “바람이 잠든 저녁 무렵의 바다는 몽환과도 같았다. 먼 수평선 쪽에서 비스듬히 다가오는 저녁의 빛은 느슨했다. 부서지는 빛의 가루들이 넓게 퍼지면서 물 속으로 스몄고, 수면을 스치는 잔 바람에 빛들은 수억만 개의 생멸로 반짝였다. 석양에 빛나는 먼 섬들이 어둠 속으로 불려가면 수평선 아래로 내려앉은 해가 물 위의 빛들을 거두어들였고, 빛들은 해지는 쪽으로 몰려가 소멸했다.”  김훈, <칼의 노래2>, 생각의 나무,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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