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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공 Nov 02. 2020

[서평] 니체의 말

시라토리 하루히코 엮음

 철학책을 완독하기 어려운 이유는 첫째로, 철학자의 사상이 워낙 방대한 체계 속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수백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책에서 논리적 흐름을 잃지 않고 철학자의 사상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두 번째로는, 시대에 대한 이해이다. 특히 서양철학의 경우 사상의 기반이 상당 부분 기독교 신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당시 유럽에서 기독교가 가지는 위상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기독교 교리에 대한 배경 지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상의 맥락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시라토리 하루히코 엮음, 니체의 말, 삼호미디어


 세 번째는, 언어의 의미 변화에 따른 번역의 모호함이다. 같은 ‘시민’이라는 단어도 몇백 년 전의 시민과 지금 시민의 개념은 다르다. 단적으로 고대 아테네 시대에 여성과 노예는 시민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았다. 같은 단어라도 과거와 현재의 쓰임이 다르다. 더불어 라틴어와 독일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은 것도 한몫한다. 그래서 서양철학을 읽어나가는 것은 쉽지 않다.

     

 니체의 철학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접근성이 좋다는 데 있다. 니체의 사상은 장대한 체계 속에서 펼쳐지지 않는다. 장대한 체계로 자신의 사상을 정리하지 않은 것은, ‘철학을 가진다.’라는 것이 곧 자신을 획일화하는 것이라고 본, 니체 본인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 같다. 따라서 책을 펼치면, 과거 유행했던 명언 모음집과 유사한 형태로, 한 단락을 넘어가지 않는 짧은 글들이 실려있다. 이것이 정말 철학자의 책인지, 경구 모음집인지 헷갈린다. 하지만, 단편으로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짧지만 강렬한 니체 본인의 생각을 적어놓았기 때문에 읽기에 부담이 없다.

     

 니체는 기독교가 지나치게 내세적이라는 비판을 가했던 철학자라고 한다. 따라서 그의 글에종교 이야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기독교 교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니체의 글을 읽어나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서양철학과 달리 철저하게 현실 중심적인 사상이다. 내용 하나하나가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많은 생각거리를 물어다준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역시 니체의 사상 그 자체이다. 철학자라고 해서 염세적이지 않고, 자본과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는 중에,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찰이 담겨있다. 특히 내적 풍요를 위해 끊임없이 정진하고 도전하는 삶을 추구하는 대목은 힘과 의지에 대한 강한 충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니체 사상의 매력은 이 ‘힘’과 ‘의지’에 있다. 여느 철학자들이 현실을 관망하고 만족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면, 니체는 우리에게 사회로, 현실로 과감하게 나아가라는 용기를 불어넣는다.

      

 니체 전집은 한국에서 전 21권으로 출판됐다. 이 책은 다양한 니체의 저서 중에서 자신, 기쁨, 삶, 마음, 사랑...등 엮자가 새로 설정한 큰 목차 아래 니체의 글들을 발췌해서 수록해놓았다. 빠르게 읽는다면 한없이 빠르게 읽힐 것이고, 느리게 읽는다면 한없이 느리게 읽힐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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