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빛소년 Mar 30. 2024

식당에서 떠들지 않아요!

이 글은 일부 무례한 아저씨들을 비판하는 글입니다.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다면 읽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일부 공공장소에서 예의를 지키지 않는 아저씨들을 저격하는 과격하고 불편한 표현들이 이제 등장할 겁니다. 

오랜만에 친구와 하이엔드 오마카세에 방문했습니다. 정말 비싼 음식 가격에 좁은 식당에서 다른 손님들의 이야기도 듣기 싫어도 듣게 됩니다.  40대에서 50대로 보이는 중장년층의 아저씨들이 가지고 온 위스키를 마시며 사업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보아하니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면서 딱 봐도 돈 많은 호구 하나 잘 물어서 사기를 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너무 시끄러워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한 그 말입니다. 


“식당에서 시끄럽게 떠들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이 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은 어린아이가 아닌 40대 중반 이상의 아저씨들입니다. 한국은 공식적으로 선진국이 되었지만 도덕성은 쉽게 올라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부 아저씨들의 공중도덕과 예절 수준은 정말 바닥이에요. 식당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어린아이는 같이 온 보호자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중장년층의 사람의 껍데기를 쓴 무개념 아저씨들이 몰려와서 술에 잔뜩 취해 시끄럽게 떠드는 것은 답도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어도 나이가 많은 것이 벼슬입니다. 우리는 이걸 추하게 늙었다고 말하기로 했어요. 이런 사람들을 만나도 직접적으로 말려서 못 하게 하지 않으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조용히 해달라고 좋게 이야기를 해도 싸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요. 상대가 술에 취해서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죠.



한국은 이제 예의를 잘 지키는 나라가 아니라 나이가 많은 사람은 함부로 행동하고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 꼰대짓이나 하는 내로남불의 나라가 된 것 같습니다. 여기에 돈이 많다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예의에 어긋나는 어떤 행동이라도 해도 된다는 천박한 자본주의가 악성 종양처럼 뿌리 깊게 박혔습니다. 식당을 운영하는 셰프에게 말해도 소용없습니다. 한국 사회에 갑질 문화가 사람들을 지배하기 때문이죠. 돈을 주는 사람은 갑이 되고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은 을이 됩니다. 사람들의 문화와 행동양식을 법으로 규제하는 건 반대하지만 가끔은 상식에 벗어난 사람들에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벌금을 내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세대의 일부가 문제겠지만 계속 반복하여 경험한다면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대표라고 불리는 사람이 원장이라고 칭하는 사람에게 계속 일을 같이 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개저씨라는 말에 잘 어울리게 대화 주제도 천박했습니다. 가지고 온 비싼 위스키, 입고 온 운동화와 명품 바지, 고급 회원권과 골프, 20대 여자친구 이야기, 자기가 운영하는 사업체에 직원들 임금체불 이야기, 자신이 타고 다니는 고급 승용차 등 온갖 남성 우월주의와 이기주의 그리고 성희롱 이야기를 하면서 시끄럽게 떠들었습니다. 진실인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화려하고 비싼 생활수준에 대한 자기 자랑이죠. 저를 포함한 매장 안에 있던 손님들도 귓속말로 개저씨들에 대해서 욕할 정도로 불쾌한 경험이었습니다. 


너무 시끄럽게 떠든 것이 미안했는지 일행 중 한 명이 마시던 사케를 시켜서 손님들에게 한잔씩 돌린다는 꼴이 더 꼴 보기 싫었습니다. 돈이면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는 천박한 사고방식이 여기서도 느껴졌습니다. 황금 같은 금요일 저녁 다른 사람의 귀한 저녁 식사를 망치고 해야 할 일은 당장 사과 하고 입을 닫아야 하는 일인데 사회적 지능이 낮은 아저씨들은 알지 못합니다. 술을 돌리고 대충 덮으려는 모습이 진짜 더 추해 보였어요.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갈 때마다 자주 발생하는 일입니다. 한국의 일부 아저씨들은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정말 무례하다고 느낍니다. 


음식은 맛있게 먹었지만 식사를 망친 기분이었습니다. 저도 아저씨 중 하나지만 집에 오는 길에 한국의 일부 아저씨들은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생각했습니다. 과거 권위주의적인 가치가 강조되었을 때 나이가 많은 세대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당연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경제 발전을 겪으면서 한국 사회는 빠른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성공과 경쟁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경제 성장과 함께 상승 기류에 올라탄 일부 당시 아저씨들은 공격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행동으로 계속 이어졌을 것으로 봅니다. 


경제는 발전했지만 문화는 성숙하지 못했죠. 경제 발전의 과실도 다른 나라에 비해서 한국은 비정상적이고 기형적으로 부를 축적했죠. 지속가능한 형태로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기업들이 전체적으로 성장하여 노동의 소득을 주식이나 펀드 등의 금융상품으로 지속 가능하게 성장한 것이 아닌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한 부동산 투기가 전형적인 예시입니다. 경제가 위험하면 중산층이 무너지고 물가가 올라가면 서민들이 먹고살기 힘들어집니다. 소수의 부를 갖게 된 사람들이 선택받았다는 느낌으로 돈이 많으면 우월하다고 느끼는 모양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걸 싫어하는 개인주의 문화가 한국에서는 이기주의로 잘못 해석되어 개인의 행동이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다 보니까 다른 사람이 누려야 할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죠. 한국어 특성상 직설적인 표현도 많아서 더 듣기 불편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식당에서 시끄럽게 떠들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식당과 같은 공공장소는 다른 사람들과 공간을 공유합니다. 시끄럽게 소음을 내는 것과 더러운 이야기를 듣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이용 경험을 방해하고 불쾌감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식당에 방문하는 이유는 편안함과 존중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오마카세 같은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식당은 식사를 즐기거나 대화를 나누기 위해 방문하죠. 시끄럽게 떠드는 아저씨만 즐겁고 다른 사람은 즐길 수 없습니다. 식당에서의 식사 경험은 단순하게 음식을 먹는 것을 지나 분위기, 대화, 서비스의 질이 중요합니다. 손님은 불쾌하고 불편한 경험을 하면 식당에 다시 방문하고 싶지 않습니다.


공공장소에서의 행동은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를 만드는데 기여합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분위기는 긍정적이고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됩니다. 본인이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고 민폐를 끼치는데 다른 사람의 존중과 배려를 바라는 그 행동은 바로 내로남불입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개인의 행동을 조절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감의 일부입니다.


P.S. 노키즈존 보다 노(매너) 아저씨존 도입이 시급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 속의 숨은 적, 미세스트레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