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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양세계 Apr 18. 2023

수영과 힘빼기

나는 수영을 정말 못한다. 사람마다 잘하고 못하는 운동이 다르겠지만 나는 물에서 하는 운동엔 영 소질이 없는 것 같다. 어렸을 때 물에 빠졌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물에만 들어가면 무섭고 긴장되서 둥둥 떠오르는 것조차 잘 안된다. 


처음으로 수영을 배운 것은 20살 무렵이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게 재밌어서 수영을 시작했는데 같이 시작한 사람들이 자유형을 끝내고 평영으로 넘어갈 무렵까지 나 혼자 자유형 킥판을 잡고 있는 걸 깨닫고 왠지 슬퍼져서 그만뒀다. 그 뒤로 몇 년 동안 수영과 멀리 떨어져 지내다가 친구와 필리핀 보홀로 여행 가기로 계획했을 때 다시 수영장에 등록했다. 예약한 호텔에 딸린 수영장을 이용하고 싶었고 또 여행코스에 있던 스노클링을 할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다시 용기를 낸 것이다.

한동안 출근 전엔 수영, 퇴근 후에는 클라이밍을 가는 부지런한 인생을 살았(그렇게 살면 어떨 것 같은지 궁금하신가요? 하루 종일 몹시 졸리고 피곤하답니다). 몸은 피곤해도 아침에 수영하는 기분은 좋았다. 샤워하고 머리에 물기가 남은 채로 출근하는 길이면 왠지 모를 뿌듯함이 차오르면서 젖은 머리를 스치는 공기가 신선하고 상쾌하게 느껴졌다. 

힘겹게 두 달 정도 배우고 간 수영은 거북이가 보일만큼이나 깊은 필리핀 보홀의 바다에선 별로 소용이 없었다. 바닥에 발이 닿지 않으니 너무 긴장됐던 나는 생존을 위해 죽기 살기로 가이드님에게 매달렸다. 설상가상으로 대여한 스노클링 장비에 구멍이 나 있었던 터라 쉴 새 없이 물이 들어와서 제대로 숨쉬기도 어려웠다. 나는 깊고 푸른 바다 위에서 가이드님이 끌어주시는 대로 떠다니며 그냥 떠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인간관계도 수영처럼 힘을 주는 것보다 빼는 게 더 어려운 것 같다. 너무 친해지고 싶었던 사람보다는 언제 친해졌는지 잘 모를 만큼 자연스럽게 친해진 친구들과 더 오래갔던 것 같다. 힘을 뺀 적당히 느슨한 인간관계가 부담이 없어서 그런지 더 오래 가는 것 같기도 하다. 

고등학생 때도 정말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있었지만 나는 끝내 그 애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다. 그때 당시에는 그게 내 세계에서는 큰 사건이고 속상한 일이어서 다른 친구에게 심각하게 고민 상담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 왜 그렇게 마음을 쏟았나 싶기도 하다. 그냥 안 맞을 수도 있는 건데 그때 당시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기가 싫었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애도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게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서툴고 어렸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건 사실 지금까지도 받아들이기 어렵긴 하다.

내가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대체로 수줍음이 많다. 수줍음이 많은 사람과 친해지는 과정은 고양이랑 친해지는 과정과 비슷한 것 같다. 반갑다고 강아지처럼 헬리콥터같은 꼬리를 붕붕 돌리며 갑자기 다가가 버리면 고양이들은 놀라서 달아나거나 꼬리를 잔뜩 부풀리며 경계한다. 취향 저격의 사람은 희귀 포켓몬처럼 자주 발견되지 않아서 잡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만 그렇게 힘이 들어가면 되레 부담되어 놓치게 되는 것 같다. 물에 뜨려면 긴장을 풀어야 하듯 관계에서도 이완이 필요한 것 같다.


호텔 수영장에서의 배영은 성공했을까? 기어이 수영장 마감 1시간 전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야외풀장에 들어갔다.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수영장에는 개미 한 마리조차 얼씬하지 않았다. 물 위에 누워 배영하며 예전에 배운 내용을 적용해 보려고 애썼지만, 몸이 긴장해서 가라앉으며 귀로 물이 계속 들어왔다. 다행히 수영을 나보다 잘했던 같이 간 친구가 내가 물에 뜰 수 있게 도와주었다. 빠질 것 같다는 두려움을 잊고 힘을 빼니 마침내 몸이 편안해지며 잠시 떠오를 수 있었다. 차가운 수영장 물에 누우니 물색과 똑같은 파란 하늘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시린 하늘로 옅게 흩어졌다. 가만히 누워 어느 귀퉁이도 잘리지 않은 드넓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수영을 다시 배울지는 잘 모르겠다. 배영하면서 본 파란 하늘이 또 보고 싶긴 하지만 역시나 물이 아직도 무섭다. 잘하고 싶은 일 혹은 자신 없는 일 앞에서 피어오르는 공포와 걱정 때문에 몸은 점점 굳어간다. 힘을 빼면 오히려 더 잘할 수 있는데 잘 못하니까 자신 없어서 더 힘이 들어간다. 항상 힘주는 일보다 힘 빼는 일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 힘을 잘 빼려면 자신에 대한 기대치와 욕심을 내려놔야 할 것 같다.

언제쯤이면 힘을 잘 뺄 수 있게 될까? 결국엔 수줍은 고양이 인간들의 마음을 얻게 될까.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언젠가 다시 이불같이 포근한 물의 장력에 누워 드넓은 하늘을 다시 볼 수 있길 바라본다.


수중카메라로 찍은 보홀에서 마주친 거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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