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새해가 될 때마다 올해는 조금 더 어른답게, 알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을 하나씩 해 익혀나가자는 생각을 한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나는 왜 자꾸만 청개구리 같은 짓만 하는지, 나는 왜 내 나이에 알아야 하는 것들이 다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지 모르겠다. 나만 보면 보험은 들었니, 다른 건 몰라도 암보험은 꼭 들어야 한다, 말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한참 알아보다가 관심이 없으면 열정이 안 생기고, 열정이 안 생기면 도저히 집중이 안 되는 성격이라 싼 거 아무거나 하나 들어라는 말이 도저히 입력이 안 되어 결국 한 것이라곤 비타민 구독. 보험을 들 비용이나 비타민에 들어갈 비용이나 비슷하다면 만일을 위해 대비하는 것보다 지금 몸에 좋은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보험 설명은 흥미롭지 않았고 비타민은 예쁘고 귀여웠기 때문에) 신나게 알아보다 한국까지 직배송을 해 주는 Persona Nutrition 을 선택했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커스터마이징된 무언가'이다. 공책에 이름을 새겨주는 간단한 제작부터, 내가 색상과 재료를 골라 무언가를 만드는 것, 이름을 적어주는 것 등을 정말 좋아한다. 미국은 한국보다 이런 커스텀 제작이 더 흔해 내가 학교를 다닐 때부터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매달 보내주셨던 용돈은 그때 환율에 따라 110달러에서 120달러 정도가 되었는데 그 돈을 모으고 모아 간혹 색상이나 재질들을 선택하고 이름을 새겨 넣어 만들어 구매할 수 있는 것들을 사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미국에서 쓰던 물건들은 대부분을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보관하고 있었지만 깨끗하게 집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용하지 않을 것을 쌓아두지 않고 잘 버릴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큰 마음먹고 정리했다. 아무튼 내가 개인 제작된 무언가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십 대 시절부터, 한국에서는 그 당시 구경할 수 없었던 신문화를 접하고부터였다.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건강한 삶에 대한 적극적 관심이 크며 건강보조식품의 선택의 폭이 더 다양하고, 비타민을 복용하는 사람들도 더 많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미국은 유기농 식품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와 이해가 더 컸고 한국에도 잘 알려진 홀 푸드 같은 유기농 전문 마트도 전 지역으로 발달해 있었다. 그 이후에는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적 이슈에 관심이 모아졌고 윤리적 소비에 대한 큰 흐름이 생겼다. 그 당시에도 한국에서 보지 못한 신기한 약들이 많았고 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매우 다양한 브랜드가 단순히 비타민의 종류를 떠나 Non-GMO, 비건을 위한 비타민은 기본적으로 대다수 갖추고 있고, 목표로 하는 타깃에 따라 차별화된 서비스와 제품을 선보이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업체를 선정하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이든 예쁜 것을 좋아하는 내가 보기에도 한눈에 끌리는 세련되거나 예쁜 제품들도 너무 많았고 비타민에 관심이 없다가도 생길 것 같은 흥미로운 요소들도 많았다.
Persona에서 비타민을 구독하기 전에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업체는 Rootine 사의 커스텀 비타민이다. 안타깝게도 사기극으로 막을 내린 테라노스의 진단키트처럼 피 한 방울로 앞으로 진단 가능성이 있는 모든 질병들을 미리 알고 대처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간단하게 혈액, 그리고 DNA 검사를 할 수 있는 키트를 제공하고 그를 기반으로 개인이 섭취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Rootine 은 2018년 설립된 회사이다. 영양과 관련된 유전적 변이를 50가지로 분석하고 혈액 속의 비타민과 미네랄 두 영역의 수치를 검사하여 고객이 작성한 간단한 질문 문항을 참고해 커스텀 비타민을 제공한다. 루틴은 라이프스타일, 혈액검사, 그리고 DNA 검사를 통해서 누구에게나 최적화된 효과를 볼 수 있도록 한 차원 더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공산품처럼 찍혀 나오는 멀티비타민과 다르게 개인의 건강 상태를 증진시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를 집중적으로 공급하는 것, 그리고 그 전달 방식에서 비타민과 미네랄의 유효한 성분들이 천천히 흡수될 수 있도록 식물성 기반의 미세한 입자의 셀룰로스로 만들어 음식을 섭취했을 때 다양한 유효 성분들이 혈관을 타고 흐르며 전달되는 방식과 같이 비타민이 전달되도록 만들어졌다. 사실 이 회사의 제품을 고민했던 이유는 설문조사를 통해서 비타민이 정해지는 일부 브랜드들과 차별화된 테스트 방식이나, 식물성 미세 입자로 비타민을 섭취하는 이유가 아니라 단순히 일반적인 비타민보다 훨씬 더 예쁘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미 발달한 미국의 건강보조식품 시장에서 웬만한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는 상당히 까다로운 기준들을 통과했어야 했을 것이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꽤 까다로운 영역들이 있고, 합리적인-합당한 소비는 그중 하나이기 때문에 화장품 리뷰만 보더라도 훨씬 더 전문적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비타민이라는 제품 특성상 바로 효과와 효능을 느끼기는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물론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아는 보았지만 흥미를 위해서였고, 나는 그저 패키지가 마음에 드는 것을 꽤나 우선순위로 두고 고민했다. 그냥 물과 섭취해도 되지만 요거트 위에 뿌려서 섭취할 수도 있다고 하는 글을 보니 꽤나 예쁠 것 같아 정말 끌렸지만 우선 한국까지 키트를 보내주고, 내가 다시 회사로 돌려보내기는 어려운 점과 함께 한국으로 매달 배송되지 않아 여러 가지로 끌리는 점이 많았지만 다른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귀엽고 예쁜 것을 선택하고 싶어서 또 고민했던 것은 어린, 젊은 유투버들의 영상 속에도 심심찮게 등장했던 Cafe/of 사의 커스텀 비타민. 미국 브랜드 특유의 느낌 aesthetic 이 잘 살아있는 제품 외관과 귀여운 포장으로, 매일 다른 문구들이 예쁘게 프린트되어 있었고 루틴사와 마찬가지로 한국으로 직배송은 되지 않았지만 원한다면 배송대행을 통해 매달 구독을 할 수는 있었다. 케어 오브에서는 간단한 몇 가지의 질문을 통해서 3-4개의 개인 맞춤 비타민을 제공하는데, 콜라겐과 식물성 프로틴 등도 추가하여 구매할 수 있다. 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여 제품의 퀄리티를 보장한다고 하는데, 미국의 여러 커스텀 비타민 회사들의 제품을 비교한 여러 글을 보았을 때 상당히 여러 글에서 중요한 요점으로 보았던 '자사가 아닌 기관에서 테스트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된 바 없다. 사실 나는 이렇게까지 꼼꼼하게 따져보는 유형은 아니라 이 점이 크게 마이너스 요소가 되지는 않았고 직배송이 되지 않는다는 점과, 사실 테스트 항목이 매우 전문적인 내용-꼼꼼한 건강 상태 파악은 어려울 것 같다는 조금은 포괄적인 질문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도 제품 외관에 너무 끌렸기 때문에 주문해 보았고 최종적으로 선택한 Persona 비타민과 비교하여 선택하기로 했다. 예쁜 제품이 주는 만족도는 케어오브 사의 제품이 더 높았지만 컨디션의 변화가 거의 없다는 점과 매달 배송대행을 신청해야 하는 불편함으로 최종 선택하지는 않았다.
최종적으로 선택한 Persona 사의 프로그램은 코로나가 시작하면서부터 쭉 구독해 오고 있다. 겨울이 오기 전 3달은 연달아 오쏘몰을 먹고, 나머지는 Persona의 비타민을 먹는다. 건강식품을 잘 챙겨 먹는 편은 아니지만 내 이름이 적힌 비타민 포장에 재미를 꽤 붙여 열심히 먹어오고 있다. (나는 정말 예쁜 것에 약한 사람이다) 케어오브 비타민처럼 알록달록하고 예쁘지는 않지만 깔끔한 포장에 내 이름이 새겨진, 내 몸이 필요로 한다고 진단된 것과 내가 선택한 부분들에서 영양을 채워줄 비타민을 챙겨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개인별 프로그램에 따라 하루에 한 번만 섭취하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나는 아침, 저녁이 나누어져 하루에 두 번 복용한다. Persona 사의 가장 큰 장점은 무료로 한국까지 배송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물론 배송이 매우 빠르지는 않고, 코로나가 한참 심할 때는 거의 한 달에 가까이 걸릴 정도로 오래 걸릴 때도 있었지만 몇 달을 제외하고는 일주일이 조금 넘으면 새 비타민이 필요하기 전에 문제없이 잘 도착했다. 두 번째 장점은 매우 전문적인 상담이 아주 신속하게 이루어지며 원하는 모든 정보에 대한 칼같이 정확한 대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칼 같다는 단어를 쓴 이유는 그것이 배송에 대한 것이든, 비타민에 대한 것이든, (정말 사람 속이 터지게 만드는 일부 회사와 다르게) 두 번 질문할 필요 없이 매우 정확하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었고 상담을 할 때마다 매우 흡족했기 때문이다. 비타민에 대한 상담은 일반 상담가가 아니라 전문 영양사를 통해 답을 들을 수 있고 이 점에 대해서는 제품을 이용하면 할수록 매우 만족했고 상담의 전문성과 정확성이 제품의 만족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비타민은 한번 섭취한다고 바로 효과가 피부로 느껴지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플라시보 효과였는지는 몰라도 확실히 비타민을 열심히 섭취했을 때 몸이 덜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에 따라 상담을 거쳐 원하는 약을 추가하거나 프로그램을 바꿀 수 있고, 배송날짜도 매우 간편하게 옮길 수 있다. 커스텀 제작을 위한 질문 문항이 매우 자세한 편이었고 그를 기반으로 선택할 수 있는 비타민의 종류 또한 케어오브 사는 31가지, Persona는 81가지로 훨씬 더 다양한 점도 마음에 들었다. 각 비타민의 성분의 유효성에 대해 케어오브 사와 마찬가지로 제3기관에서 테스트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을 단점으로 꼽는 글도 있었지만 나는 큰 불만은 없이 잘 이용하고 있다. 기본 비타민 프로그램에 컴퓨터와 책을 오래 보는 직업 특성상 눈 건강에 좋은 프로그램, 여성 건강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 피로 회복과 정서적 안정에 도움을 주는 세 가지 옵션을 더해 구독하고 있고 운동을 하고 있다면 운동의 효과를 극대화해주는 프로그램, 피부와 머리 관리 등 미용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전용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비타민 섭취 시간 알림, 비타민 종류나 배송일 변경, 채팅 요청도 가능하며, 어플리케이션의 사용도 직관적으로 매우 쉬워 만족스럽다. 충분한 효과를 느끼고 있음에도 오쏘몰을 매년 먹는 이유는 효능보다는 심리적 만족감 때문이지 Persona 비타민의 효과가 덜 하기 때문은 아니다. (처음 비타민을 접한 것이 오쏘몰이었고, 워낙 독일 제품에 대한 신뢰감이 있기도 하고 오쏘몰을 처음 먹었을 때 즉각적으로 피로가 줄어드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일종의 회귀본능..같은 것이다.) 여러 종류의 비타민을 먹으면서 신장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휴약기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고, 전문 상담가는 매일 섭취를 위해 만들어진 비타민으로 인체에 무리를 주지 않기 때문에 꾸준한 복용을 권했는데 가끔 먹는 것을 잊어버리거나 쉬고 싶으면 부담 없이 쉬고 다시 먹고 싶을 때는 꾸준히 또 복용한다. 여러 가지 영역에서 평균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워서 선택한 프로그램이지만 기대보다 복용하면서 더 만족스러워 앞으로도 계속 이용할 계획이다.
나는 커스텀 비타민이 일반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비타민보다 효능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맞춤 영양제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맞춤 영양제가 일반 영양제보다 더 나은 효과를 제공하는지에 있어서 여러 의견이 있고, 커스텀 비타민 안에서도 테스트 방식에 따라 차별화된 효능에 대한 상이한 입장도 있다. DNA 테스트를 기반으로 한 비타민이라면 정말 내 건강에 최적화된 제품을 줄 것 같지만, 또 다른 회사의 경우 DNA 실험 결과는 이미 고정되어 있는 것 static 이라 현재 무엇이 필요한 지 알기 위해서는 혈액 검사가 더욱 정확한 맞춤 영양제를 제공한다고 주장하고, 자체 테스트가 아니라면 실험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고, 테스트 방식이 과학적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제공하는 비타민 가짓수가 적다는 지적도 있다. 나의 경우 내 몸의 필요에 딱 맞는 비타민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지만 영양제를 챙겨 먹는 습관이 없었기 때문에 애착을 가지고 규칙적으로 생활의 일부가 되도록 하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해 선택했고 그래서 만족한다. 나는 좋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의 격차가 큰 편이고, 좋아할수록 열심히 하고 꾸준히 하기 때문에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내 이름 하나가 포장 비닐에 찍혀있다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좋은가, 정말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 비닐 포장을 뜯을 때 느껴지는 소중함, 내가 조금 더 신경 써서 대해지는 그 느낌이 나는 참 좋은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사실 내 이름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 이름은 그 자체로 소문의 중심이었고 나는 사람들의 관심과 나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버거웠다. 나는 내 성씨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빠의 성씨를 물려받은 것은 나에게 여러 가지 이유에서 주홍 글씨같이 느껴졌다. 차가운 친가 어른들보다 따뜻하고 너그러운 외할아버지, 할머니의 손녀이고 싶었는데 내 이름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외가가 아니라 친가에 소속된 것이라는 생각에 서글프고 슬펐다. (사실 그런 것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지만 그때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같은 환경에, 조건이라도 타고난 사람의 성향에 따라 환경의 영향이 달라진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외부 자극에 민감하고 예민한 어린 나에게는 사소한 순간들이 참 따갑고 날카로웠다. 나는 커서도 내 이름이 부담스럽고 싫었다. 언젠가 이름을 바꾸는 것이 유행처럼 흔할 때 엄마가 어디선가 내 이름을 바꾸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새 이름을 얻어왔고 ( 언제는 그렇게 어렵게 지은 이름이라며 좋다더니 어디서 희한한 이름을 지어와 기가 막혔다. ) 내가 쉽게 변화를 주는 사람이었다면 얼른 유행에 동참해서 바꾸어 버렸을 텐데 미련할 만큼 고집이 센 나는 싫어하는 이름도 바꾸지 못했다. 사실 아직도 귓가에 들릴 것 같은, 외할아버지가 불러준 이름을 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내가 태어나고 친할아버지는 내 이름을 지으러 갔던 첫 작명소에서 내가 너무 별난 아이라고 퇴짜를 맞고 물어 물어 어느 산속의 작명가를 찾아갔고 찾아간 그 작명소에서도 여자아이가 너무 별나다며 옥편에 나오지도 않는 글자를 만들어 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맑고 고요할 정, 어질 인 은 그렇게 내 이름이 되었다. 내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발음이 어려워 영어 이름을 만들어야 했을 때는 은근히 그 소식이 참 반가웠는데 무조건 얌전하기를 바랐는지 꾹꾹 눌러 지은 한국 이름보다 자유롭고 싶어서 밝은,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이름을 골랐다. 그러다가 우연히 남자 친구의 이름의 한자 뜻을 듣고 그 뜻이 참 예뻐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름의 한자 뜻을 물어보았고 대부분은 정말 신기하게도 그 이름의 풀이가 그 사람과 참 잘 어울렸다. 그래서 내 이름의 의미는 나와 잘 어울리는가 생각해 보니 맑고 고요하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엄마는 맑고 고요하게 흐르는 물이라고 설명을 했었는데 나는 그런 글자와 어울리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고 어진, 은 더욱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외국인 친구가 내 한국어 이름의 영어 풀이를 물었는데 대충 이야기해 주고 그날 밤 생각해 보니 마음이 맑은 사람은 숨길 것이 없을 것이고, 고요함은 강한 것과 같으니 fearless, 어진 마음은 친절함이니 kind 하다는 의미와 같으면 좋겠다고, 지금 내가 내 이름과 잘 어울리는지는 모르지만 가능한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fearless, but kind는 내 이름의 뜻이 되었다. 내 이름에 대한 의미를 내 마음에 들게 정했기 때문에 더 이상 내 이름을 싫어하지 않게 된 것은 아니다. 엄마가 새 이름을 지어왔을 때 호락호락하게 말을 들어줄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남자 친구에게 새 이름은 어떻냐고 물어봤고 남자 친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절대로 싫다고, 내 이름이 예쁘고 좋으니 절대로 바꾸면 안 된다고 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싫어했던 이름인데, 내 이름을 쓸 때마다 무언가 모를 불편함이 있었는데, 애정을 담아 나를 불러주는 사람의 존재가, 매일 소중하게 불러주는 이름이 나도 모르게 더 이상 내 이름이 내게 부담이 되지 않게, 이름과 얽힌 긴 시간의 짐을 내려주었다. 나는 요즘 내가 아무 생각이 없을 때 나 자신이 가장 자랑스럽다.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고 즐거워할 때의 내가 제일 장하고 기특하다.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나를 아껴주고 좋은 마음으로 바라봐주는 사람들에게 고맙고 감사하다. 누군가를 소중하게 대해준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순간이 영원히 되도록, 이라는 말의 의미는 좋았던 한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말보다는 아마 짧은 순간들이 쌓이면 영원히 된다는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 이름을 소중하게 불러주는 사람이 있고, 내가 소중히 대하는 것들이 충만한 삶이 비록 세상이 정한 내 나이에 내가 해야 할 것들에는 조금 모자라다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주어진 한평생의 삶을 잘 사는 또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