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부터 시작된 길고 긴 나날의 소 생활 종료를 앞두고 서울로 출발. (그렇다고 하기에는 언제는 소가 아니었나 싶긴한데) 어쨌거나 눈떠서 눈 감을 때 까지 일 하는 것은 아닐테니 어쨌든 뭐. (그렇겠지..?) 웬만한 업무 강도에는 도가 텄다고 생각 해 왔는데 나이가 들어가는지 배가 부른건지 힘에 부쳐서 정말이지 8월 한 달은 매우 힘들었다. 그렇게 서울에 도착하니 날씨가 왜 이래? 맑고 시원한 바람 불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날씨. 나 상 받는거 맞네…
호텔에 짐을 맡기고 서머레인으로 출발. 날씨가 너무 좋아서 오늘 아니면 한동안 안 갈 것 같아 + 좋아하는 머랭 케익을 먹으러 왔는데 뭔가 예전보다 못 한 분위기.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흙도 먹을 것 같은 기분이라 디저트는 생략하고 어쨌거나 즐겁게 식사.
서머레인은 음식 그 자체 보다 예쁜 음식 + 좋은 채광이 포인트인데 건물 옆쪽을 블라인드로 모두 가려 자연광이 덜 들어오고 나머지 벽면의 식물 장식은 떼어내고 커다란 그림이 대신 붙어 있었다. 이 곳은 식사가 광속으로 나온다. 그 말은 이미 조리된 것이 예쁘게 담겨져 나온다는 것. 그럴 때는 나머지 모든 요소가 다 잘 맞아야 기분이 나는데, 어쨌든 기분은 이미 매우 좋았다.
보너스를 받은 남자친구가 그 동안 계속 갖고싶어했던 커틀러리 세트를 선물 해 주었다. 못 보던 접시가 있어 관심을 보이니 그것까지 사주겠다고 성화를 부렸지만 (남자친구는 내가 무언가를 갖고싶다고 하면 절대 가격을 보지 않고 무조건 당장 사준다고 한다……이게 제일 무섭다…ㅎ) 커틀러리 두 세트 만으로도 이미 매우 충분했다. 가격 인상이 되어 지난번보다 훨씬 비쌌는데 흔쾌히 선물 해 주어 덕분에 꼭 갖고싶었던 물건을 갖게 되어 기뻤다.
좋아하던 리암스 케이커리가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없어지고 젤라또와 간단한 식료품, 샌드위치를 파는 가게가 생겼다. 12시 오픈이라 먼저 포크 세트를 사고 들렀는데 사장님이 정말 친절하셨다. 나는 컵케익을 무진장 좋아하는데 한국에서는 왜 인기가 많이 없을까. 컵케익을 사서 호텔로 가면 딱 인데..이제 막 오픈하셨다는데 새로 생긴 가게는 사장님이 참 친절하셨다.
남자친구가 좋아하는 맥코이. 뭐…..아무튼 특수한 기계를 쓴다고 했는데 (나는 관심있는 것 이외의 남자친구의 설명은 잘 듣지 않는 편이다……) 아무튼 그래서 마음에 든다고 한다. 선물을 받았으니 나도 도넛을 선물 해 주었다. 골라오라고 하니 저렇게 담아왔다. 원래 팔찌를 매우 좋아하는데 요즘 틈틈이 팔찌를 만드는 것에 완전히 심취 해 있다. 원래도 자주 그런데 주렁주렁 많아졌다. 네번째 손가락 뒤쪽에 아주 작고 얇게 할아버지의 세례명을 새기고 싶었는데 남자친구가 너무 마음 아파해서 그만두었다. 대신 할아버지 이름을 새긴 팔찌를 여러개 샀다.
맥코이에 가는 길에 좋은 향기가 나 르라보에 들렀다. 원래 향과 관련된 것은 그 자리에서 결정하지 않는데 몇가지 향을 고민하다가 결국 갖고싶은 것으로 결론이나 다시 방문. 마음에 드는 룸 스프레이를 구매했다. 고민해서 문구도 새기고. 직원 분께서 참 친절하셨다. 나는 유리창에 비친 스티커 글자를 찍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데 꼭 남자친구는 저런 식으로 사진에 같이 나오고 싶어한다. 사람들이 내 남자친구를 보고 종종 직업이 미군이냐고 물어보는데 실체를 알고 그러나 모르겠다…. 나는 쪼그리고 창문 사진을 찍고 있고 내 머리에 손을 올리고 씩 웃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마 우리를 싫어했을 것이다. 체크인 하러 올라가는 길에 예쁜 하늘, 이 정도면 상 받는거 맞지 뭐.
아, 난 그랜드 하얏트의 저층 남산뷰가 정말 너무 좋다. 남산타워에 대한 애정이 있는 것은 아닌데 미국에서 살았을 때를 제외하면 평생 집 앞이 바다이다 보니 나무가 보이는 것이 좋다. 사람들은 집에서 바다가 보이는 것을 부럽다고 했는데 어릴 때는 거실 창 전체 너머로 꽉찬 바다가 그냥 거대한 물덩이 같이 보이거나 아니면 너무 적막하게 느껴졌고 나는 미국에 살때처럼 옆집이나 앞집이 보이고 놀이터나 마당이 보이는 편안한 뷰가 좋았다. 스탠다드 룸은 욕조가 있는 방이 많지 않다고 한다. 지난번에 욕조가 없어 체크아웃을 할 때 여쭤보니 매우 소수라고 하셔서 알겠다고 하고 이번 투숙 요청 사항에는 남산뷰, 저층, 엑스트라 토퍼 만 요청했는데 선호 사항에 욕조가 적혀 있었나보다. 욕조가 있는 3층을 준비 해 주셨다고 하셔서 5층 은 불가능하냐고 여쭈었다만 꽤 젊어 보이시는 직원분께서 아!! 이미 토퍼 세팅이 되어 있다고 허둥지둥 하시길래 아, 충분히 감사하다고 알겠다고 키를 받아 올라왔다. 3층은 분수대가 약간 가리면서 지난번과는 다른 짧은 지붕이 보인다…ㅋ (지붕 보이지 않는 쪽이면 된다고 부탁드렸는데 ㅋㅋㅋㅋ) 저 정도면 뭐. :) 기분 탓인지, 저층이 인기가 없어서인지 왠지 객실이 더 깨끗하고 넓은 느낌.
선물받은 커틀러리 세트. 일본에서 사온 나무 재질의 손잡이로 어두운 색과 밝은 색 세트 두개씩, 긴자식스에서 처음 보고 마음에 두었다가 그 다음 방문 때 구매했던 스테이크 식사를 할 때 쓰는 세트, 흔한 플라스틱 느낌의 라귀올을 싫어하는데 자개빛 세트가 너무 마음에 들어 구매했던 클로드 도좀이 있고 편하게 사용하는 용도로는 사브르의 것을 쓴다. 커틀러리는 정말로 쏙 마음에 드는 것이 잘 없는 편인데 보는 순간 숨이 멎는 것 처럼 마음이 들었다만 가격을 보니 더욱 숨이 멎어 계속 갖고만 싶어 했는데 너무 기쁘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드는데 독일 산이라니…운명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남자친구는 내가 저것이 왜 갖고 싶은지 묻지 않는다. 네가 마음에 든다면 당장 사야지, 라고 생각 해준다. 갖고 싶었던 물건이 생긴 것 보다도 늘 그렇게 대해주는 것이 참 좋다. 우리는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고 내가 미국으로 떠나면서 한참 모르고 지내다가 18살 때 다시 만났다. 거의 이십년이 다 되어 가도록 저러고 있다. 나는 나 만큼 맹목적인 사람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더한 인간의 유형은 처음 본다. 나는 아마도 전생에 그의 딸 이었던듯 싶다… 하하. 룸 스프레이에는 남자친구의 바람대로 Awesome August :) 라고 새겼다. 지난번 부터 자꾸 포스팅 제목을 붙여주더니 벌써 12월까지 정해두었다. 늘 과일을 트럭으로 먹는지라 호텔에 가면 가장 아쉬운 것이 과일인데 따로 치울 것이 없는 과일을 사간다. 긴급 과일 수혈 후 저녁 먹으러 출발.
저녁은 무언가 밥이 먹고싶었다. 서울 밥. 우리집 밥의 간은 싱겁고 단 맛이라 짜고 매운 경상도 밥보다 싱거운 서울 밥이 좋다. 그리고 그런 서울 밥집의 여자 사장님들은 주로 한결같이 매우 친절하신데 나는 그 분들의 옛날 표준 억양이 정겹고 좋다. 그런 말투를 들으면 외가 친척 어른들 생각이 많이 난다. 지금은 거의 모두 돌아가신 어른들은 서로를 끔찍하게 아끼고 모두가 정말 점잖고 늘 따뜻하셨다. 그 많은 형제와 그들의 자식들까지 수 십명이 모여 노 할아버지를 위해 늘 찬송가를 부른 후 애국가를 부르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식사를 했었다. 나는 종교가 없고 종교색이 짙은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때의 기억은 참 좋게 남아있다. 참 보기 드문 사람들 이었다. 어른은 어른다웠고, 아랫사람은 예의를 다했고 많이 가진 사람은 나누었고 적게 가진 사람은 시기,질투하고 탐내지 않았다. 서로 끔찍하게 위하면서도 타인을 배척하지 않았고 가족의 테두리 밖의 사람들에게도 아낌없이 사랑을 나누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나는 너무 날이 서 있는 사람인 것 같아 속상하다. 모두가 서로를 사랑과 애정으로 대하던 그 때가 너무 그립다.
뭘 먹지 고민하다가 남자친구가 기특하게도 도토리 묵, 비빔밥, 전을 파는 곳을 찾아냈다. 식당에 가기 전 그랜드 하얏트에 올 때 꼭 들르는 러쉬 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배스밤 하나를 구매했다. 신나게 택시를 잡아 타고 도착하니 남산의 식당들의 메뉴는 기상천외하게 다양한 음식들을 파는 귀여운 곳이 많았다. (이를테면 돈까스와 설렁탕, 냉면을 한 집에서 판다던가 말이다.) 역시 친절하신 사장님과 깨끗하고 맛있는 음식 덕분에 기분 좋고 신나게 밥을 먹고 나왔는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바로 옆의 케이블 카를 보는데 한번 타볼까 하는 생각에 바로 티켓을 샀다. 우리는 원래 이런 체험을 즉흥적으로 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둘다 일에 너무 치였던건지 보상심리에 타보고 싶었던건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줄을 서 있었다. 김삼순의 열혈 애청자 였기 때문에 (화면으로) 익숙했던 곳이라 별 생각 없이 신나게 탑승 했는데 중간 즈음 되었을 때 갑자기 너무 높고 무서워서 기절 할 것 같았다만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 (내 포크는 써 보지도 못하고 죽는것 이냐고 바들바들 떨며 귓속말을 했더니 아, 걱정을 말아라더니 나중에는 내려서 자기도 다리가 후들거린다고 했다.) 생각보다 사람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랐고 전망이야 뭐, 한국의 대도시는 모두 빽빽한 건물 뷰 이지만 그래도 날씨가 워낙 기분 좋았다.
사실 저녁을 먹을 때 부터 가족 단위 손님이 많아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데다 케이블카를 탈 때 엄청난 인파에 쓸려 정말 조용하고 잔잔한 곳에 가고 싶어 생각한 곳은 바로 Trvr. 분명히 오늘 하루의 완벽한 마무리가 되어 줄 곳 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굿 초이스. 8시 30분이 마지막이라 7시가 넘은 시간은 손님이 없어 감사하게도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장윤주 언니, 사랑해요!
하루 종일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 더 기분 좋은 저녁 산책. 호텔과 5분 거리 트래블러에서 돌아오는 길의 예쁜 호텔의 외관. 그랜드 하얏트는 누가 위치를 잡았는지는 몰라도 정말 천재인 것 같다. 억지로 만들어내려고 해도 힘들 입지는 요즘들어 북적이는 인파만 빼면 그 자체가 분위기. 호텔의 입지로는 전국 어디라해도 아마도 한국에서 두번 다시는 없을 최적의 장소가 아닐까.
괜히 챙겨오고 싶어 오랜만에 포레오. 원래 화장품만 좋아했지 뷰티 디바이스에 관심이 없었는데 나도 뭔가 해볼까 싶어 누페이스를 사고 생각보다 기계가 귀엽고 예쁘길래 뭘 하나 더 사 보고 싶어 구매했다. 누구에게 좋은가? 이런 저런 잡다한 관리를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시트마스크를 붙이고 있는 것은 답답하고 싫은 사람, 라메르나 끌레드뽀 같이 고가의 마스크를 사 본적이 있고 그것 한.두통 사서 쓴다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살 사람. 이번에 고른 배스밤은 레이크. 부드럽고 상쾌한 향이고 민트색으로 예쁘게 풀리는 밤이라 가을같이 시원한 여름 밤에 사용하기에 정말 마음에 들었다. 목욕을 하고 기분 좋게 누워서 포레스트 검프를 다시 보았는데 남자친구가 왠지 모르게 포레스트 검프와 닮아서인지 예전과는 다르게 보면서 이기적인 여주인공에게 너무 화가났다. 나는 혹시 제니같은 여자친구인가..! 에이, 설마. ㅎㅎㅎ
해는 구경도 할 수 없이 흐리고 비가 오지만 괜찮을 정도로 어제의 날씨가 좋았기 때문에 날씨에 매우 집착하는 편 임에도 기분좋게 체크아웃. 부벳이 서울에 오픈했다는 소식에 부벳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남자친구를 위해 방문. 비오는 월요일에 설마 사람이 많을까 해 열두시 반쯤 체크아웃을 하고 갈까 하다가 혹시 몰라 열두시 전에 도착했는데 아뿔사…대기시간 90분, 우리 앞은 15팀. 바로 앞의 Twg 에 들어가 티 한잔. 생각보다 고른 티가 너무 마음에 들어 옐로우로즈 케익도 한 조각. 케익도 맛있고 대기 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재밌게 잘 놀았다.
부벳의 바 좌석을 좋아하는데 운 좋게도 착석. 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이 분위기. 뉴욕보다도 도쿄의 부벳을 옮겨 둔것 같다는 글을 읽었는데 나는 뉴욕과 도쿄 두곳 모두를 좋아한다만 내 생각에도 그런 것 같다. 음식은 뉴욕보다는 덜 하지만 부벳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국에 생겼다는 사실 만으로도 나머지 것들이 용서가 될 듯. 커스타드 소스가 뿌려진 프렌치 토스트는 뉴욕에 없던 메뉴인데 예쁜 집에 예쁜 메뉴를 가져다 놓으니 이정도 예쁘면 되었지 다른게 필요한가. 브런치를 먹고 룸에 올라가서 두시까지 쉬다 나오면 딱 일것 같은데 비는 오고, 갈 곳은 없어 아쉽게도 우리는 식곤증을 현대백화점을 돌며 겨우 이겨냈다. 9월은 아무래도 부벳을 좋아하는 남자친구를 위해 남산 대신 안다즈에 머물게 될듯.
치과를 다녀오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좋아하는 라츠오 베이글 포장. 런던뮤지엄베이글이 유행이지만 우리는 라츠오 스타일. 라츠오의 베이글은 신선한 생지로 통통하게 만들어진 기분 좋은 식감이다. 기차를 타러 가기 전 갤러리아에 들러 이번 여행에 수고해준 남자친구를 위해 떡볶이. 나는 떡볶이는 크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 안 맵고 약간 달달한 밀떡을 좋아하는데 갤러리아의 떡볶이는 신기하게도 부산 남천동 해변시장의 할매떡볶이 맛이다. 식사를 마치고 뭔가 건강한 것이 필요해 마마스 케일 파인애플 주스. 갤러리아에서 파는 것 중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기차를 타러 가면서 아르고 티에서 캐롤라이나 허니를 사서 수서역으로 출발.
쉽지않은 순간이 많았던 8월 이었다. 이미 단련되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 나에게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고, 아직도 내게 너무 버겁게 느껴지는 일도 많았다. 일을 하고 있는데 엄마의 제자로부터 갑자기 날아온 사진 속에 학사모를 쓰고 웃고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잘 살겠다고 이제는 내가 원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살겠다는건가, 네 까짓게 잘 살아봐야 얼마나 잘 살겠다고, 슬픈 감정을 미화해서 아름답게 쓰고싶은 마음이 먼지만큼도 없는데 그 마음을 표현 할 길이 없어 가슴이 아팠다. 엄마의 사업이 망하고 엄마는 학교로 돌아가 또 다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땄다. 나는 그 시간이 체면에 목숨거는 엄마의 발버둥이라고 생각했는데 학위수여자의 한마디에 그 동안 연주자이자 스승으로의 삶의 마무리를 잘 하고 싶었다는 엄마의 글을 읽으면서 불같이 뜨거웠다가 재가 된것 같은 내 마음이 허공에 다 날아가고 내가 다 없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행복한 8월의 마무리였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