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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웨어 Jan 25. 2024

EP.01. 우울증이라면서 왜 웃어?

난 웃으면 안 돼? 

세상엔 참 무례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울증이라고 하면 그것을 약점으로 잡아 공격을 한다거나 나약한 인간이라며 내몰기도 합니다.  

또는 우울증이라고 하면서 왜 웃냐, 우울증 맞냐라는 식의 멍청한 질문을 받기도 하죠.   


제가 우울증을 앓을 땐 24시간 내내 우울하진 않았습니다.  

멍 때리며 좋아하는 애니를 보거나 맛있는 치킨을 먹거나 동생들을 놀리는 재미에 웃음이 나거나 꽤 오랫동안 소망하던 것을 이룬 뿌듯함에 행복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저는 우울한 감정을 느낄 때마다 애써 억지로 웃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뭔가를 남기고 싶었나 봅니다.  

삶을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거 같다고 판단했을 때는 우리 부모님을 위해 제 모습을 남긴다고 생각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우울증이라고 하면 제 지인들은 다들 놀라더군요. 겉으로는 한없이 해맑은 아이인데 속은 찢겨서 형체로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너덜하거든요. 


누군가는 진짜 우울증이 맞냐, 대체 왜?라는 질문을  아무 생각 없이 하지만 

그걸 듣는 저는, "그러게, 내가 왜. 대체 왜. 누가 날 이렇게 만들었는데" 라며 분노에 차거나 더욱 깊은 우울이라는 우물에 들어가게 됩니다.  


제가 우울증을 극복하게 된 계기는 (우울이라는 감정을 지금은 아예 느끼지 않는 건 아닙니다) 

이렇게 질질 짜는 제가 보기 싫어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과거 학창 시절에 흔히 말하는 일진들로 인해 내성적이게 됐고 이것이 왕따로, 결국 자기 혐오에 빠지게 되었죠. 그런데 문득 이 생각이 들더라고요. "감히 네가 뭔데 날 이렇게 만들어. 네가 뭔데." 라며 절 괴롭힌 사람들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다 용서했습니다)

이 감정은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제 자신을 괴롭힌 저에 대한 분노이기도 했으니까요. 지금도 가끔, 어린 시절의 제가 불쌍하게 느껴집니다. 가여운 뒷모습이 느껴지기도 하고 조그마한 똘망한 눈에 눈물이 흘린 것을 상상하며 마음이 찢어지기도 하죠. 


다시는 저에게 그런 슬픔을 주기 싫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자기를 제일 사랑해 주는, 자신이 힘든 건 싫지 않으시나요?

모든 서러움은 결핍에서 오는 거 같습니다. 인정받지 못하는 것, 돈이 없는 것,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 등

많은 결핍이 있지만 우리는 이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아주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바로 그 결핍을 채우면 되는 것입니다. 우울하고 마음이 아프다면 그 마음을 고치고 행복으로 채웁시다. 간단하지 않은 거 같지만 사실 매우 간단합니다. 그냥 마음만 바꾸면 됩니다. 저는 요즘도 이 방법을 쓰는데요, 기분이 좋지 않거나 우울할 때 종이 한 장을 꺼내서, 


1) 지금 기분이 어떤지 

2) 그런 기분을 느끼는 이유는 뭔지 

3) 그 기분이 지금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4)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 기분을 바꿀 순 없는지 


이런 과정을 거치면 어느새 저는 제 기분을 통제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저도 지금 연습 중이라 익숙하진 않지만 오직 저를 위해서 행복해보렵니다.  


언젠가 이 시를 읽고 펑펑 운 적이 있습니다. 

참 많은 생각을 들게 해 준 시더군요.  


너 훌쩍이는 소리가
네 어머니 귀에는 천둥소리라 하더라.
그녀를 닮은 얼굴로 서럽게 울지 마라.  

네가 어떤 딸인데 그러니 "너를 모르는 너에게_나선미"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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