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내가 읽는 이유
하루 24시간. 누구에게나 주어집니다. 똑같은 시간이 주어졌다고 해서 평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누구는 그 시간을 오롯이 자신을 위해서 투자할 수 있는가 하면, 자신을 위해서는 투자할 시간이 사치스러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주어진 시간을 아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시간은 ‘관리’ 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그 방법을 잘 모릅니다. 그저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하는 정도로 관리를 하고 있다고 얘기하니 말입니다. 늘 시간에 쫓기는 타임 푸어는 늘 시간이 부족하고 헛되이 보내는 시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관리하지 못하는 타임 푸어는 책을 읽을 시간을 낼 수 없습니다. 독서 말고도 세상에는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으니까요. 그리고 꼭 읽어야 하는 당위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당위성이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독서에 대한 예찬과 억지로라도 시간을 만들어서 책을 읽어야 한다는 얘기는 끊이지 않습니다. 책 읽는 시간을 자신에게 주는 것은 타임 푸어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정한 시간을 책 읽기에 투자한다면 그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유익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알 수 있으니까요. 시간의 균형은 삶의 균형입니다. 관리되는 시간 속에 독서의 시간을 할애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균형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간을 찾아드립니다』 세계사, 2022
우리는 늘 시간은 돈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말 우리는 시간을 물리적인 돈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낼까요? 우리가 믿는 것과는 다르게 행동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더 저렴한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기 위해서 좀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서 오랜 시간 기다린다면, 주유를 통해서 얻은 이익과 사용한 시간에 대한 손실을 계산해 봐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버린 시간은 당연시하고 당장 보이는 금전적인 이익 때문에 잘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잃어버리고 있는 시간을 찾기 위해서는 현재 자신이 관리하는 시간에 대한 루틴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의 하루는 어떠합니까? 늘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습니까? 정신없이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오늘 하루가 허무하게 느껴집니까?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시간 약자의 삶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우리의 일상 속에 숨겨진 ‘시간의 덫’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저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진부한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자신의 루틴 속에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적극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책입니다. 시간 관리를 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한번 필독해야 할 내용입니다.
『여자아이 기억』 레모, 2022
‘아니 에르노는 개인 기억의 근원과 그 기억에서 멀어짐, 기억에 가해지는 집단의 억압을 특유의 용기와 임상적인 날카로움을 통해 탐구했다.’ 2022년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입니다. 이 작품은 자신의 삶을 이용해 보편적인 이야기로 만든다고 강조해 왔던 작가의 작품 세계 속에서도 기억 속에 묻어두고 싶었던 마지막 퍼즐입니다. ‘1958’이라는 숫자가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 작품은 열여덟 살의 나이로 겪은 남성과의 첫 경험의 해입니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그해의 일들을 결연한 의지와 책임감이 없이는 쓸 수 없었던 이유가 이 소설에 담겨있습니다. 사랑을 알고 싶고 세상을 탐험하고 싶어 했던 여자아이에게 쏟아진 수치심과 모멸, 그리고 그날의 사건이 가져온 파장들. 대상이 되어버린 삶의 주체성을 다시 회복하기까지의 분투. 글쓰기를 통해 잔혹한 사건을 해체하고 그 본질을 추적하고 분석하는 집요함과 대범함. 이 작품을 읽으며 우리는 개인의 기억을 끊임없이 탐구해 온 아니 에르노가 노벨 문학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 정당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기억이지만 책을 읽는 독자의 기억이 되고, 각자의 젊은 시절 상처를 환기합니다. 모두 한 번은 1958년의 그 여자아이였던 우리는 책을 읽으며 과거의 그날을 들여다보고 그 시절 우리의 모습을 마침내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의 기억이 너무 흐릿해진 것이 문제일 뿐입니다.
『의료인문학이란 무엇인가』 동아시아, 2021
의철학자인 에드먼드 펠레그리노는 「의학의 무단결석자를 위한 변명」이라는 글에서 ‘무단결석자’는 의학을 벗어나 문학, 철학, 예술 등 다른 영역에 한눈을 파는 의사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고 분수를 모른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지만 펠레그리노는 의학의 무단결석자가 되는 것이 그래도 가치 있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일상적으로 의료에서 벌어지는 일을 새롭고 심오한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는 즐거움을 주고, 의학의 본질과 목표를 가치 있게 성찰하는 기회와 힘을 의사에게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저자가 의료인문학의 길에 들어서면서 나름으로 위로와 격려를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의료인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우리는 누구도 질병과 노쇠, 죽음을 피할 수 없고 그로 인한 인간적인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눌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중심으로 삼는 의료인문학에 관한 연구와 성찰이 끊임없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아직 의료인문학이 뿌리내리지 못한 우리에게 이 책과 저자가 주는 의미는 남다르게 여겨집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