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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해준 Jan 19. 2024

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다 - 정희재

티베트 카일라스 순례기

이 책은 ‘참회나무'라는 한 나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흑회색 나무의 이름은 발음이 묘하다. ‘참 - 회나무’일까, 아니면 ‘참회 - 나무'일까? 사실 참회는 나무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죄악을 아는 인간에게 필요하다. 정희재의 <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다>는 자기 운명의 그림자와도 같던 슬픔과 고독에서 벗어나, 사랑과 연민을 온몸으로 껴안고 싶었던 한 인간의 전생애에 대한 참회록이다.  


바람도 구름도 시간조차 없는 티베트의 고원. 그중에서도 수많은 수행자가 업을 씻기 위해 찾아간다는 신들의 산, 카일라스. 그곳에 육신의 최소한의 안락도 포기하고 고행을 자처하여 찾아간 여성이 있다. 제대로 머리 누일 곳, 허기를 면할 음식도 없이, 찢어진 발가죽과 뽑힌 발톱, 마른 입술에서 흐르는 핏덩이 상처를 안고, 그녀는 왜 ‘자학하는 자만이 가는’ 그곳으로 갔을까. 가슴을 의지할 육친도, 따스히 누울 보금자리도 없던 유년 시절, 삭막하고 생경한 세상에 홀로 남겨졌던 소녀는 이제 광활한 서역의 하늘 아래서 확인한다. 자신을 거쳐간 모든 드라마가 한낮에 꾼 악몽 또는 공한 홀로그램과 같음을.



티베트 불교에 의하면 우리는 수많은 전생을 지나왔기에, 세상의 모든 존재가 한때는 우리의 어머니였다고 한다. 그러니 인도와 네팔에서 품에 안은 애달픈 티베트 아이들과 암담한 미래로 좌절하던 티베트 청년들은, 작가의 내면에 존재하는 외롭고 고달팠던 지난 시절의 분신이 아니었을까. 그녀와 같은 시공을 여행하다 마주친 다른 순박한 티베트인들도 잊혀진 자신의 얼굴 또는 잃어버린 혈연의 모습과 닮았다.   


그녀는 덜고 싶었으리라. 생의 무의미를, 그리고 사라지고 생성되는 것들의 아픔을. 하늘과 가장 맞닿은 땅 신들의 산 카일라스에서, 그녀는 태어나고 죽으려는 의지를 넘어 무언가에 다다르고자 하는 의지마저 해체되는 절대무(絶對無)에 이른다. 감자만 한 별들이 흩어지고, 신들의 삼지창 같은 번개 우뢰가 치며, 수천 미터의 협곡이 인간 의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땅에서, 그녀의 염원은 천상에 가 닿지 않았을까.  


사바세계에 돌아왔지만, 조장터에 던져진 육신들의 허허로운 실존을 보았기에 삶의 여행은 전과 달라졌으리라. 미래에서 과거로 이어지는 참회의 여행은 계속되리라.



 책 속에서


길 위에서 헤매는 동안
나는 한 가지 답을 찾아냈다.
우리가 순례를 떠나는 것은
순례 길에 오른 그 순간만이라도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라고.
고통스러운 삶의 경험에서
뭔가를 배우고 깨우쳤더라도
사람은 배우고, 또 배우고, 행하고, 또 행해야 한다고.
살아가는 동안 완성은 끝이 없고,
배우고 익혀서 심장에 간직한
자비와 사랑일지라도
우리를 시험하는 순간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행복은 스스로 깨우쳐 얻지 않으면
결코 제 발로 찾아오지 않는
냉정한 연인과 같다.
인간만이 뼈저린 참회를 하고,
인간만이 순례를 떠난다.




그때는 모든 것이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세계에서
얼마나 즐거웠는지,
그리고 또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다시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난 이제 감각의 세계,
변화하고 죽는 세계에서 발을 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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