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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없는 전업주부 Jul 30. 2022

엄마가 아닌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기


친구의 아이가 내년이면 벌써 입학을 한다고 한다.

역시 남의 아이는 빨리 큰다고 했던가

뱃속에 내 아이는 천천히 크는 것 같은데 말이다.


나름 힘든 티를 내지 않았던 친군데

아이가 점점 엄마를 덜 찾고 혼자할 수 있는 게 많아지면서 요즘 생각이 많아진 듯 보였다.

어린이집에는 아이를 보내지 않겠다고 최대한 자기가 키우겠다고 노력했던 친구였다.

아이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전업주부가 되었고

주말없이 바쁜 남편도 아마 집안일과 육아를 전담해주는 아내를 원했던 것 같다.

그렇게 6년째 친구는 나름 만족?하면서 지냈다.

나와 같이 미혼이면서 직장생활하던 친구들이 가끔 늦기전에 일을 좀 시작해보는 게 어떠냐는 대화에서도 친구는 살림과 아이를 돌보는 데서 직장생활보다 더 크나큰 보람을, 성취감을 느낀다고 말해왔다.


오랜만에 친구의 안부를 물었더니

문득 아주 오래된 얘기를 꺼냈다.

친구는 외동아들과 결혼했다. 시어머니도 전업주부이셨다. 결혼식 날짜를 잡고 상견례도 다 마친 상황이었는데 시아버지가 결혼식 전에 돌아가셨다.

시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룬 후 한달여 뒤에 친구는 눈물의 결혼식을 했다.

신혼여행을 떠나 온 첫째날인지 둘째날인지

친구는 난데없이 시어머니로부터 개념없고 예의없는 며느리라고 혼이 났다. 해외에서 안부전화를 드린 차에 전화기 넘어로 처음 들려오는 시어머니의

호통은 친구를 너무나 당황하게했다.

신혼여행 내내 마음이 너무 안좋게 지내다 돌아온 후에도.. 자기들은 집하는데 돈을 보태줬는데 차려온 살림살이가 성에 차지 않는 다는 둥, 결혼 전엔 보지 못했던 시어머니의 모습에 적잖히 놀랐다고 한다.

남편이 본가에서 자신의 짐을 정리하고 신혼집으로 이사오는 데 시어머니는 아들을 잡고 울고불며 매달리셨고 며느리인 자신을 마치 시어머니의 모든 걸 뺏어가는 사람처럼 보는 듯 했다고 한다.


그래도 친구는 최대한 이해하려고 애썼다.

남편과 사별하고 마음을 추스리지 못한 차에 하나뿐인 아들의 결혼, 단 몇달만에 시어머니에겐 남편도 아들도 없는 텅 빈 집이 남겨져버렸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남편도 친구의 눈을 피해 종종 어머니를 찾아가 마음을 다독여드리느라 애쓰고 있었을 거다.


친구가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회복된 건 손주를 안겨드리고부터 였다. 그 사이에 시어머니도 힘든 시간을 이겨내시고 며느리인 친구에게 그 당시 미안했었다는 사과도 하셨다.

친구는 그 때를 겪으면서 자신은 자식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는 엄마가 되지 않기를 다짐했다고 한다.


그 옛날 이야기를 꺼내면서 자기도 똑같이 자식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는 엄마가 되어있다고 고백한다. 점점 아이가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는데  아이가 혼자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지켜봐야하는데.. 이번 한 번만 엄마가 해주는거야! 하면서 해주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아들이 도와주려는 엄마 손을 뿌리치며

"이번  번만 하지마! 내가 할꺼야!"


유치원에서 다른 친구들이 혼자 씩씩하게 해내는걸 보고 자기도 혼자 하고 싶은데 자꾸 엄마가 건드린다고 오히려 혼내더라고...


아이는 저 만큼 커있는데 엄마인 나만 멈춰있었구나 하면서 문득 시어머니가 생각이 나더라고

이런 얘기를 누군가에겐 털어놓고 싶었는데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울먹이는 듯 보였다.


처음엔 아이가 커가는 걸 알게되면서 동생을 만들어주어야겠다고만 생각했단다, 아이를 또 낳으면 그 아이는 엄마의 절대적 도움이 필요할테니까..

그러나 둘째에 대해서 남편과 입장이 많이 달랐고, 시간이 지나다보면 남편도 둘째를 갖고 싶게 될꺼라 막연히 생각했다한다.

그러나 남편은 자신의 커리어를 더 신경쓰고 있었다. 남편은 어느새 경력을 인정받아 몸값을 높혀가며 이직하고 대학원과정도 이수해서 전문가로 발돋움했고, 이젠 회사에서 유학의 기회까지 받은 상태, 아이도 어느 정도 컸으니 둘째는 갖지말고 같이 유학을 가자고 제안했단다.


문득 집에서 자신 빼고  성장했구나

아들도 남편도,


육아와 살림이라는 방패 뒤에서 친구는 애써 지금은 아이와 함께할 때, 지금은 나보다 아이가 우선이야 라고만 도망쳐왓는데

이젠 아닌 게 확실해졌다는 거다.


친구에게 너의 희생덕분에 남편도 아들도 발전할 수 있었던 거라고, 위로하는 말을 던졌더니

친구는 이내 울어버렸다..


자신은 희생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희생 말고 자기도 성장했다고 해주면 안되냐는 거다..


성장했지 넌 분명히 성장했어..

남편과 아들의 성장이 너의 성장이야...

휴 이런 말을 해주려다 삼키고

이내 미안하다고 했다


친구는 이런 이야기를 애들 엄마한테 넌지시 던져본 적도 있는데, 이제 아이가 학교다니기 시작하면 또 다른 세계가 열린다면서.. 엄마의 할일이 정말 많다고 걱정말라?는 이야기를 주로 해준다고 했다.

예전같았으면 그러한 이야기에 위로와 안심이 되었을텐데.. 이젠 자기도 뭔가를 해서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한 것 같다고.


마침 남편의 유학이라는 좋은 기회가 생겼으니 토플부터 준비하려고 책을 펴는데..

분명 영문과 나오고, 어학연수도 오래해서 외국인과의 프리토킹도 문제없던 자신이었는데...

리딩부터 막혀서 암담하더라고.

근데 오래된 해커스 토플 책을 다시 펴는데 심장이 그렇게 두근거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나와 같이 토플 스터디하면서 정리해둔 보카 파일을 발견했는데, 그걸 다시 인쇄하면서 보니까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영어를 공부했었는지 모른다며..

추억이 아련했다.


그랬지,


친구와 스터디할 땐 하루에 백개의 단어를 외워서 테스트했었다. 지금은 하루에 많으면 스무개.. 그것만 다 외우고 안까먹어도 다행이라고 한다.


먼저 엄마가되어 여러가지 감정을 겪어본 친구는

전업주부가  나에게  마디의 조언이나 충고?같은  없이 솔직 담백한 자기의 이야기를 통해 나에게 메세지를 전달했다.


오랜만에 자존심 내려놓고 터놓은

솔직한 대화로 마음이 정말 충만해졌다.

그러면서도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우리의 어릴 적 추억이 이렇게 또 아름답게

빛을 내고 메세지를 전달해주는구나.


난 언제나 친구를 응원했고

이번에도 또 많이 배웠다.

이렇게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이 쌓였고

오늘의 추억이 또 빛을 내주겠지

멋있게 늙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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