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 그리고 그리움
엄마 아빠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모두 본적이 서울인
서울 토박이 조상님을 두고 있다.
우리 엄마는 직장도 서울이라서, 여행 이외에는 서울 밖에서 살아본 적이 없으시고
아빠는 강원도가 고향이시긴 한데,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모두 서울 분이셨다.
친할머니는 강원도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 서울댁이라고 불리셨다.
나도 어린 시절은 서울 밖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과거형이다..)
한편 일명 서울 사람?이라서 대학교 때까지
딱히 서울 관광지를 다녀본 기억이 없기도 하다.
대학 들어가고 나서야 지방에서 상경한 대학 친구들과 처음으로? 남산타워를 올라가 봤다.
어릴 때 부모님이 데려가셨을지 모르겠지만 기억엔 없다.
나의 본격적인 첫 자취는 취직하고부터였다.
입사할 땐 서울이었는데, 지방이전당한 그런 회사.
나의 서울 생활을 돌이켜보면,
지하철 타고 퇴근하다가 번개로 강남이나 양재 어디쯤에서
친구들이랑 맥주 한잔 기울이기도 하고
퇴근 후 예술의 전당이나 국립극장에서 공연을 보기도 하고.
잠실에서 야구를 보기도 하고, 올림픽공원에 콘서트 가기도 하고.
서울에서 회사 다닐 땐 내 나이가 젊기도 했고
체력도 넘쳐나서 다양한 문화생활과 여가생활을 즐겨왔던 기억이 난다.
하다못해 저녁 먹고 산책을 즐겨도 한강이었지.
20대밖에 안된 내가 강제이주 후 당황했던 것이 아마 퇴근 후에 뭐하지 였던 듯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놀 시간 없이 야근을 밥 먹듯 하긴 했지만
그래서 아, 서울에 있으면 퇴근 후에 할 일이 많은데
지방에선 퇴근 후에도 할 일이 일 밖엔 없도록 경영진이 머리를 쓴 건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무튼.
해가 길어진 여름밤, 모처럼 일찍 퇴근했는데, 아직 해도 떠있는데
친구도 없고, 할 것도 없고 피곤해서 쓰러져야 하는데 체력은 남고
새로 생긴 마트 정도 가보는 게 여가생활에 다 였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주말엔 멀어도 참 열심히 서울에 갔다.
만날 친구가 딱히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서울에 영혼을 두고 싶었나보다.
서울 가서는 그동안 못 한 쇼핑을 엄청 했던 기억도 난다.
그렇다고 비싼 게 아니고,
다이소나 모던하우스, 버터 샵, 이케아에서 뭘 그리 잔뜩 샀는지
지금 생각해도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쇼핑을 마치고 KTX를 타는 데 새살림 차린 것 같이
이케아 쇼핑백 두 개를 가득 담아서 일터로 돌아갔던 기억이 난다.
그땐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가족이 다 같이 이주한 직원은 금방 안정적으로 적응했지만
나처럼 나 홀로 떨어진 직원들은
무언가 빈 속을 채우고 싶은지 그렇게도 다들 서울 가서 쇼핑을 해대었다.
그나마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이야 다이소에서 열심히 쇼핑했지만
주머니 사정이 꽤 두둑했던 다른 분들은
백화점에서 충동적으로 쇼핑하신 분들 꽤 있었다.
특히 우리 부서 사람들은, 주말마다 썬글라스랑 양산을 그렇게 사셨다.
이해는 되는 게 서울과는 달리, 이주했던 지역은 햇빛이 저세상 햇빛..
근처에 높은 빌딩들이 없으니 직사광선이 그대로 사무실에 내리꽂았다.
사무실 블라인드를 암막으로 바꿔달라고
게시판에 빗발친 문의를 할 정도.
임시방편으로 사무실 창문에 신문지 붙였다가 외관을 망친다고 그마저 다 떼어버렸다.
오죽하면 사무실에서 썬글라스 끼고 근무했을까.
책상 위에 양산 펴 놓고 그림자를 만들어서 근무하기도.
매일 쓰는 거라 매일 다른 걸 하고 싶으셨는지
우리 사무실은 썬글라스와 양산 컬렉션 쇼에 버금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 풍경이 따로 없는데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서울에 사는 고마움을 몰랐다가,
지방에 가보니 우리나라가 얼마나 극심한 서울공화국인지 깨닫게 된 것 같다.
뭘 하려고 하면 다 서울에 가야 하니 말이다.
그만큼 서울에 있으면 하루가 길었던 것도 같다.
할 것이 많아서.
체력이 받쳐줄 때는 주말마다 서울에 가서 서울이 그렇게 멀지 않게 느껴지기도 했고,
여전히 나는 서울 사람이라고 고집을 부렸었는데
그것도 2년 정도 했나?
허리가 아프고부터는 거의 스스로 찾아서? 서울에 간 일이 잘 없던 것 같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회사까지 도어 투 도어 20분이면 가는 것에 감사하고 회사, 집, 운동으로 생활이 단출해지니까
그다음은 굳이. 서울을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지도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서울 갈 일은 한 달에 최소 다섯 번씩은 꼭 있었다.
일단 결혼식이 있고, 이를 위한 청첩장 모임이 있고
그 밖에도 연례행사들 예를 들어 스승의 날, 어버이날
그리고 그놈의 회의들.
가고 싶어서 서울 갈 때는 서울만 보내주면 너무 감사했는데,
가기 싫은데도 서울까지 가야 할 때는 너무 번거롭고 귀찮았다.
근데 또 그렇게 짜증 내면서 서울에 가면, 왜 이리 좋은 건지.
애증스런 서울.
그나마 부모님 집이 서울에 있는 나와 같은 직원들은
서울에 가도 잘 곳이 있으니까 크게 부담은 없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직원들은 서울에서의 일이 늦게 끝나면 당일에 집이 있는 지방까지 내려가야 해서
많이들 고단해하기도 했다.
서울 갈 일이 이렇게 많은 줄 알았으면
서울 자취방을 빨리 정리하지 않았을 거라고 토로하는 직원들도 꽤 있을 수밖에.
유유상종인지.
모임을 하면 다들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인데
살고 있는 곳들이 지방 각지 각각이다.
애매하게 3시부터 만나서 최대 8시까지 술 마시고 헤어진다.
그래도 재밌는 건 서울역 부근에서 KTX 타고 지방 가는 거나
지하철 타고 경기도로 가는 거나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비슷하다는 점.
차비는 10배겠지만.
얼마나 부지런히 준비해서 서울 와서 놀아야 하는지
이러니 서울이 돈을 쓸어 모을 수밖에.
이러니 서울 집값이 치솟을 수밖에.
그래도 서울이 그립다.
다들 한국이 그립다 하는데, 나는 서울이 그립다고 해서
해외에 나와있어도 내가 서울 사람이 아닌 게 꼭 티가 난다.
회사 이주 한 이후로 서울이 그립다가 입에 붙어서 그런다고.
머릿속으로 한국을 생각하면서도 입 밖으론 서울이 그립다고 말하게 된다.
서울의 삶.
가끔 놀러가는 서울은 참 좋은데,
그 속에서의 삶은 빠듯했지.
지방에서 자차타고 다니다가
서울에서 지하철을 오랜만에 타면
이 갑갑했던 걸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느끼고 살았던 걸까 느낄 때도 많았다.
그 빡빡했던 2호선.
가방을 끌어안고 숨막히는 지하철에 과감히 내 몸뚱아리를 던져서 30분이상을 참아내고 살아왔다 정말.
서울체크인에서 이효리가 제주 친구들 데리고
서울구경하는 걸 보는데,
서울에 저런 곳이 있었나 싶고
저렇게 신나하는 사람들을 보니 서울이 그립고
이효리는 서울 살 때 정말 빡빡했을텐데
서울을 좋아하는 친구들 보면서, 빡빡했던 옛 기억 잊고 같이 즐기는 모습이 흥미롭기도 하다.
서울아.
날 좀 뱉어내지 말고 받아주면 안되겠니.
(사진 출처: 서울체크인 유튜브 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