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밥이 뭘까
매일 먹는 게 일이라, 누구나에게 밥은 의미가 있겠지 싶다
나에게 밥은, 알약으로 대체했으면 좋겠는 귀찮은 존재이기도 하고
특히 그놈의 밥이 모라고, 아빠에게는 존재의 가치이기도 하다.
그런 아빠 때문인지 밥에 대한 트라우마도 있는 편이다.
나에게 밥은 그다지 긍정적인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전업주부가 되어서도 제일 하기 싫었던 게 식사준비. 그나마도 반찬까지 만들 능력은 안되고 한그릇 요리를 저녁으로 한끼 정도 차리는 날라리 주부였지만
뭐랄까, 식사준비는 전업주부가 된 나에게 필수 업무? 주요 업무 처럼 느껴진다.
그러던 내가 오늘 유독,
여러 솥의 밥을 지어 냉동시키면서
처음으로
밥은 사랑하는 마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남편을 외국에 두고 출산하러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혼자 다시 이곳에서 살아가게 될 남편을 위해
그저 나는 밥을 만들어 둔다.
남아있는 쌀들로 최대한 밥을 지어두어 냉동실에 얼려두려고.
다른 밑반찬은 못해도, 집에와서 밥이 있으면 김에 싸서라도 먹을 수 있을테니까...
사실 제대로 된 밥솥이 없다.
부모님의 여행용 밥솥을 챙겨와서 한번에 2-3인분밖에 못하고, 보온 기능도 없고, 타이머 기능도 없다
열악한 밥솥은 밥 한끼 짓는데 두 시간이 걸린다.
그런 밥솥으로 남편이 퇴근 후 밥을 지어서 먹을 것 같진 않다.
아니지 사실 힘들 것 같다.
햇반으로 해결하면 되긴 하지만....
어떻게 된건지 현지에서 파는 비비고 햇반 같은 거는 군내가 나서 먹기 괴롭다.
배고파서 어쩔 수 없이 먹는 거지 돈 주고 사먹긴 싫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더더욱,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남은 기간 동안 저 열악한 밥솥을 여러번 돌려서 밥을 지어 얼려두고 가는 거...
밥 짓고 덜고 설거지 하고 다시 밥 짓고..
이 과정이 귀찮고 싫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하고싶다.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와 혼자서도,
얼린 밥 해동해서 저녁이라도 잘 챙겨먹었으면 좋겠는 그런 마음...
혼자 쓸쓸하게 외국에 남아있을 남편 생각하면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밥 밖에 없는 것 같다.
주부가 되어 내 인생에 가장 크게 바뀐 게
밥을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에 꼬리를 물다보니
아빠 생각도 난다.
밥 안차려주면 무시당하는 것 같다는 식으로 표현하시긴 했지만
사실, 엄마한테 잘 차려진 밥을 얻어먹고 싶어했던 건
아빠가 밥을 사랑이라고 생각해서 였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도 이해는 안된다. 표현방식이 폭력적이었기에.
아무튼,
주부가 되어서 인지, 상황이 이렇게 되서 인건지,
그동안 나에겐 귀찮기만 했던 밥이라는 행위가
가족을 챙기고 싶은 마음, 사랑, 애정 이런 것으로 느껴지는 건 처음이다.
열악한 밥솥으로 열심히 밥을 짓는다.
나 없어도 내 자리를 이 밥들이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남편의 허할 마음을 작게나마 채워주길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