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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끌 Dec 12. 2022

단식광대


오랜만에 카프카의 <단식광대>를 다시 읽었다. 15년 만에 읽었지만 여전히 좋더라.

단식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광대는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단식광대가 인기가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루하루 날이 갱신될 때마다 수많은 군중들이 광대 우리 주변을 둘러쌌다. 그때를 그리워하며 광대는 단식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갈수록 떨어지는 인기. 광대는 서커스단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와 다른 곳으로 가지만 더 대우를 받지 못한다. 동물 우리 한 켠. 그곳에서 동물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단식 기록을 경신한다. 하지만 그맘때 구경꾼들은 단식광대가 기록을 경신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

단식광대는 상황이 변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계속해서 자신의 직업에 집착을 하고, 비참한 상황이 이어져도 애써 태연한 척하며 단식을 이어간다.  


*


지난주에 거제 매미성이란 곳에 다녀왔다.

매미성은 2003년 태풍 매미로 경작지를 잃은 시민 백순삼씨가 작물을 지키기 위해 홀로 쌓아 올린 성이다. 한 사람이 19년간 만들고 있는 성. 여전히 미완성인 성이다. 막상 가보니 유럽의 동네 작은 성보다도 못한 외양이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갔기에 볼거리가 별로였지만 실망하지는 않았다. 그저 한 인간이 의지를 가지면 성(혹은 산)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이, 속담이나 사자성어 속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펼쳐지는 게 신기했다.


그렇게 대단한 의지산물을 보고 왔으니 엄청난 의지가 샘솟았을 것 같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저렇게 의지와 집념이 강한 사람도 있구나', 신기해했을 뿐. 올해 내 마음 상태는 타인의 의지에 자극이 아니라 구경꾼 모드로 전환될 뿐이다. 나도 '강인한 의지'가 있던 시절이 없진 않았다.


올해 초까지는 '중력과 관성'에 지배당하고 있다. 나는 지구라는 자석에 딱 붙은 철처럼 자꾸만 자꾸만 아래로 붙어가고 있다. 매일 출근이란 관성에 익숙해졌다. 어제도 오늘도 다른 변화 없이 흐르기를. 애쓰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마침내 변화가 왔다. 단식광대를 읽으며 슬픈 관성을 떠올렸다. 상황이 변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일에 집착하다 결국 자기 파멸에 이르게 되는 사람.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광대짓일 뿐.


중력과 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나는 광대가 아니다. 나는 대단한 의지를 갖고 있지도 않다. 그러니 걷는 걸 멈춰야 했다. 움직이던 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다르게 움직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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