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지 마.
속으로 외친다.
'꿈(욕망)을 그리며 살아갑니다'
'가족이 있어서 살아갑니다'
'사랑이 있어서 살아갑니다'
꿈, 가족. 사랑... 왜 살아가야 하는가를 물을 때, 사람들은 주로 이런 추상명사들을 그 이유로 든다.
실상 많은 사람들은 그냥 산다. 오늘이고 내일이고 별 차이 없는 삶, 살다 보니 살게 되었다. 배고파서 밥을 먹고, 잠이 와서 잠을 자고, 아침이 되어서 출근을 하고, 저녁이 되어 넷플릭스를 보거나 게임을 하다 보면 잘 시간이 된다.
문득 누군가 삶의 이유를 물어보면 억지로 찾아낸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무의미가 되지 않도록. 특히 많은 영화나 소설에선 '사랑'을 결론으로 보여준다. 할리우드 영화의 결론은 대부분 가족을 향한 사랑이나 연인을 향한 사랑이다. '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당신이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었어)'란 유명한 대사를 만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도 캐릭터 변화는 사랑이고, <매트릭스>의 네오는 사랑의 키스로 눈을 뜨고, 심지어 얼마 전 개봉한 <아바타 2 : 물의 길>도 3시간 내내 가족을 향한 사랑으로 꽉 채웠다.
굳이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면 '사랑'뿐인 건가?문득 이것은 불합리하다고 느꼈다. 한국의 경우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1/3(716만)이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다. 세계적으로 1인 가족이 늘고 있다. 우리는 결국 혼자가 될 것이다. 혼자 사는 우리들에게 사랑은 있다가도 없을 수 있는 것이다. 가족을 향한 사랑이든, 연인을 향한 사랑이든. 그렇다면 사랑이 없는 순간의 삶을 외롭다고 느낄 것이 아니라 이것이 보편적인 삶임을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닐까.
'어차피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게 인생.'
'인생은 원래 고해.'
'삶은 무의미.'
'인간은 유전자의 운반체.'
이런 이야기를 습관적으로 하면 답은 없다. 그냥 살던 대로 살면 된다. 틀린 이야기도 아니니. 그래도 살아갈 이유를 생각해봤다. 그러니까,
사랑이 없는 삶,
혹은 행복하지 않은 삶,
혹은 욕망하지 않은 삶이어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지금까지 생각하기론 이렇다.
우리는 거창하진 않지만 작은 것들을 누리는 것은 가능하다. 짝사랑을 하거나, 소소한 행복을 얻거나, 일상의 재미를 발견하거나, 자그마한 욕망거리를 찾거나. 그러니까 큰 사랑은 없지만 작은 사랑은 때때로 가능하다. 나의 경우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을 챙겨보고, 강아지 동영상 보는 걸 즐겨하고, 카페 가서 책 읽으며 라테를 마시며 분위기 잡는 걸 황홀해하고, 딸기생크림케이크를 두 조각 시켜서 두 번째 조각을 먹는 순간을 사랑한다. 클라이밍을 잘해서 하늘 높이 올라가고 싶은 꿈(욕망)이 있고, 다리찢기가 180도가 되었으면 하는 꿈이 있다. 대부분의 독서 모임이 재미가 없어서 재밌는 독서 모임을 여는 꿈도 꾸고 있다.
인생의 거창한 존재 이유까진 되지 못하지만 작은 사랑, 작은 욕망, 작은 행복, 작은 유머, 작은 발견, 작은 차이들은 가능하다. 어제와 다른 하늘을 볼 수 있다. 어제와 다른 공기, 어제와 다른 옷을 입을 수 있다. 어제와 다른 걸 먹을 수 있고, 어제와 다른 기상시간이 가능하다. 같은 루틴대로 사는 것처럼 보여도 나만 아는 약간 다른 변화구를 던질 수 있다.
죽을 만큼 대단한 사랑이 있는 건 아니지만 생각나면 좋은 사람들은 존재한다. 그러니 이유로 내세울 정도의 거창한 사랑이 없는 삶에서도 살아간다. 살아가는 이유는 없다. 내세울 정도의 이유는. '하늘이 조금씩 바뀌는 걸 보려고 살아간다', '딸기생크림케이크를 먹기 위해 살아간다'고 답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