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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라푼젤 Mar 28. 2024

성격은 정말 타고나는 것일까?

대니얼 네틀 <성격의 탄생> 서평


부모님의 MBTI를 정확하게 맞출 수 있는가? '아, 내가 부모님의 성격을 이리도 모르고 살았구나' 식의 감성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가장 가까이에서 동고동락해 온 부모님이나 친동생의 MBTI도 나는 정확히 맞추지 못했다. 하지만 처음 만나 불과 몇 시간 이야기를 나눈 사람의 MBTI는 오히려 쉽게 추정하기도 한다. 낯선 사람은 본인이 드러내고자 하는 가장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여주지만, 내가 여태껏 봐온 동생과 부모님의 모습은 수백 가지, 수천 가지에 이르기 때문이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어느덧 한 이불 덮은 지 햇수로 8년 차가 되었지만, 아직도 새로운 모습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MBTI를 게임처럼 즐기면서도, 동시에 철저하게 불신하기도 한다. 


저자가 첨부한 <성격 진단표>에 따르면, 내 성격은 다음과 같다.


진단표에 따른 결과는 내가 예상했던 대로다. (내가 그렇게 체크를 했으니 당연하겠지.) 하지만 저자가 각 성격특성을 설명하며 나열한 특징들은 공감되지 않는 부분이 꽤 많았다. 물론 외향적이지 않은 사람의 특징보다는 외향적인 사람의 특징이, 신경성이 높은 사람의 특징보다는 신경성이 낮은 사람의 특징이 더 많이 나의 것들과 일치하긴 했지만, 정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나는 성실성 수치가 3으로 매우 낮다. 저자는 '성실성 수치가 높은 사람은 집중력이 강하고, 체계적이며 산만하지 않다'라고 표현하고 있으니, 반대로 성실성 수치가 낮은 사람은 집중력이 낮고, 체계적이지 않으며 산만하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체계적이지 못하고 대체로 산만하긴 하지만, 한번 집중하면 어떤 일에든 쉽게 몰입한다. 해야 할 일을 쉽게 미루되, 해야만 하는 일은 반드시 완벽하게 해내는 편이다. 아무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서평에도 늘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랜덤 배정되어 연속성이 전혀 없는 - 심지어 보수까지 적은 - 교육청 감사관 일을 할 때에도 더 퀄리티 좋은 보고서를 쓰고자 자진해서 (집에서) 야근을 감행한다. 나는 성실한 사람일까, 성실하지 않은 사람일까.


핸드폰 문자함에는 읽지 않은 메시지가 15,409개 쌓여있고, 책상은 늘 아수라장이지만 클라우드 속 사진첩은 날짜 별 장소 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어있다. 여행 계획은 전혀 세우지 않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여덟 달 전에도 웨이팅리스트를 작성하고 예약금을 내어놓는다. 외향적인 성격 탓에 모험을 즐기지만, 겁이 많아 바이킹이나 청룡열차는 꿈도 꾸지 못한다. 친화성에서 '중하'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생전 본 적도 없는 사람의 이야기에도 쉽게 눈물을 흘리고 친구들의 고민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인다. 개방성이 높아 정치적으로 진보성향에 가깝고 전통에 반항하는 태도는 있으나, 초자연적이거나 영적인 힘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사주도 제대로 본 적이 없고, 종교도 없으며, 오직 검증된 과학만을 믿는다. 


이런 모순적인 특성들도, 내가 이 책을 삐딱한 자세로 읽은 것도 저자는 내 유전자에 쓰인 타고난 성격이라 주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성격이 타고난 것일지언정 변화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쉽사리 동의가 되지 않는다. 살면서 스스로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느끼기도 하고, 위 사례들처럼 내 안에는 수없이 다양한 모순적 특성이 존재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장에서, 가족 앞에서, 친한 지인 앞에서, 낯선 사람 앞에서, 잘 보이고 싶은 사람 앞에서 등등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성격이 된 적도 무수히 많았다. 장기간 연락이 끊겼던 친구가 180도 바뀐 성격으로 나타나거나, 부부가 함께 살면서 꽤나 비슷한 성격으로 닮아가는 과정도 심심치 않게 보았다. 물론 저자의 주장대로 타고난 성격은 고정적이되 상황과 환경에 따라 발현되는 정도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환경과 상황에 따라 성격의 발현 정도가 계속적으로 달라지는 것이라면, 성격을 정의하는 것이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공유환경인 부모의 성격은 (유전적인 영향 말고는) 자녀의 성격에 여하한의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양육방식도 아이의 성격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부모의 식습관, 흡연, 가족 규모, 교육, 인생철학, 성적 취향, 결혼 상태, 이혼, 재혼 등도 아이의 성격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주장은 '성격은 유전적 영향이 50% 이상이고(저자는 환경을 완벽하게 통제하면 유전적인 영향이 심지어 그보다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공유환경(부모의 양육환경)은 성격형성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성격'이라는 것도 '키'처럼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아주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7개월 된 아기가 낯을 많이 가리고 다소 예민한 기질을 가진 것 같아 다양한 환경에 노출시켜 주고자 주 4일 문화센터에 다니는 중인데, 나와 이모님의 이런 노력들이 아무 쓸모가 없다니... oh, no,,,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자가 정의하는 '성격'이 내가 생각하는 '성격'과 조금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자는 타고난 '기질'을 기반으로 한 다소 협의적 의미의 성격을 기반으로 이 책을 서술한 것 같고, 나는 사람의 전반적인 행동양식을 모두 포괄하여 성격을 좀 더 광의적 개념으로 해석한 듯싶다.


하지만 '높은 지능'이 '좋은 성적'의 필요조건이나 충분조건은 아닌 것처럼, 타고난 기질이나 성격이 아이의 자존감이나 행동양식, 발현되는 특성을 결정하는 데 있어 절대적인 요소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신경성이 높지만(저자는 신경성이 높으면 일반적으로 자존감과 자기 확신이 낮다고 말한다.), 부모의 양육방식에 따라 높은 자존감을 가진 아이로 자랄 수도 있다. 외향적인 아이가 일반적으로 더 활달하고 사고를 많이 치는 기질을 가지지만, 예의를 강조하는 부모 밑에서 온순하고 차분한 아이로 성장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아무리 외향적이고 신경성이 낮은 기질을 타고났어도 양육환경에 따라 자존감이 낮고 폐쇄적인 아이가 될 수도 있고, 자라면서 맞닥뜨리는 새로운 환경에 의해 억눌렸던 기질이 발현되어 또 다른 성격의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격에 대한 불만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삶에 대해 달리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재구성해야 한다.
자신의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성격을 바꾸라는 말이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필요한 것은 자신의 성격이 가진 의미와 장단점을 이해하고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현명한 선택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많은 것 중 하나가 자신에 대한 자각이다. 


저자는 성격을 변화시키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 성격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그에 맞는 일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외향적이지 않은 사람이 억지로 다른 사람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서 조롱을 받을 필요는 전혀 없다. 친화성이 낮은 사람이 구태여 자신과 성격이 잘 맞지 않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불편함을 느낄 필요도 없다. (물론 본인이 그 일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다른 문제지만,)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었을 때처럼 자신의 성격에 가장 잘 맞는 일을 할 때 우리는 비로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책을 읽으며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MBTI를 뒤적이며 스스로를 탐구하는 것도 모두 스스로에게 가장 잘 맞는 일을 찾기 위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선택의 키질은 일정하지 않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갈라파고스 군도의 작은 섬에서 조차 자연선택은 일관된 부리 크기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살다 보면 가뭄도 만나고 홍수도 만난다. 유전적 차이가 존재하는 이유는 결국 다양한 환경에서 어떤 유전적 특징이 유리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은 '방황선택'과 '역의 빈도의존성 선택' 등을 통해 종의 다양성을 유지시킨다. 성격도 마찬가지다. 어떤 환경에서든 늘 유리하거나 좋은 성격이란 없다. 동일한 목적을 가진 유전적 메커니즘 하에서 우리는 조금씩 다르게 성장해 나간다. 한 가지 특성에는 비용과 혜택이 동시에 존재하고, 모든 특성과 성격에는 다 이유가 있다. 우리네 인간세상은 다양하기에 더욱 아름답고, 다르기에 자주 사랑에 빠진다. 비슷한 성격을 가진 이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좋아서,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이는 너무도 다른 매력을 가져서 좋다.


아직 내 아이는 고작 7개월밖에 되지 않아 어떤 기질과 성격을 지녔는지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 살면서 이 아이의 모습에 무수히 감탄하고 때로는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이 아이의 성격상 문제는 이 아이의 잘못이나 내 양육 탓이 아니라는 점이 내게 다소간의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 만약 나나 남편이 외향적이지 않고 소심한 유전자를, 예민하고 신경성이 높은 유전자를, 성실하지 못한 유전자를 아이에게 물려줬을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어떤 특성을 가진 아이건 간에, 아이가 본인의 특성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만큼이라도 내가 충분히 해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가 아이의 성격 형성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자존감이 높고, 다른 사람에게 늘 친절한, 인간에 대한 사랑을 결코 잃지 않는 그런 아이로 키우고 싶다.

어쨌거나 유전자를 물려주고 아이가 맞닥뜨릴 여러 환경을 제공하며 아이의 성격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결국 부모라는 점에서 다시 한번 책임감을 느낀다.
지우야, 네가 어떤 성격이건 간에 너는 행복한 아이로 자랄 거야♥




저자의 여러 주장 중 특히 마음에 안 들었던 것 -_-

1) 근거 제시도 없이 특정 성별은 어떤 특성을 많이 보인다는 주장


2) 외향적인 사람이 사고에 노출될 위험이 높다라고 주장하면서, '에베레스트에서 300명이 죽고, 1,000명이 등반에 성공했는데, 등반을 명이 시도했는지는 모르지만 '대충' 3명이 시도해서 1명이 성공했다고 가정하면 10%가 죽었으니 에베레스트 등정은 위험하다'라고 이야기한 것... 에베레스트 등정이 위험한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성의 없는 가정이라 황당했음


3) 양육환경이 성격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극심한 가정폭력 등은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가정은 정상적인 가정에 속하지 않는가?'라고 이야기한 것.... 너무 무책임한 발언이고 신뢰도가 팍팍 떨어져서 이 사람은 실험도 연구도 대충 했을 것 같고 논문도 지 입맛대로 가져다 썼을 것 같다고 확신했다... 


2024년 3월 28일, 스물다섯 번째 책당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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