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아빠에게 쓰는 편지.
아빠, 사실 이 글은 ’붙이지 않는 편지 쓰기‘인 나만의 독백입니다.
그래서 아빠에게 언제쯤 전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꼭 전하고 싶네요.
이 가을, 누구에게 편지를 쓰고 싶냐는 질문에, 미안하게도 저는 익숙하고 당연스럽게 엄마를 떠올렸답니다. 그 생각에서 흠칫 놀라며, 왜 아빠에게는 편지를 써본 기억이 별로 없는 건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어요. 어린 시절에도 엄마가 떠난 후에도, 직접 전했든 마음에서 전했든 엄마에게는 많은 이야기와 생각을 전했던 것 같은데 왜 아빠에게는 그러지 못했던 걸까요? 어쩌면 늘 곁에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아빠는 내 마음을 잘 알 거라는 이유로 많이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지금이라도 종종 편지를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하며 뒤늦은 시작이 아니길 바랍니다.
아빠가 남은 생의 나날들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낸다는 현실에, 이 못난 딸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음에 죄스럽고, 늘 웃게 해 드리고 오고픈 마음에 힘이 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하지 못하고 뒤돌아온다면, 저는 언젠가 아니, 뒤돌아서는 그 순간부터 후회할 것임을 알기 때문에 늘 애를 써 봅니다. 그래서 지금은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욕심과 미련, 속상함은 접어두고, 할 수 있는 것을 계속해서 찾아내보고 있어요. 아빠가 가장 원하고 제가 해드리고 싶던 평범함을 드릴 수는 없지만, 평범하지 않음 속에 특별함으로, 끝내 가지지 못한 평범함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드리고 싶어요.
그러나, 그것도 쉬이 이뤄지지는 않겠지요. 과연 아빠가 저와의 마지막을 보내는 그 순간에 어떤 무엇을 보여드릴 수 있을지, 저는 확신할 수 없어요. 그래도, 무엇을 해내는 것을 꼭 보아야만 아빠가 안심하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어떤 결과를 만들고 자랑스러운 무언가가 되는 것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순간마다 만족하여 스스로를 사랑하며 진정 행복해하는 제 모습을 보는 것이 아빠에게도 제일 중요하리라는 것을 저는 잘 알거든요.
9년 전 아빠보다 제가 먼저 떠날 뻔했던 늦가을 그리고 그 겨울.
마지막일지 몰랐던 그 순간 속에 아빠의 공연을, 연극을, 노래를 보았던 그날이 문득 떠오릅니다. 이 말은 지난번 외래 후 지나던 추억의 공연장 앞에서 아빠에게 했던 말이기도 하네요. "그때, 아빠가 나와의 마지막일지 모르는 순간에 슬퍼만 하지 않고, 웃으며 열심히 연습해서 보여준 그 공연은 ‘아빠 이렇게 잘 지내고 있을 테니 꼭 힘내서 돌아오라’, 안심시키는 것이었고, 나의 힘든 시간을 응원하는 것이었다는 생각을 했었다"라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잘 살아났을 거라고.
지금 저는 아빠와 자식과도 같은 반려견들을 곧 떠나보내야 하지만 그저 슬퍼하고만 있을 순 없어요. 모두를 떠나보내고 모두에게 죄스럽지 않도록, 후회하지 않도록, 그리고 홀로 남은 저를 살게 하기 위해 저는 저를 살릴 어떤 것들을 하나씩 찾아내어 삶의 일부로 스미게 하고 있어요. 어쩜 저는 아빠를 그리도 닮은 건지, 아빠의 해맑은 모습처럼 밝게 살아간답니다. 그래서, 아빠에게 언제나 힘든 인생에서도 모두 잊고 아무 시름없이 웃게 하던 딸로 끝내 기억되기를 바라고 바랍니다.
다음 주에는 20년 만에 다시 어린 시절의 꿈을 찾고자 시작한 합창으로 공연을 하게 되었어요. 아빠에게 오랜 추억들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고싶어요. 32년 전, 가까스로 목숨만 건졌지만 삶의 희망을 모두 잃었던 아빠. 아빠의 그 삭막한 병실에서 간호사, 의사, 보호자들, 환자분들 그리고 눈물과 땀에 젖은 엄마 아빠를 관객으로 모아 두고 두 손 모아 기적을 노래하던 그 목소리 그대로, 지금도 아빠를 살게 하고픈 이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러니, 기적이 또다시 우릴 찾지 않더라도, 눈 감는 그날까지 저의 노래가 아빠의 미소를 지켜주기를. 작은 기쁨으로 가득하고 평온한 나날을 보낼 수 있게 하기를 바라고 바라며.
고단하기만 했던 아빠의 인생을 모두 위로할 수 있기를.
2024.11.06. 22:00.pm~ 07. 01:30.am
입동, 가을의 끝에서.
아빠의 사랑스러운 딸 스윗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