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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혁 Jan 04. 2024

방송을 직업으로 선택한 이유

내향인인 내가 어쩌다가...

앞선 글에서 소개했듯 내 직업은 스포츠 캐스터다. 큰 범주에서 보면 일종의 아나운서고, 그중에서 스포츠 중계라는 특수한 분야를 맡는다. 


방송인이 된다는 건 큰 각오가 없이는 쉽지 않은 길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방송하는 친구들을 봐도 대부분 아주 어릴 때부터 이 분야를 꿈꾸며 착실하게 준비해 온 이들이다. 어쩌다가 내가 감히 이 길에 접어들게 되었는지... 돌아보면 뜻밖의 선택이 연속된 결과였다. 우연이라고 할 만한 작은 결심들로 접어든 길이라 나에게 약간은 운명적으로 느껴지는 듯하다. 


나는 숫기가 없는 편이다. 평소에는 말수도 별로 없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물론 어린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사회화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긴 하지만. 원래 본성은 그렇다는 거다. 그러므로 당연히 내가 이런 직업을 가지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학교에서 장래 희망을 적어 내라고 하면 그냥 그때그때 꽂혀 있는 걸 쓰곤 했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나의 첫 장래 희망은 작곡가였다. 초등학교 2학년 정도였을 거다. 피아노 학원을 열심히 다니던 시기였다. 하지만 연습을 게을리 했다. 지금도 음악은 좋아한다. 가끔은 그때 좀 더 성실하게 피아노를 배웠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다음은 언론인이었다. 중학생 때는 교지편집부 활동을 했다. 글쓰기를 그래도 체계적으로 하게 된 계기였다. 실제로 글쓰기보다는 부실에 있는 컴퓨터로 게임을 더 많이 했다. 언론인은 사실 무슨 뜻인지도 잘 몰랐었고 그냥 막연히 기사 쓰는 사람 정도로 알고 있었고, 그게 왠지 있어 보여서 희망 직업을 그렇게 썼던 것 같다. 그래도 부모님이 그걸 보시고 흡족해 하셨던 기억은 있다. 지금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으니 어쨌든 조금 비슷한 길로 오긴 했다.


고등학생 때는 갑자기 영화가 좋아졌다. 시나리오 작가 또는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되는 대로 극장에 다니고, 영화 잡지를 종류별로 탐독했다. 잡지를 읽다 보니 영화 평론가도 멋져 보였다. 고등학교 졸업 앨범에는 뭉뚱그려서 '장래희망: 영화인'이라고 썼다. 영화과를 갈까 했었는데 부모님이 반대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굳이 영화 전공을 안 해도 영화 관련 일을 하는 데 별 문제는 없었다. 영화도 여전히 좋아한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나는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다. 책 읽는 것도 좋아했고, 언어에 관심이 많았다. 국어사전을 취미처럼 뒤져 봤다. 흔히 쓰는 단어의 뜻이 국어사전에 풀이되어 있는 걸 보면 때때로 묘한 기분이 든다. 국어를 전공하면 나중에 국어사전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린 나는 막연히 그런 뜻을 품고 대학에 갔다. 그리고 두 달 만에 그 꿈을 접었다. 주변에 공부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학문의 길과는 잘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세상에는 재밌는 게 너무 많았고 나는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한 적이 별로 없다.


그러다 어떤 운명처럼 교내 방송국에 아나운서로 들어가게 됐다. 친구가 지나가는 말처럼 권했었다. "너는 목소리가 좋으니까 아나운서를 해보면 어때?" 원래의 나라면 그냥 흘려 들었을 이야기였을 텐데 마침 그때 나는 무척 심심했고 안 해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반쯤 충동적으로 지원했는데 다행히 남자 아나운서는 경쟁률이 그리 높지 않아서 뽑혔다. 내 인생의 물줄기가 크게 경로를 바꾼 순간이었다. 


그건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살면서 내린 결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원대한 목표나 포부를 가지고 시작한 일도 아닌데, 결과적으로는 그 결정이 내 진로를 굳혔다. 돌이켜 보면 오히려 주저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일 거다. 안 하던 걸 시작하려면 고민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지만 방송은 생각보다 적성에 맞았다. 호흡과 발성을 익힐수록 조금씩 방송에 적합해지는 내 목소리도 마음에 들었고, 친구들과 협업으로 방송이라는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 자체도 보람찼다. 나는 아나운서로서 방송의 기본기와 마음가짐을 그 시기에 다 배웠다. 조금 과장일 수도 있지만 나는 아직도 그때 얻은 능력으로 방송을 하고 있는 셈이다. 


군대에 다녀온 뒤 나는 본격적으로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준비를 시작했다. 그냥 막연히 방송을 직업으로 삼으면 즐거울 것 같았고 처음부터 스포츠 캐스터를 지망한 것은 아니었다. 전문 학원에서 아나운서 과정을 수강하면 다양한 장르를 배우게 된다. 하루는 뉴스, 하루는 라디오, 하루는 내레이션, 이런 식으로. 그러다 스포츠 수업을 들은 뒤에 깨달았다. 내가 가장 꾸준히 좋아해 온 게 바로 스포츠라는 거였다. 이거라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겠다 싶었다.


그 뒤 여러 차례 좌절의 시간을 거쳐 2014년 커리어를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여전히 내향인이어서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건 조금 두렵다. 그래도 스포츠 중계는 대개 작은 부스 안에서 해설자와 단둘이 이야기하는 구조라 편하다. 물론 수많은 시청자들이 듣고 있겠지만 환경적으로는 그렇다. 가끔 행사를 진행한다거나 하는, 많은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 일도 하는데 그럴 때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수없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10년 정도 이 일을 무탈하게 하고 있는 걸 보면 그래도 나랑 잘 맞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돋보이려고 해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방송 진행이 다 비슷하겠지만 스포츠 중계는 특히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그것을 빛나게 만들어 줘야 한다. 옆에 있는 해설자의 말을 잘 듣고 적절한 이야기를 유도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경기 안에 담겨 있는 희로애락을 팬들에게 잘 전하면 그걸로 내 역할은 다한 거다. 다만 내가 가진 말의 총량을 일하는 데 집중해야 하다 보니 일하지 않을 때는 말을 별로 안 하게 된다. 나는 오늘도 아껴둔 에너지를 분출하며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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