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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안 Jan 27. 2024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 <스투파의 숲>

예술이 대중에게 다가가는 법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 <스투파의 숲>


스투파란? 불교의 발상지 인도, 그중에서도 남인도에 많이 지어졌던 일종의 사당이다. 부처님이나 덕망 높은 고승이 입적하면 몸에서 나온다는 ‘사리’를 모셨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으며 부분적으로 남은 유물이나 옛 터로 흔적을 짐작한다.






출처 : 네이버 예약




올해 첫 전시 관람이었다.

스투파를 처음 알았기에 신선했고,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공동 개최하는 전시라서 기대도 컸다.

하지만 나는 천주교 신자. 아는 불교 예술이란 석굴암과 불국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 어쩌다 들른 사찰에서 스친 탱화가 전부였다. 배경지식이 많지 않다.

영화를 보고서도 나무위키로 관련 내용을 한 번은 훑고, 전시는 오디오 해설을 꼭 챙기는 성미. 이번에는 친한 후배와 함께하기에 그럴 수 없다. 약간 불안했으나 작품 옆의 설명글을 유심히 보기로 하고 관람을 시작했다.






연꽃, 전시의 시작



이윽고 전시장을 나서면서 나와 후배는 ‘정말 좋은 전시였다’는 감탄을 거듭했다.

작품들의 수준이 높아서? 맞다.

많은 작품들이 전시돼서? 그것도 맞다.

그러나 정말 좋았던 건 이 전시가 그 주제와 낯선 대중에게 다가오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특정 종교 예술은 자주 나타나는 비유와 상징이 있다.

천주교 신자인 나에게 친숙한 예를 들어 보겠다. 젊은 어머니와 어린 남자 아기가 천주교 예술에서 등장하면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님으로 읽는다. 허공에 떠 있고 날개가 달린 사람은 대개 대천사 가브리엘일 것이다. 성인 남자 셋이 무릎을 꿇거나, 마구간 주변을 서성인다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러 온 동방박사이다.

키워드를 알면 관람객 각자 작품을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다. 해당 종교에서 중요한 인물이 가운데가 아닌 외곽에 있다면 당시 파격적인 작품이었거나, 이 작품이 어떠한 서사를 진행하는 중이라는 암시가 되기도 한다.



이번 <스투파의 숲>은 설명글만으로도 바로 그 핵심 키워드를 잡아내면서 관람할 수 있었다. 짧으면서도 특징을 아주 잘 잡아 소개하였기에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설명을 한 번 읽고 다시 작품을 보면 시야가 새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글씨도 비교적 크게 붙어 설명을 읽으려고 비좁게 몰려들 필요도 없었다.

방금 본 키워드를 다시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해석하는 재미가 있었다. 마지막 즈음에는 저 발자국 가운데 있는 것이 수레바퀴고, 사리함을 지키는 것은 뱀 머리 다섯의 나가이고 하며 후배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디어 아트의 활용도 아주 흥미로웠다.

가장 처음 본 작품에서 미디어아트는 관람객을 남인도의 숲으로 이끄는 관문이었다. 그리고 안내서이기도 했다. 부처님의 한 일화를 다룬 일련의 부조 작품이 있었다. 작품 바로 아래에 그 부조 속 인물들이 움직이는 미디어아트를 배치해 내용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한 작품을 정말 말 그대로 ‘빠져나와’ 다음 작품으로 들어가던 부처님이 기억에 남는다.

작품의 의도를 확장시키는 장치도 되었다. 풍요의 정령 약샤 조각상의 연꽃 모자 옆에는 미디어 아트로 구현된 동전들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짤랑짤랑 소리까지 나서 사람들이 뒤돌아볼 정도였다.

미디어 아트가 이렇게 재미있게 작품의 이해를 극대화할 수 있음을 느꼈다.






사리와 보석을 함께 보관했다고 한다



부처님은 그때도 부처님이었지만, 열반에 들고 인도 전역에서 사리를 얻기 위해 몰려왔었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인도 전역이라니..






예술이 대중에게 다가가는 법


전시회의 시작은 전시장의 분위기, 완성은 귓전에서 울리는 오디오 가이드라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해설에 의존하는 버릇은 학생 시절 유럽 여행 이후 생겼다. 유럽 미술관들이 좋다고 해서 갔는데 많은 작품에 비해 내 배경지식이 적으니 왜 전시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없는 곳도 꽤 있었다. 그래서 처음 한두 도시 이후에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아예 방문하지 않았다. 다른 둘러볼 곳도 많고, 배경 지식과 해설 없이는 아무리 시간을 할애해도 ‘음 잘 그렸네’ 이상의 감상이 들지는 않았기 때문.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그냥 듣는 것과, 그가 청각을 상실한 이후 작곡한 곡이라는 것을 알고 듣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이때의 경험으로 미술사 관련 대중 서적에 흥미를 갖게 되었지만 전시마다 꼬박꼬박 오디오를 챙기는 계기도 되었다.









예술은 그냥 느끼는 것 아니냐고? 미안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 중 미술사에 아예 무지한 사람은 없었다. 한글 자막 없이 미국 시트콤을 보고 웃으려면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본인에게 당연한 지식이 누군가에게는 아닐 수 있다. 나에게 익숙한 한의학 지식이 대중에게는 생소한 용어일 수밖에 없듯이.

그리고 그건 그 자체로 투명한 벽이 된다.



사실 오디오 도슨트도, 몇천 원이지만 비용이 든다. 그리고 전용 기기를 대여할 수 있던 이전과 달리 요즘은 스마트폰 어플을 내려받고 그 안에서 결제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거나 매번 추가 비용을 부담하기 어렵다면? 관람의 재미가 그만큼 줄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오디오 가이드를 무료 제공하라는 논조가 아님을 알아주기 바란다)



때로는 가이드에서조차 이 작품이 왜 의미 있는지 설득하는 대신 ‘~한 분위기를 느껴보세요’ 정도로 끝날 때도 있고. 도슨트를 이렇게 쓰는 사람은 굉장히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굳이 비유하자면 어려운 의학용어로 자기만 알게 설명하다 얼버무리는 의사 같은 느낌. 요즘 그렇게 진료했다가는 네이버 플레이스에서 좋은 리뷰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예전에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오디오 가이드로 관람했었다. 궁전을 장식한 나무 부조가 왜 대단한 건지 전혀 설명하지 못하고 냅다 ‘우든 패널의 아름다움을 감상하세요’하고 종료되어 망연자실했다. 예쁘기는 하다만 그래서 뭐가 좋다는 거예요? 나무는 우리나라에도 흔해요, 며칠 전에 마드리드에서 대리석 궁전 보고 왔다고-지금은 바뀌었으려나 모르겠다.



요는 전시장을 채우는 절대다수가 일반 대중이라는 것이다.

관람객들이 보다 수월하게 전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보다 만족스러운 경험이 될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 문화예술의 저변도 조금씩 넓어지리라 믿는다. 공연 관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겠다.









이번 전시를 보며 느낀 건 기획자들의 ‘대중에 대한 이해’이다. 모르는 사람은 여기에 와서 뭐가 궁금할까에 대한 이해.

<스투파의 숲>을 기획한 이들은 관람객들을 남인도의 숲, 스투파의 문 앞으로 데려오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천천히 스투파를 돌며 후덥지근하면서도 생명력 넘치는 밤공기를 느끼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이해는 적중했다.



새로운 음식으로 멋진 식사를 한 기분이다. 포만감으로 부대끼는 것이 아닌, 정성 들인 한 그릇 알차게. 안내문은 적절하게 곁들인 향신료 같았다고나 할까.

재미있고 좋았다. 깔끔하게 배부른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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