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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안 Jan 23. 2024

찐부자 영애의 진정한 아비투스 엿보기

모리 마리 산문집, <홍차와 장미의 나날>




마지막으로 일기장을 폈던 지 무려 1달 만이다.

이 전후로 감기도 오래 앓아서 프랑스 자수에 대한 흥미를 한동안 놓았다. 엊그제부터 다시 자수실도 꿰고 책도 읽고, 애플워치를 가성비템으로 전락(?)시키고자 운동도 조금씩 시작했다.

연말에 유튜브 민음사 ‘최악의 애인 월드컵’ 영상을 보고 주문한 3권의 책, <뇌우>, <여름>, <도둑 일기>는 아직 주파하지 못했다. 읽다 보니 감정적으로 기복이 너무 커져서 한 번에 읽기가 어려웠기 때문.

책을 덮고 좀 쉬어줘야 했다.

<도둑 일기>는 매 페이지마다 새로운 범죄가 등장하고 <여름>은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썸남 때문에 가슴에 돌을 올린 듯 답답하고 빡빡하다.










수선집에서 바지를 찾기까지 다소 시간이 떠서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렀다. 예쁜 주황색 표지의 책을 2권 구매.

그중에서도 보다 말랑해 보이는 제목, <홍차와 장미의 나날>부터 시작한 참이다. 다른 책은 <에르메스 수첩의 비밀>이다.














작가 모리 마리는 한일합방 7년 전인 1903년생이며(시대상을 짐작하기 위하여 적었다) 일본의 대문호 모리 오가이의 장녀이다. 어릴 적 집에 하인과 마부까지 있을 정도로 부유했으며 그 시절에 프랑스어를 배웠다. 또한 유명한 상인의 아들과 첫 결혼 후 남편과 유럽에 거주할 정도로 매우 윤택하게 살았다.

다만 두 번의 이혼 이후 생활고에 시달렸다. 작가가 된 계기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살림이 크게 개선되지는 않았다. 첫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장남이 노년이 된 모리 마리의 월세 비용을 댔으며 고독하게 세상을 등진 후 이틀 만에 발견되었다.

<홍차와 장미의 나날>은 곳곳에 퍼져 있던 모리 마리의 산문을 엮어서 출간한 에세이집이다.



최후의 순간이 고독했다고 그녀의 일상마저 비참하였던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키워드로 써 보자면 ‘진짜 부자들의 아비투스’가 무엇인지 그녀의 에세이로 짐작할 수 있다.

‘찐부자’였었기에 가난해진 이후에도 어린 시절의 고급스러운 라이프스타일을 벗어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모리 마리는 평생 고급 요리와 다양한 취미를 즐기며 자기 생활방식을 고수해 나갔다.

모리 마리가 얼마나 부유하게 자랐을지는 대륙을 넘나드는 미식 취향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그녀는 식도락가일 뿐 아니라 요리로 맛을 구현하는 재주도 뛰어났다. 서양 요리와 일본 요리에 모두 능통해서 에세이에도 여러 레시피를 기술하였다. 파리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유명 레스토랑에 대한(1900년대 초중반임을 생각해 보자) 감상평은 덤.



인스타그램도 페이스북도 블로그도 없었으니, 부유한 라이프스타일로 돈을 벌 수도 없었던 시대. 그녀가 맛있는 요리를 만들고, 아름다운 식기들을 즐기고, 예쁜 천으로 자기를 장식한 건 오로지 자신을 잘 대접하기 위해서였다.

아니, 대접이라는 말에는-평소와는 다른-새삼스러움의 뉘앙스가 있어 맞지 않다. 그녀에게 고급 취미와 요리들은 새삼스러운 대접이 아니었다. 그렇게 살아왔기에 계속 그렇게 산 것일 뿐.

책에는 그녀의 부유한 취향과 취미, 일상 이야기가 끝없이 등장한다. (코카콜라에 레몬 서너 방울과 벌꿀을 타서 마신다는 부분에서 완전히 반해 버렸다)

타 문인들과의 모임에서 스스로를 ‘쌀 타러 온 양로원 할머니’로 묘사했음에도.



‘남에게 폐 끼치지 말자’는 유명한 기조에서 짐작하듯, 사실 일본도 상호 간 차려야 할 예의범절이 유난스러운 곳이다.

몇 세대 전의 일본. 한때 아무리 부유했다 한들, 이제는 가난해진 여자가 두 번의 이혼 이후에도 예전대로의 삶을 고집스레 이어간다. 사회적 시선이 그녀에게 따뜻했을 리 만무하다. 헌데 그녀의 글에는 그러한 내용의 기술이 조금도 없다. 남들 신경쓰지 않겠어!다짐해서가 아니라 정말 그녀의 머리에는 즐거울 다음 궁리로 가득할 뿐, 주변 시선과 자기를 검열할 여지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예술가 정도의 감성과 뚝심이 있어야 사회적 압박을 이리도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것인가? 싶다.



아비투스란 부유층에게만 쓰는 용어는 아니다.

 특정 계급의 사람들 사이 일정하게 나타나는 정서적 공감대에 더 가깝다.

모리 마리는 아주 부유한 계급의 아비투스를 체득하며 성인이 되었다. 그렇기에 재정 상태가 달라진다고 기존 아비투스를 다 버리기는 다시 태어나는 수준으로 어려웠을 것이다. 지난날의 자신을 버리는 것이나 매한가지이기 때문.

하지만 극심한 생활고에도 이 정도의 지조라니. 나라면 없는 대로 아끼고 대신 작가로 열심히 벌어서 도쿄에 집을 매수하는 것을 목표로, 노후의 안락함을 노렸을 텐데(?).











계급상승 노리는 한국인이라면 ‘뽀개야’ 할 정신적 스펙처럼 변한 아비투스.

무엇이든 잘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한국인들의 긍정적 일면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이제는 취향도 비싼 걸 골라서 배우라고 마케팅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더 든다.

아비투스란 와인과 위스키에 능통해지기, 고급스러운 취향을 갖기 같은 것이 아니다. 학습으로 쉽게 통달할 수 없기에 계급마다의 상징이 된 건데.

외국인이 한국어 회화 학원을 열심히 다니고 한국에 여행을 왔는데, 정작 찐 한국인들 사이에서 쓰는 오래된 사자성어나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 느끼는 벽 같은 소외감.

선을 그으려고 해서 선긋기가 아니라 있는 줄도 몰랐는데 바닥에 선이 그어져 있네? 싶은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아비투스이다.



독립한 식민지의 후손으로서 그 당시 조선이 어떠했던가 생각하면 모리 마리의 생활상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찝찝함이 적지 않을 수 있다.

나도 한 몇 년 전쯤 읽었다면 그랬을지도.

하지만 진정한 상류층의 아비투스를 갖자(?)고 외치며 여기저기 신나게 마케팅 용어로 남용되는 요즘.

그 와중에도 재벌 총수들은 포장마차에서 라면 먹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거나, 중고차를 직접 모는 모습을 홍보하며 서민 코스프레에 열을 올리는 요즘.

나는 <홍차와 장미의 나날>을 읽으면서 뜻하지 않게 머리가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살았던 사람이 역경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렇게 살아가고, 또 그 모습을 가감 없이 써내리는 것에 해방감을 느꼈다. 세심하고 고급스러운 취향에 장미꽃 가득한 방에 들어선 것처럼 미적 충만감을 느꼈음은 물론이다.

역자 서문에 모리 마리를 '정신적 귀족'이라고 묘사했는데 정말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모두가 자기 자신이 아닌 어떤 다른 이미지를 추구하기 위해 애쓰는 요즘, 모리 마리에게서 고고한 마이 웨이의 삶을 엿보았다.

그리고 정성껏 요리해 스스로에게 대접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본다.












2018년에 발간된 책이다. 이후 6년이 지나 중고서적으로 구매했기에 햇볕에 닿는 부분은 다소 빛이 바랬다.

그처럼 출판사에서 고심했을 홍보 문구도 출간 당시의 트렌드에 어떻게든 맞추려다 보니 정작 책의 핵심 가치와 맞지 않는 것이 아쉽다.







인크루트 선정 2018년의 유행어였던 소확행, 그리고 2018년에 발간된 베스트셀러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와 연관 지으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소박한 행복으로 삶을 이어나가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도 2018년 발매.

하지만 인생의 모토가 ‘호화로운 가난의 미학’이며 그를 너무 잘 실천해서 우아하지만 가난했던 모리 마리의 삶과는 크게 동떨어져 있다.

이 에세이집은 아무리 가난해져도 도저히 취향은 가난해지지 못한, 몰락한 영애의 호화로운 일상이 재미를 주는 건데.



이 책을 읽으면서 따뜻한 차를 마시고 싶어졌다. 마트에서 사 왔던 얼 그레이 스콘 생지도 생각이 난다.

에어프라이어로 스콘을 데워 차에 곁들였다.

그리고 2024년의 한국인답게 쿠팡 로켓프레시로 조개탕 재료를 주문했다. 모리 마리는 대합국이 봄철 요리로 좋다는데, 요즘은 세상이 좋아졌으니까 겨울에 먹어도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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