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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안 Nov 08. 2023

방화수류정 나들이




한국의 옛 건축물은 유난히 가을이라는 계절과 잘 어울린다.

알록달록 색색의 단청이 노랗고 빨갛게 물드는 잎, 새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만드는 독특한 정취가 좋다.

그래서 최고의 단풍놀이는 산에서 즐기는 것이겠지만, 그럴 수 없을 때는 차선책으로 고궁을 택하고는 한다.



걷기를 워낙 좋아해 겨울에도 하염없이 걷다가 몇 년 전 코로나에 걸렸다.

얼마 전에도 몸이 으슬으슬했지만 날씨가 너무 좋아 융건릉-사도세자와 정조의 능-을 걷다가 코로나에 다시 걸렸는데-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마른기침을 달고 살지만 집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이렇게 쨍한 하늘이 얼마나 귀한데.

지금 즐기지 않으면 유유자적 걸어도 괜찮은 날씨, 카페에서 느긋이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지나가 버린다.

백팩에 아이패드와 키보드, 신문, 읽고 싶은 책까지 욕심내서 모두 담고 길을 나섰다.

분명히 오늘 한파라고 했는데 걷다 보니 땀이 난다. 패딩과 스카프 모두 벗어 가방에 담고 걸었다.

서늘하지만 너무 춥지는 않은 바람과 건조하니 따땃한 햇살이 기분 좋다.



액자처럼 담기는 방화수류정의 풍경




평일 오후의 한산한 카페. 2층에서 방화수류정 공원과 성곽이 내려다보여 주말에는 많은 사람이 몰리는 곳이다.

서울에 살 때에도 가을에는 엄마를 졸라 고궁에 가고는 했었다. 그와 비교할 때 수원의 행궁과 성곽, 여러 문은 서울만큼의 장엄함은 없다.

하지만 나라님과 백성이 유리되어 지낸 한성의 고궁과는 달리 화성과 수원 성곽의 주변에서 백성들은 옹기종기 어우러져 삶을 영위했다. 성곽을 따라 남아 있는 옛 민가와 건물은 카페나 멋진 레스토랑으로 탈바꿈해 지금은 많은 젊은이들이 찾는 수원만의 독특한 풍광이 되었다.

여기까지 걷는 데에도 신규 인테리어 중인 카페들을 지나왔다. 오늘 자리한 카페도 오래된 양옥집을 리모델링한 곳이다.

행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이 양옥집. 언젠가는 수원 땅에서 기침깨나 하는 양반 댁네 땅이었을까?

아니면 이렇게 성곽 가까이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어느 정도의 재력이 있어야 행궁 가까이 살았을까?



단체 여행에서 여행지가 마음에 들면 가이드에게 ’여기 살려면 돈이 얼마 정도 드나‘ 묻는 중년의 아저씨들이 꼭 한두 분 계셨다.

어릴 때에는 왜 꼭 여행과 경험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서 물어볼까, 의아하고 이상하게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30대가 되어 보니 그것이 속물적 태도가 아니라 으른만이 할 수 있는 최상급 감탄사였음을 절감한다.

지금 나도 그래서 생각 중이다. 정조 시대에 여기 살려면, 그 얼맙니까?












잔디밭에 자리를 깔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곳은 침엽수가 많아 단풍 절정을 보긴 어렵겠네 싶은데, 의외로 억새가 장관이다. 보송보송 핑크뮬리가 한동안 유행이었지만 역시 classic is the best인 걸까?

이삭에 달린 솜털 사이사이로 햇볕이 비쳐 노릇한 깃털들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구름 한 점 없이 쨍한 하늘보다는 저 위쪽 공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짐작할 수 있는 하늘이 좋다.

뭉게구름 가득 쌓인 여름 하늘도 좋고 이렇게 솜을 길게 주욱주욱 뜯어 흩뿌린 듯한 하늘도 예쁘다. 억새밭 사이로 사람들이 추억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도 브런치에 업로드하여 기억을 남길 목적으로 풍경을 찍었다.



사실 요즘은 풍경 사진을 거의 찍지 않는다.

용량 꽉 찬 스마트폰을 교체하기 전, 폰을 더 쓰고자 한동안 사진정리를 했다. 원래 포즈도 표정도 어색해서 어디든 놀러 가면 풍경을 주로 찍었는데 의외로 가장 먼저 정리된 대상이 바로 그 풍경 사진이었다.

동행했던 사람들과 내가 없는 사진.

구글이나 인스타그램에 검색하면 나와 비슷한 구도인데 훨씬 더 잘 찍은 사진들이 넘친다. 육안보다 더 또렷이 보이는 풍경, 검색만으로도 넘치게 볼 수 있는데 굳이 내 폰에 자리를 차지할 이유가 없더라고.

이후에는 무조건 나와 함께한 사람들을 찍는다. 어색하게 웃거나 너무 크게 웃어서 표정이 무너져도 거기에는 함께한 순간이 있다.

나중에는 영상도 남겨 봐야지 생각한다.

작정하고 정리를 하면 그 빈 공간에 무언가 크든 작든 깨달음이 남는다.

결혼 전 할 수 있는 최대한 방 정리를 하고 나서 잘 안 쓸 것 같은 물건은 그냥 안 사고, 스마트폰 갤러리를 정리하고 나서 풍경사진은 거의 안 찍는 것처럼.






화홍문에서 바라보는 방화수류정




화홍문. 파란 하늘과 초록빨강 단청의 어우러짐이 정말 아름답다. 이 문 아래로는 수원천이 흐른다.

화홍문은 하천 위에 자리하여 앞뒤로 창이 열려 있다. 사람들이 원두막이나 정자에서 쉬듯이 앉아 있다. 하천 위의 문이라는 것도 참 이색적이다 생각하며 올라갔다.

무려 가이드까지 대동한 외국인 관광객이 꽤 있었다. 케이컬처의 영향력 확대로 이제는 외국인들이 박물관과 고궁을 찾는다는 기사를 얼마 전 접했는데 그 말이 호들갑이 아닌 것이다.

처음 볼 때는 아니, 외국인 관광객은 동대문이나 강남만 가는 게 아니었어? 싶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서장대에 올랐을 때나 화성 행궁을 산책할 때 외국인 관광객들을 마주치는 것이 익숙하다. 

그리고 그들이 수원 성곽을 찾는 것이 내가 파리를 여행하며 파리 근교인 베르사유로 일일 투어를 떠났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려나 싶다.

수치로 정리된 뉴스보다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관광객을 만날 때 한국 문화의 영향력이 정말 커졌구나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광 문화가 성숙해지면서 유명 스폿 외 소도시 여행까지 인기인 것처럼 외국인들도 이제 그런 것이겠지.

좋은 계절에 잘 오셨습니다. 재미있게 즐기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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