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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안 Feb 17. 2024

가지 않은 미래, <에이징 솔로>

세상의 모든 홀로에게






책을 다운로드 없이 스트리밍 하는 어플 '밀리의 서재'를 몇 년째 이용하고 있다. 작년까지 연간 구독권을 결제했다가, 기본 서비스에 이 어플을 포함한 알뜰폰 요금제를 발견하여 이번에 통신사를 바꿨다.

오랜만에 다시 켠 밀리의 서재. 위시 리스트에 담아둔 책 목록을 살펴보다 한 책에 눈이 멈추었다. 중년 솔로 여성들을 인터뷰하여 그들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본 책, <에이징 솔로>이다.



남편은 '결혼했는데 왜 솔로의 삶에 관심을 갖느냐'며 결혼 생활이 불만족스러우냐는 취지의 농담을 했다. 물론 이제 와서 돌연 솔로가 되고픈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 배우자 없이 홀로 사는 중년 여성이란, 결혼하지 않았다면 몇 년 안에 맞이했을 가까운 미래이다.



한의사 동기들 중에서도 느지막이 결혼한 편이다. 레지던트 수련까지 마치니 딱 서른. 다른 길 대신 편입을 도전했을 때, 먼 지인 몇몇이 결혼시장 아닌 편입학원을 찾는 내게 걱정이라는 이름의 겁을 주던 기억이 있다.



-당시 부모님까지 결혼 압박을 하셨다면 수험 생활을 불안하게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전형적 경상도 아저씨로만 생각했던 아버지가 '하고 싶은 건 해야 후회가 없다'며 응원해 주셨다. 친구들은 손주를 보던 때 엄마는 다시 수험생의 학부모가 되어 간식을 차려 주신 것도 기억난다. 이러한 부모님의 지지는 수험기간 동안 든든한 버팀목이었으며, 이후에도 자아를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남편과 연애하면서도 '(결혼이) 안 되면 혼자 살아야지, 집부터 사고 그 집값 갚으며 나이 들어가야지' 하고 생각했다. 가정을 꾸리고픈 마음과 별개로 원치 않는 사람에게 결혼을 조르고 싶지는 않으니 결심을 다진 것이다. 그렇다고 마음에 차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지도 않았고. 항상 솔로와 커플의 갈림길에서 두리번거리며 살아왔다.

요즈음 30대에 접어든 많은 여성들이 혼란을 겪는 이유는 세상의 선택지가 너무 다양해졌고, 나쁜 인생이란 없으니 어떻게든 다 살아지기 때문인 듯하다. 그만큼 자기를 알아야 잘 맞는 길을 걸어갈 수 있기에.



그리고 지금이야 부부지만 언젠가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홀로 살 것이다. 어찌 되든 중노년 솔로 여성의 삶이 예정된 셈. 혼자 사는 여자들에 무관심한 것은 자신의 미래에 무관심하다는 말이나 같게 들렸다.

나는 비밀 예언서라도 찾은 듯 흥미롭게 읽어 내려갔다.











책에는 솔로 중년 여성계의 선배(?)로서, 팍팍한 세상 속 자기만의 보습 대일 땅을 찾아온 여성들의 고민과 증언이 펼쳐진다. 예전 세대라면 오죽했으랴. 시대가 발전해 정도는 덜하겠지만 나 역시 고민하던 내용들인 만큼 그들의 이야기는 깊게 다가왔다.

중년의 싱글 여성들, 주된 고민은 크게 세 가지. 주거, 연결, 그리고 돌봄이다.

싱글은 혼자 산다는 말이지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겠다는 의미가 아닌 만큼 이 세 가지는 우열을 가릴 수 없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 고민을 해결하는 첫걸음이 바로 경제 활동이다. 몇 년 전 '결혼 안 되면 혼자 집부터 사야지'하고 생각했던 사람으로서 이들이 겪었거나 해결해 나가는 어려움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언제든 경력을 이을 수 있는 전문직인 것이 나의 심리적 안전장치였기 때문이다. 경제 활동이란 그저 시간과 노동력을 힘들게 금전으로 바꿔 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며 그 자체로 고립을 막아 준다. 삶의 질을 유지함으로써 자아를 존중할 수 있고 주거 안정성 또한 확보할 수 있다.



- 다른 이야기지만 결혼 후 얼마간 쉬면서, 전업주부의 어떤 면이 힘들다는 것인지 약간이나마 느꼈다. 모두가 편하게 지낸다고 하고 실제로도 몸이 편했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삶을 점수나 월급 같은 방법으로 정산하며 확인해 왔다. 때로는 자존심 상하고 스트레스도 크지만, 고칠 점을 체크할 수 있고 그것이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전업주부는 자신을 깎아내릴 외부 요인이 없다. 그러나 참 잘했다고 칭찬해 줄 성적표도 사라진다. 내가 전문직이 아니라면 여기에 세상으로부터의 소외감까지 더했을 것이다.

덧붙여 집안일과 내조라는,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일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다면 그건 정말로 재능이며 이러한 여자가 얼마나 귀한가도 느꼈다. 남편 내조에 전념하는 운동선수 부인들이 사실은 대단한 위치라고 인정하는 것처럼. (이 쪽 재능이 아직 미진한 나는 그래서 한의사 업무를 파트타임으로 다시 시작했다.)-











원가족인 부모님과의 관계를 다룬 부분도 정말 흥미로웠다. 정해진 가족의 틀대로 살기 싫어 홀로를 선택했지만, 결국 원가족과 함께하며 고립을 벗어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모든 일은 양날의 검인 것이다.

특히 노년의 어머니가 수술 후 마취가 깨자마자 결혼한 둘째 딸을 붙잡고 '언니에게 잘해라' '언니를 외롭게 하지 말라'라고 부탁했다는 어느 인터뷰를 보고서는 눈시울이 시큰했다. 그 순간에도 홀로 있는 자녀의 외로움을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여동생도 나보다 먼저 결혼했다. 처음에 어머니는 약간 반대하셨다. '결혼하기에 나이가 이르다(30대였는데)'는 것이 이유였지만, 혼자인 맏딸이 신경 쓰여서였음을 나도 동생도 모두 알았다. 엄마는 동생이 착착 결혼준비하는데도 퇴근길에 맥주나 사서 롱패딩에 담아 오는 큰딸을 걱정하고, 언젠가는 끝없는 육아 속에 사는 듯한 중압감을 토로했고, 마지막 언젠가는 평생 '데리고 살' 각오를 다졌다.



배우자의 외도보다 자녀가 결혼하지 않을 때 더 크게 스트레스받는다는 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요즘은 달라졌겠으나 그만큼 솔로인 자녀는 부모에게 심리적 압박이다.

오래간 '결혼 안 하는 장녀'로 살아온 탓에 그러한 사회 분위기가 무척이나 불만스러웠다. 요즘 세상 앞가림도 나름대로 하는데, 무엇이 걱정이란 말인가. 그런데 여동생이 조카를 키우는 것을 보면서 아직 모르는 부모들만의 사랑의 깊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소한 것조차 못 챙기면 미안해지는 마음, 본인이 더 나은 본보기였더라면 자녀가 달라졌을까 하는 복잡함, 그리고 나의 엄마처럼 마지막을 책임지려는 각오까지도 그 압박에 다 포함되지 않았을까.

엄마에게 딸이란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한다. 보다 믿음직한 장녀, 독립적 인간의 면모를 보여 드렸다면 엄마는 덜 힘들었을까? 책에 등장하는 다른 인터뷰를 보면 사실 관계없어 보이지만 나는 가끔 엄마와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마지막은 솔로 여성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지금, 희망적 가능성을 제시하는 '솔로 여성 공동체'이다. 이익 집단이 아니니 공동체 정도가 적합하겠다. 책에 주로 소개된 곳은 전주에 있는 공간비비이다. 비혼이 사회적 화두가 되기도 전인 2006년부터 비혼이라는 용어를 쓰며 공동체를 만들었는데, 노후를 스스로 개척해 나간 점이 대단했다. 지금은 50여 명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앞서 썼듯 솔로는 독립이지 고립이 아니다. 나이 들수록 가족으로 네트워크를 쌓지 않았거나, 친구가 많지 않은 이들은 더 쉽게 고립될 수 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여도 사람은 결국 사람으로만 채워진다. 동네 친구 한둘 있어 안심되는 마을에 산다면 심리적, 물리적으로 큰 지지가 될 것이다. 양로원이나 노인정도 결국은 어르신들의 공동체다.



레지던트로 수련한 병원은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서울 중구 공공기관과 연계하여 독거노인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었다. 지역 보건소 간호사를 따라 언덕길을 누비며 침 치료를 했다. 이미 지리가 익숙한 간호사는 익숙하게 골목을 훑는 반면 나는 허덕이며 언덕을 올랐다. 그러면서 눈에 잘 안 띄어 몰랐던, 도시 속 점점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접하였다.

그중 복도 하나를 두고 좌우로 작은 방이 여럿 늘어선 집 한 채에 노년 여성들이 모여 살던 모습을 기억한다. 쉴 새 없이 여성들이 들고 나는, 열악한 형태지만 셰어하우스 같은 곳이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어려운 독거노인들은 어떠한가? 우울하고 종일 술만 마실 것 같은지.

예상외로 그들은 활기가 넘쳤다. 동네 상인들과 담소를 나누고 서로 부축하며 복지관을 다녔다. 돌보아 줄 사람이 있다는 확신만 가지면 홀로인 노년이 그렇게 공포스럽지 않음을 실제로 보았다. 그래서 반대로 경제생활 중이라도 보건소 간호사의 방문 외 다른 연결고리가 없는 독거노인은 그만큼 쓸쓸해했다.

타인과의 삶이 언제나 즐거울 수는 없겠지. 하지만 그건 가족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곁에 실질적으로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저자처럼 나도 공동체 생활에 맞는 편이 아니라, 미래에 솔로 여성 공동체를 실제 고려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꼭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가 공동체에서 안정을 느낄 수 있다면 좋은 대안이 아니겠는가?






이외에도 책에는 나이 든 이들의 간병이나 생을 마감하는 방법, 따가웠던 사회적 시선 등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등장한다. 삶은 홀로 태어나 결국 홀로 마감한다. 현재 곁에 누군가 있다고 하여 혼자 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가지 않은 미래이거나, 먼 미래에 다가올 삶을 먼저 걸어 나간 그들의 말에 모처럼 깊이 공감하였다. 그리고 잘 사는 삶에 대한 대답은 모두에게 다를 수 있음을 절감하였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부모님이 가장 많이 떠올랐다. 이제는 젊을 때와 달리 어깨가 아프면 계속 약을 드시는 아버지도 생각나고.

저녁에는 모처럼 살갑게 전화를 드릴까 한다. 부모님 곁에 내가 있음을 알려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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