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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안 Mar 05. 2024

무제 20240305

노트에 수성펜, 디지털 작업






요즘은 번역프로그램 자격증을 따려고 공부 중이다.

도서관 옆 카페가 어제처럼 고즈넉하진 않은 점심 시간대지만 분위기가 정말 좋다. 향 강하게 훅 끼치는 것도 여기에서는 싫지 않다.

오늘까진 운 좋게 도서관 주차장에 자리가 있었는데 앞으로는 어떨지 모른다.

아이패드, 신문 / 폴더폰, 애플워치, 에어팟, 스케줄러, 그리고 펜을 챙겨 나온 참. 스마트폰에 중독되지 않았다면 이만큼의 충동(?) 보상소비도 없었겠지만-

아까 낮잠 잘 때 참 좋았다. 할 게 없어서 미련 없이 폰을 닫고 바로 잠들 수 있다는 게. 지금도 볼 게 없으니 노트부터 펼쳤다.

독서대와 충전기까지 챙길까 하다 지속 가능하게 짐을 꾸리자는 판단 하 두고 왔다.











신문에서 접한 이태준 작가의 소설집을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다.

이태준은 월북한 작가로, 소설에 북한 사투리가 생생하다. 특별한 검색 없이도 그 사투리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 할머니 말투를 생각하며 읽으면 되니까.

할머니 목소리로 읽힌다. 소설의 등장인물은 할머니와 나이가 다르거나 성별이 다른데도.



젊은 할머니는 어땠을까.

젊은 여자인 할머니.

아이가 없고

주름이 없고

꿈은 많았을 할머니.

빠르게 걷고 눈이 빛났을 할머니.

나와 동생들을 키우며 작아져버린 할머니.



동그마니 앉아 점점 작아지는 할머니를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든다. 내가 누리는 현재의 대가로 할머니와 부모님의 젊음을 지불한 것 같다.

사랑한다고 말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항상 환자 체크하듯이 이것저것 묻기만 한다.

조바심이 난다. 할머니가 괜찮아야 하니까. 그래야 이 죄책감이 줄어든다.

할머니의 일상마저 욕심을 섞어 넣는 손녀와 달리 손주사위는 같은 말도 선선하게 한다. 그래서 고맙다.

내가 그만큼 헌신해 키울 만한 사람이었는지 한참 검열한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은데. 아니, 이 정도 아니어도 어떨 건 없지만.



사랑을 덜컥 받아놓고서 돌려줄 수 없을 거라는 중압감이 있었다. 그래서 한때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기르면 이 마음이 덜해질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제는 죄책감으로 자기연민할 시점이 아니다. 고마움을 채워야지.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새벽에 봄옷을 사고(조용하여 쇼핑에 집중하기 좋다) 게임까지 하다 5시 넘어 잠들고서, 스마트폰을 스마트 폴더폰으로 바꿨다. 이만큼 오래 충동을 느꼈으면 충동구매가 아닌 합리구매다.

카카오톡은 된다.

느리고 불편하다. 그래서 다른 생각 여럿이 편리하게 치고 빠질 여지를 현저히 줄여준다.

별 생각 안 하고 살려면 별생각을 만들지 않아야 하는구나.

도서관으로 들어오니 괜스레 폰을 더 잡는 것 같아서 블랙아웃 어플로 아예 화면을 차단했다. 이제 카톡도 확인 못하는, 전화만 가능한 폰이다.

그러고서 약간 흐리던 뇌가 다시 깨끗해진 기분.







지금은 뇌에 노이즈가 없다. 뇌에 부옇게 낀 노이즈를 걷어내는 게 요즘의 관심사이다.

생각이 많아지면 잘 안 돌아가는 CPU 같아서 몸이 다 무겁다. 정말 생각할 일에 쓸 공간이 없어지고. 안 쓰는 프로그램을 정리하면 좋을 텐데.

겉으로 심플한 것 말고 정말 심플하게 살고 싶다. 항상 그런 주제에 끌린다. <생각 비우기 연습>, <신경 끊기의 기술> 같은 것.

가만히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보다 걷거나, 바깥바람을 맞거나, 열중해야 하는 취미를 좋아하는 것도 머리를 깨끗이 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글로 풀어낼 수 있어서 좋기도 하지만.

이 두뇌 노이즈를 걷어내려는 분투는, 스크롤을 무한히 당겨 내리며 재미를 갈망하는 나를 건져내는 이야기이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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