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마을 김동윤 촌장과의 다담(茶談)

by 심지훈

어제는 오랜만에 경북 의성군 안계면 곤지산(330.9m) 아래 자리한 태양마을 김동윤 촌장과 다담을 나눴다.


김 촌장은 내 친정 영남일보 선배이신데 나와는 보이차 등 문화 이야기가 더 잘 통하는 분이다. 재작년 발행한 ‘보통 글밥1-차(茶) 고수들’ 편에서 ‘현대의 보이차 다법 선수’로 소개한 바 있는 그 분이다.


“그는 포은 정몽주처럼 차를 끓여 마시는 걸 즐기지만, 자사(다관) 2개를 이용해서 차를 즐긴다. 하나의 자사에는 뚜껑이 있고, 다른 하나에는 뚜껑이 없다. 뚜껑 있는 자사에 우린 차가 뜨거우니, 뚜껑 없는 다른 자사에 부어 적절한 온도를 맞추어 마신다. 나는 김 촌장의 다법을 ‘분다법’이라고 명명했다. 솥에 끓여 마시는 정몽주의 방식을 점다법(마른 찻잎을 끓는 물에 부어 우려냄)이라고 하는데, 김 촌장은 그걸 차용하면서도 자신만의 다법을 터득한 것이다.(보통 글밥 pp59~60)”


어제 통화에선 ‘김동윤이 들려주는 차 이야기’를 한참동안이나 들었다. “자네 요즘도 차를 즐겨 하지.” “아닙니다. 선배님. 저는 요즘 차도 술도 좀 끊었습니다. 위가 좋지 않아 한 석 달 정도는 안 마시려고 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였다.


내가 “저는 (보이) 숙차보다는 청차를 즐기지요. 생차를 마시다가 숙차를 마시면 민숭민숭한 것이 영 매력이 없어서요”라고 하자 “청차는 과하게 마시면 위에 무리가 갈 수 있지. 생차는 세거든”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탕(湯) 예찬론을 다시 들고 나오셨다.

∎숙차: 찻잎을 인공적으로 발효시켜 만든 차. 자연발효(후발효)인 청차보다는 색이 검고, 맛은 순하다.)

∎청차: 차의 생잎을 발효 도중에 볶아 단단하게 압축해 둥근 원반모양의 병차 형태로 만든 것. 요즘은 공모양의 타차, 벽돌모양의 전차, 기둥모양의 주차처럼 각양의 보이숙차와 청차가 생산된다.


“숙차를 탕으로 한번 마셔보지. 처음부터 숙차를 탕에 우리면 맛이 강하니까 일단 자사에 2~3번 우려 마신 뒤 망에다 숙차를 넣고 전기포트기에 끓이면 한 가지 차로 두 가지 맛을 즐길 수 있지. 숙차를 탕으로 끓여 마시면 단맛이 더 좋아. 이때 포트기에는 팔팔 끓을 물은 적당히 부은 다음 20도 정도로 예열해서 마시면 좋아. 원래 차는 요즘처럼 자사에 우려 마시는 게 아니라 탕으로 끓여 마셨지. 탕이 차의 원조야.”


“차를 마시던 사람이 차를 끊으면 재미가 없어 어떻게 사나”하시면서 알려준 비법이다. 이어 김 촌장께선 “아니면 오룡차(우룡차)를 마셔 보지. 50%정도 발효된 철관음이나 80%정도 발효된 대홍포는 구수하면서 위에 자극도 주지 않지. 100%로 발효된 홍차도 좋고 말이지.”

∎차색(水色)에 따라 나누면 철관음과 대홍포는 청차에, 홍차는 홍차에 속하고, 발효에 따라 나누면 철관음과 대홍포는 반발효차에, 홍차는 전발효차에 속한다.


“선배님 저는 요즘 꽃차를 마시려고 합니다. 화차.” “에이 그건 차라고 할 수 없지. 차란 자고로 카페인이 있어야 차지. 그 카페인 성분이 정신을 맑게 해주는 것 때문에 차를 마시는 것 아닌가. 목련차니 국화차니 하는 것은 대용차지.” “그건 관점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차는 학명 카멜리아 시넨시스(Camellia sinensis)인 식물로 만들어진 모든 것을 말한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녹차, 대홍포, 백호은침, 기문홍차, 보이차 등은 모두 이 식물로 만든 것이다.


최근 지우 스님이 선물해준 보이차 전용 포트기를 이야기했더니, 김 촌장께선 또 다른 의견을 내셨다. “그건 아무리 좋아도 물을 100도씨로 고르게 끓이지는 못해. 원리적으로 전기포트기는 바닥에 끓어오르는 데가 정해져 있어 물의 구멍구멍을 고루 끓이지는 못하지.” “그럼 어떻게 고루 끓입니까.” “나는 그래서 포트기로 끓인 물을 다시 주전자에 한 번 더 끓여. 그걸 숙열(熟閱)한다고 하는데 그럼 100도씨까지 완전히 끓지.”


“물맛에 따라서도 차맛도 달라지죠.” “그럼. 아주 다르지.” “끓는 물, 그러니까 포트기로 끓인 물과 주전자에 숙열한 물로 우린 차맛도 크게 차이가 나나요.” “나는 숙열한 물에 우리는 게 훨씬 맛있다고 봐. 노수(老水·늙은 물)는 좋지 않다고 하는데 어쨌든 ‘동다송’ 같은 다서(茶書)에는 그렇게 돼 있어.”


나는 어젯밤 김 촌장과 낮에 한 통화를 곰곰이 생각하다 결국 다시 보이차를 우려 마셨다. 위장약을 복용하는 중에도 보이차의 유혹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설 연휴 전에 <이학무 걷기학교> 이학무 교장께서 “스님한테 선물 받은 것인데 자신은 먹지 않는다”며 2012년산 ‘노반장(생차)’를 한 편 주셨다. 그걸 시음하기로 했다.


최근 선진 스님이 보내준 칠자병차 ‘노반장’은 대책이 없는 차로 내버리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전시용으로 두고 있다. 액면대로 받아들이면 ‘노반장은 중국 유명 차 생산지 노반장이란 마을에서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아주 고가 브랜드다. 노반장 한 편에 좋은 것은 수 백 만원을 호가한다.


보이차 세계에는 이런 격언 아닌 격언이 있다. ‘중국에는 보이차가 없어 못 마시고, 한국에는 보이차가 너무 많아 못 마신다.’ 보이차 종주국인 중국에는 양질의 보이차가 없어 못 마신다는 뜻이고, 짝퉁 보이차가 판치는 한국에는 믿을 만한 보이차가 없어 못 마신다는 뜻이다.


선진 스님 보내주신 노반장은 향부터 낙제점이었다. 그래도 스님은 버리지 말고 보관하고 있으란다. 귀하게 구해 준 것은 맞으니 그 마음에 잘 전시 중이다. 이학무 교장께서 주신 노반장은 어떨까.


첫째 탕은 세차해 버리고 둘째 탕부터 김동윤 분다법을 따라 뚜껑 없는 자사에 따르고 자사 안 찻잎 향을 맡는다. 향이 영 신통찮다. 역한 내가 올라온다. 차맛을 본다. 역한 맛이 따라올라 온다. 그래도 곱게 포장된 노반장에 대한 신뢰를 져버리기가 어렵다. 컨디션이 별로인 채로 마셔서 양치질부터 했다. 다시 차탁 앞에 앉았다. 다시 시음한다. 차 온도가 조금 떨어지자 맑다는 느낌도 받는다. 두어 번 더 마셨다. 마실 만하다 싶다. 입맛이 갈팔질팡이다. 아내를 불러다가 시음을 권했다. 아내 왈 “자기가 평소 마시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데. 오히려 더 맑은 것 같은데.” 맑은 것은 평소보다 찻잎을 덜 넣어 우렸기 때문일 터.


보통 청차는 10년 숙성된 것이면 마셔도 된다고 본다. 20년 잘 숙성된 것이면 ‘노다지’로 여긴다. 10년이 됐든, 20년이 됐든 청차는 찻잎내음도 차향도 맑아야 좋다. 30년 잘 숙성된 보이차는 양주 발렌타인 30년산처럼 묵직하니 목구멍으로 부드럽게 그냥 넘어간다. 향도 일품이다. 보이차 세계 안으로 들어와 보면 보이차를 잘못 마셔 돈 잃고 몸 잃은 사람 사례가 적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좋은 보이차 감별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당분간 ‘심보통의 보이차 이야기’를 좀 들려드리려 한다. 차에 흔히 쓰는 ‘발효’라는 단어부터가 실은 맞지 않다. ‘산화’라 해야 적확하다. 발효가 일반화된 용어라는 점 때문에 백번 양보하면 ‘산화발효’라 해야 적절하다. 이런 상식을 비롯해 보이차 생김만큼이나 다양하고 보이차 맛만큼이나 변화무쌍한 보이차의 세계로 [글밥] 손님을 안내하려 한다.


보이차는 상류층 문화다. 잘 숙지하면 사회생활에 두루 이로울 줄로 안다. 보이차를 안다는 것은, 보이차를 접한다는 것은, 보이차를 즐긴다는 것은 상류문화층 진입을 의미한다. [글밥] 손님들아, 가자. 상류의 세계로. 그 미지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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