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차 전수기(傳授記)

by 심지훈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 나는 일찍이 보이차 세계에 들었다. 그 길로 10여 년간 보이차를 취미로 삼았다. 거짓말 좀 보태면 1원 한 푼 들이지 않고 그 고가품의 것을 고상하게 즐기는 호사를 누렸다.


나는 참 심심한 사람이다. 딱히 좋아하는 음식도, 좋아하는 오락도, 좋아하는 사람도 없이 그저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고 무언가를 들여다보는 일에 만족하며 산다. 기자를 관둬야겠다 생각한 이유 중 하나도 어느 순간 사람 만나는 게 귀찮아서였다.


오고가는 말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말들 속에 날이 서 있고, 뼈가 들어 있어 그 성치 않은 말들을 옮겨 적는 게 무슨 의미인가 하고 회의가 들었다. 기자의 글쓰기에 비하면 지금 내 방식의 글쓰기 작업은 훨씬 ‘자유롭고 정직한 글쓰기’다.


자유롭게 살아온 지가 어언 10년이다. 이제 혼자 소일거리나 하며 노는 게 체질이 됐다. 이런 내 상태와 수준을 단 네 글자로 표현한 말을 어제 발견했다. 대구에서 소설 쓰시는 양선규 대구교대 명예교수의 글을 우연히 봤는데, 무릎을 딱 치며 단숨에 읽었다.


‘막신일호(莫神一好)’라는 제목의 칼럼이다. 막신일호는 ‘한 가지 일에 몰두해 크게 성취하는 것보다 더 신명나는 일은 없다’라는 뜻인데, 2200년 전 중국 전국시대의 순자(筍子)가 한 말이다.


‘막신(莫神)’이란 ‘더 이상 신명나는 일이 없다’는 뜻이고, ‘일호(一好)’는 ‘오직 한 가지 일에 몰두하다’는 뜻이다.


양 교수는 ‘일호’ 하나만, 그 문자적 의미만을 두고 보면 요즘 말로 마니아(mania)라는 뜻과 통한다고 풀었다.


양 교수도 나처럼 참 재미없는 인생을 산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글쓰기 하나에 몰두하는 막신일호의 삶을 산다고, 겸손한 것처럼 말하지만 은근 자랑을 하는 것이다. 나처럼 말이다.


하나 양 교수를 일 때문에 두어 번 만나본 나로서는 내가 양 교수보다 좀 나은 게 하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 교수는 아주 야무진 구석이 있는 분이다. 차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야무진 사람, 단단한 사람이란 표현 속엔 여러 가지가 함의돼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좀 인색한 사람이란 뜻이 있다.


양 교수가 내 이야기를 접하면 불쾌할 수도 있지만, 난는 양 교수가 주변으로부터 인색한 사람이란 평가를 받는 분일 수 있다고 봤다.


혹 양 교수께서 이 글을 읽게 되시더라도 사람의 평가는 여러 가지 일 수 있으니 큰 의미는 두지 마시기를 바란다. 널리 양해를 구한다.


나도 하도 인간군상을 많이 만나봐 딱 보면 견적이 나오는 정도는 되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아무튼 내가 양 교수보다 나은 점은, 물론 순전히 내 감(感)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베푸는 마음과 그런 마음에서 비롯된 실천적 행위는 그보다 확실히 낫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는 내내 교수만 했고, 나는 양 교수보다는 턱없이 짧지만 내내 비즈니스를 기반으로 사람을 만나는 인생을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학생과 동료 교수만 상대한 좁은 인생의 양 교수보다는 훨씬 폭넓은 사람을 만나왔다.


그의 나이가 일흔 가까이거나 일흔을 넘었다고 알고 있지만, 치열한 사람 상대는 내가 그보다 못하다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튼 교수, 선생, 목사, 신부, 스님은 기자, 경찰, 검사만큼 인색한 구석이 있다. 물론 사람 따라 다르지만, 그 직종의 고유한 분위기가 사람을 시나브로 그렇게 만든다.


이런 류의 직업을 가진 사람은 모두 대접받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다. 해서 어느 때, 어떻게 내줘야하는지 하는 베푸는 마음이 상대적으로 박할 수밖에 없다.


해서 친구를 둘 때 이런 부류의 친구는 깊이 할 까닭이 별로 없다. 나이가 들면 이런 류의 친구들은 짐이 될 뿐이다.


나는 아직도 현직에 있는 이런 류의 사람을 만나면 나이가 많고 적고 간에 “현직에 계실 때, 높은 자리에 계실 때 주변에 잘 하시라”는 주문을 예사로 한다. 그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에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내 심중을 전한다.


괜스레 양 교수의 좋은 글을 갖고 인용하면서 양 교수에 대한 인물평을 갖다 대 면구스럽지만, 글쟁이로나 사회인으로나 또 베푸는 사람 쪽으로나 면구스러움을 넘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나누는 것에 관한한 나는 아주 복(福)이 많은 사람이기에 그렇다고 자신할 수 있다.


1원 한 푼 들이지 않고 보이차를 10년 넘게 즐긴 것이나, 내 서재 궁고재(窮考齋)로 여전히 적지 않은 물건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나, 공진단을 아주 저렴하게 내 독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이나 모두 훌륭한 사람이 내 주변에 많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나는 이제 10년 넘게 즐긴 보이차를 그만 접어야겠다고 작심하고 차를 안 마신지 두어 달이 됐지만, 이제 남은 보이차를 누구에게 잘 나눠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보이차는 묵히면 묵힐수록 값어치가 었어 ‘할아버지가 만들어 손자가 먹는다’고 하는데, 내 장한 두 아들 라온이와 바론이에게 유산(遺産)으로 주어도 좋겠지만, 나는 내가 10년 넘게 소장한 차들을, 순전히 내 안목으로 가려 뽑아- 20~30대 전도유망한 젊은이들에게 전수하기로 결정했다.


이 역시 내가 살아가면서 우리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자그마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첫 번째 수혜자가 어제 만난 신협중앙회 슈퍼 루키 두 명이다. 진즉에 전수하려고 티팟을 별도로 구매해 두었는데 코로나19로 어제야 만날 수 있었다.


최근 공식적으로 금주를 선언했지만, 어제는 셋이 만나 오랜만에 과음을 했다. 어떤 실험을 위해서였다. 과음을 한 다음날 아침, 출근 전 내가 선물한 티팟에 보이차를 1시간 정도 우려 마시는 실험이다. 보이차의 효험을 직접 체험해 보려는 것이다.


참 얄궂은 실험이자 별별실험인데, 일종의 ‘경이(驚異)’를 맛보라는 의미로 우리는 신나게 마셨다. 마시다 보니, 술을 더 마셔야 할 아주 반가운 소식이 전해져 계획에 없던 2차까지 갔다.


그리고 오늘 새벽 6시. 신협중앙회 슈퍼 루키 두 명에게 ‘보이차 전수기’를 전달했습니다.


내가 먼저 그들이 가진 똑같은 티팟과 보이차를 갖고 우리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 보낸 뒤, 짤막한 설명을 적어 보냈다.


(차 포장지를 열어 차를 깨고 티팟에 담아 우리는 전 과정의 사진 18장을 보낸 뒤)


-첫 물을 버리고 2~4번째 우린 상태(2~4째 탕)까지를 사진에 담았습니다.

-3번째 사진에서 4번째 사진(차칼로 차를 부수기 전)으로 옮기기 전 차를 뒤집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차를 부수기가 수월합니다.

-이 차는 보이숙차로, 잘 부서(떼지는, 깨지는)집니다.

-차의 양은 6~8번 사진을 보시고 가늠하시고, 차를 종이로 다시 쌀 때는 원래대로 뒤집어 구멍이 보이는 상태에서 포장해 비닐 팩에 보관하면 되겠습니다.

-습한 곳에 두지 마시고 건조한 실온상태로 두고 드시면 됩니다.(이상)

-즐감하세요들!


나는 생각한다.


내가 보유한 보이차의 양으로, 20~30대 유망주 기백 명에게는 너끈히 전수할 수 있겠다고,


내가 10년 전 귀한 인연으로 이 귀한 차를 무상으로 배웠듯, 이제부터 나도 이 귀한 차를 무상으로 나누겠다고.


라온이, 바론이는 저들 법대로 살아가면 될 일이고, 아비가 아비의 법을 떼어 보이차까지 남겨줄 까닭은 없다고.


다만 보이차를 전수는 할 수 있어도 내내 보이차를 만족할 만큼은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


하나 보이차를 전수하는 과정에서 또 귀한 인연법에 따라 이 나눔을 함께할 분을 만날 수도 있으리라.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고 했는데, 내 보이차 곳간이 만석지기만큼 못되는 게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막신일호의 삶을 일구고 가꾸는 데는 그저 소박한 삶이면 충분하다. 그런 삶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신협중앙회 루키들! 보이차 만끽하시고 승승장구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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