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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화 Sep 19. 2022

내 손을 잡아주세요

옥상

                            내 손을 잡아주세요



  민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아파트 정문을 향해 걸었다. 경비아저씨가 비질하여 모아놓은 붉은 단풍이 아름답다. 비록 바닥에 떨어져 쌓여 있지만 아직 알록달록 저리 예쁘니 낙엽이라 이름 짓기에는 성급한듯하다. 또 한 닢이 살랑거리며 바닥에 떨어진다.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봄이면 만개하던 벚꽃 자리에 나뭇잎들이 꽃 대신 붉게 타고 있다. 며칠 뒤에 비가 온다던데,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는 단풍잎들이 안쓰러워진다. 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우수수 떨어지겠지. 아·… 떨어진다는 느낌에 갑자기 아파트 옥상에 가고 싶었다.

  그 아이는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무엇에 홀린 듯이 제일 꼭대기 층을 눌렀다. 전광판에 숫자가 하나씩 올라가 멈춰 섰다. 아직은 초저녁인데도 이곳은 조금 어두웠다.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갔다. 철문에는 출입 금지 표지가 커다랗게 붙어있다. 철문 손잡이를 돌려보니 꼼짝도 하지 않는다. 옥상 문 하나도 내 마음대로 열수 없다고 생각하자 더는 걷기도 싫었다. 민수는 그냥 털썩 주저앉았다. 바닥에 어지럽게 버려진 담배꽁초들과 여기저기 뱉어놓은 더러운 침, 불현듯 무서운 얼굴들이 눈앞에 스치고 지나간다.

  민수는 말이 없는 조용한 아이다. 친구도 은우 하나뿐이다. 그래서 곧잘 못된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어제도 골목에 불려가서 이유 없이 주먹으로 두들겨 맞았다. 신고 있던 새 신발을 빼앗기고 지금 신고 있는 헌 신발을 얻었다. 신발은 한 번도 씻지 않은 것처럼 고약한 냄새가 났다. 억울해서 소리치고 싶을 때, 나의 존재가 싫어질 때 가끔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다시 용기를 내서 철문 손잡이를 흔들었다. 꼼짝하지 않는 손잡이에 화가 나서 철문을 발로 쾅 찻다. 문이 확 열렸다. 가만히 보니 손잡이는 고장 나서 움직이지 않고 철문은 뻑뻑하게 닫혀 있었나 보다. 시간이 한참을 지났는지 옥상은 깜깜했다. 하지만 탁 트인 공간이라는 느낌이 드는 차가운 바람이 훅 불어왔다. 한 걸음 한 걸음 덜덜 떨리는 발걸음을 옮겼다. 어둠이 눈에 익으면서 옥상의 생김새가 어렴풋이 나타났다. 난간 끝 모서리에 멈춰 섰다. 어둠은 나를 감출 수 있다. 아무도 찾지 못하는 영원한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자고 마음을 먹었다. 함께 따돌림을 당하던 은우에게 작별 문자를 보낸다. ‘은우야 나 먼저 갈게, 난 여기까지야.’

  은우는 늦은 저녁을 먹는 듯 마는 듯하고 만수 집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민수가 전화도 안 받고 집에도 없다. 은우는 어제 골목에서 민수가 얻어터지는 모습을 보고도 무서워 숨어 지켜만 봤다. 더는 일어나지 못하는 민수를 보고 아이들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침을 퉤! 하고 친구의 얼굴에 뱉었다. 그중에 한 불량배는 민수의 신발을 벗겨 자기가 신고는 자기의 신발을 선물이라며 그의 얼굴에 던지고 갔다. 얼른 가서 일으켜 주고 싶었으나 숨어있었던 것이 미안하고, 또 그들이 다시 돌아올까 봐 무서워서 꼭꼭 숨었다. 한참 후 민수가 일어났다. 던지고 간 신발을 신고 절뚝거리며 집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은우도 집으로 갔었다. 그다음 날 민수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걱정도 되고 사과도 해야 할 것 같아 뜨거운 초콜릿 두 잔을 사서 들고 민수 집 아파트 주변을 두 바퀴나 돌았다.

  민수에게서 문자가 왔다. “은우야 나 먼저 갈게, 난 여기까지야.” 보자마자 그는 옥상으로 뛰었다. 며칠 전 옥상에서 떨어져 죽고 싶다는 민수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옥상의 철문은 환히 열려있다. 어두운 곳에서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가까운 쪽 아파트 옥상 난간 모서리 위에 가지런히 놓인 운동화가 눈에 들어왔다. 달려가서 까치발로 아파트 아래를 내려다봤다. 늦은 것일까. 돌아서 구조요청을 하려는데 달이 환하게 얼굴을 내밀었다. 달빛이 가장 먼저 비춘 것은 웅크리고 울고 있는 민수였다.

  은우는 아무 말 없이 다가가 옆에 주저앉았다. 이미 다 식은 음료수에 빨대를 꽂아 민수한테 건넸다. 은우는 소중한 친구를 어루만져 줄 수 있어 좋았다. 둘은 아파트 아래에 내려다보이는 풍경을 구경했다. 은행나무가 가로수 되어 가지런히 끝없이 서 있는 길이 보인다. 중간에 드문드문 가로등이 켜져 있어서 노란 색깔이 더욱 아름답다. 이제 졸업이 다 되어간다. 조금만 더 참으면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세상은 넓고 또 어디에서 질 나쁜 사람을 만날지는 모르지만 무시하고 살자. 둘은 한마디도 서로 나누지 않았지만 한 손을 꼭 잡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어느 틈엔가 두 사람은 옥상에서 내려와 노란 은행잎이 떨어지는 가로수 밤길을 손잡고 걷고 있다.

  옥상은 희망이 없는 곳일까. 인터넷에 옥상을 검색하면 가장 최근에 올라온 것이 이틀 전 여학생이 학원 옥상에서 투신한 뉴스이다. 사흘 전에는 남학생이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 숨졌다. 그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날 붙들어 주세요. 내 손을 놓지 마세요.’라고 외치는 것을 우리는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아야 할 때인 듯하다. 여러 가지 악조건에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는 아이들. 어쩌면 그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옥상이 제일 편한 곳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떨어지는 것에 의미를 두어 본다. 나뭇잎 떨어지듯 사라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들. 옥상이 떨어지는 곳이 아닌 마음을 열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학교와 학원, 집 그다음에 학생들이 가는 곳은 어딜까. 돈이 있어도 그들이 갈 수 있는 건전한 장소는 적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못한 학생들은 갈 곳이 더 없다. 혼자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공간, 친구와 함께 기타치고, 마음을 비우고 채울 수 있는 밝은 공간이 없는 것이,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을 더욱 황폐하게 만든 듯하다.

  혼자 밥 먹기가 유행이고, 세상에 나 혼자라는 생각이, 아무도 뚫지 못하는 벽 속에 자기를 가두게 되는 것이다. 어렵겠지만 글 한 자 더 배우는 것보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청소년의 자살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잘못이기에, 최선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사색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선물하는 것은 어떨지. 우뚝 솟아있는 건물 옥상을 안전하게 재정비하고, 개방해서, 어두운 밤이 없도록 등을 켜두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친구와 시를 쓰고, 아빠와 밤하늘을 보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우리 사는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 같다. 소중한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공간이,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는 소통이 있는 공간이 가장 가까운 우리 옆에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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