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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화 Sep 21. 2022

다르지만 평범하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모든 좋음들 중 최상의 것”이 행복이며 행복이야말로 “가장 좋고 가장 고귀하고 가장 즐거운 것”이다. 동시에 “행복은 가장 완전한 것”이다. 인간 삶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이다. 그런데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나는 이 질문에 고개를 숙인다. 행복의 조건에는 무엇이 있을까. 거기에는 돈, 외모, 친구, 지식 등 외적 요소가 부수적으로 필요하다. 그럼 환경을 잘 타고나야 하는가. 흔히 이야기하는 금 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면 더욱 행복해질 수 있을까. 늠름하거나 예쁘고 잘생긴 외모를 가지면 더 행복할까. 여기까지 글을 쓰다가 나는 글쓰기를 멈춘다. 걷지도 일어나지도 못하는 전동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아들… 우리는 이미 행복의 조건에 어긋난 것일까.


  동내 마트 앞 세발자전거랑 유모차가 온다. 뒤에는 아기들의 부모가 뒤따르고 있다. 세발자전거를 탄 아이가 아들과 전동휠체어를 번갈아 쳐다본다. 아이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때를 쓰고 운다. “엄마 나 저 자전거 사줘” 아이의 부모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른다. 우리는 웃으면서 사람들 사이를 부드럽게 지나왔다. 남의 눈은 지옥이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시선은 호기심이, 동정심이 되어 등 뒤에 가득하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다름에서 오는 불편함은 여전히 남아있다.     

  아들은 이름 모를 병으로 전국 병원을 순회하다가, 결국 여섯 살 때부터 휠체어에 몸을 실었다. 이때부터 아들은 장애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는 장애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우리는 평범함을 잃어버렸다. 아픈 아이를 휠체어에 태우고 병원으로 물리치료실로 정해진 운명처럼 하루를 살고 있었다. 아이가 중학교 이 학년쯤 전동휠체어가 나왔다. 우리의 생활이 조금 달라졌다. 아들이 혼자서 학교 가고 학원도 간다. 혼자 다니는 아들을 보며 잠시 숨 고르기를 한다.     

 아들은 직장을 핑계로 나에게 자유를 주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섭섭한 마음은 들었으나 대견했다. 대전에 집을 얻어주고 한 달을 함께 있다가 아들을 홀로 두고 대구 집에 왔다.   아이는 엄마에게 짐이 되기 싫어 세상과 힘든 전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걱정되어 한 달에 한번 다녀왔다. 갈수록 두 달에 한번, 세 달에 한번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이제 나의 일부분이 아니라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아들은 금요일 퇴근을 하고 바로 나의 품으로 달려왔다. 떨어져 있으니 부모님이 고맙고, 많이 보고 싶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착한 아들이다. 거기에 복병이, 코로나가 우리 모두를 공포로 덮었다. 나는 하던 사업을 잠시 뒤로하고 아들 옆으로 달려왔다.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지만 아들은 잘 이겨냈다. 나의 걸음걸이에 맞춰 아들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따라오고 있다. 오늘은 다른 때 보다 더 긴 산책로로 들어섰다. 이팝나무 꽃이 잔잔한 구름처럼 둥실둥실 떠있는 가로수 길을 걸어간다. 어디서 불어오는지 아카시아 향기도 우리와 함께 걸어간다. 산길은 싱그러웠다. 마스크를 벗고 숨을 크게 쉬어본다. 아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길은 우리를 다시 꿈꾸게 했다.      

 우리는 몇 년 전에 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했다. 벤치에 앉아 대만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며 지난날을 이야기했다. 타이베이에서 아침을 먹고 첨밀밀을 부르면서 다니던 기억이, 번화가 시먼딩 거리에서 악사가 하프를 연주를 했었지. 돌아오는 길에 인천공항 면세점에 쇼핑 다니던 일도 생생하다. 방콕에서 있었던 일은 또 얼마나 재미있었나. 전동휠체어를 타고 맛 집을 찾아다니던 일이 그립다.      

 아들하고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은 일 년에 한 번씩 외국여행을 하는 것이다. 거실 한쪽 벽에 세계지도를 걸어놓았다. 그리고 다녀온 곳마다 사진을 붙여 기록하는 것이다. 이제 코로나19 상황이 엔데 믹으로 전환되고 있다.  조금만 더 잠잠해지면 잠시 멈추었던 꿈을 그려볼 생각이다.      

 아들은 나에게 은근히 묻는다. “엄마 어버이날 선물 뭐 받고 싶어?” “음… 우리 캠핑 갈까?” 당장이라도 자연을 찾아서 훌쩍 떠나고 싶었다.      

 여행을 다니다 보니 사고도 가끔 난다. 그중에 가장 커다란 사고가 카라반 사고였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에 승합차 뒤에 매달린 카라반이 흔들렸다. 핸들이 움직여지지 않고 뒤에 달린 카라반이 흔드는 데로 앞차가 요동을 쳤다. 급하게 브레이크를 꽉 밟았더니 승합차의 앞 타이어 두 개가 동시에 터지면서 차가 섰다. 뒤에 카라반이 우리를 덮쳤다. 새벽 두시에 고속도로에서…

 다행히 뒤 따라오던 차는 없어서 대형 사고를 면했다. 다음날 승합차와 카라반은 폐차를 했다. 그 당시는 끔찍하게 무서웠는데 이것도 시간이 지나니 웃음이 난다. 정말 시간은 약인 듯하다.      

 우리의 여행 본능은 강하다. 이제 타던 카라반은 없지만 경사로가 달린 스타렉스가 카라반을 대신할 것이다. 이틀 뒤 서로의 의견이 망설임 없이 통영으로 자동차를 달릴 것이다.      

  오월은 참 신비롭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통영으로 여행을 떠나는 아침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하얀 눈으로 착각을 일으킬 만큼의 함박꽃 눈이 흩날린다. 행복은 우리들의 주변에 있다. 항상 내 옆에 머물러있으면 좋겠지만 행복은 한시적이다. 그러나 연속적이다. 항상 행복하면 그것이 행복인지 모른다. 더 좋은 것을 찾아 헤맬 때, 욕심을 부릴 때 행복은 멀어진다. 네 잎 클로버 행운을 찾아 클로버 밭을 짓밟을 때 발아래 무수한 행복은 비명을 지른다. ‘평범한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라고’ 다시 평범한 행복이 햇살처럼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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