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가 내게 들어온 날

by 류재준

2014년 지금의 직장으로 옮기면서 한동안 무기력하게 지냈다. 직장문화도 왠지 낯설고 몇 번 실망스러운 일을 겪으면서 좌절을 맛본 탓이었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애써 다잡으면서 겨우겨우 생활하고 있었다. 2015년 2월쯤으로 기억한다. 직장 내 게시판에 통기타를 배울 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떴다. 뜬금없게도 나는 순간 마음이 두근거렸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예전부터 기회가 되면 기타를 배우고 싶었다.


우리 세대에게 통기타는 낭만과 자유를 상징하는 악기였다. 누구라도 장발에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기타를 튕기며 노래하는 자신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을 거다. 게다가 나는 바로 위의 형이 학창시절에 밴드 활동을 했다. 형이 친구들과 즐겁게 기타 치면서 노래하는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형 몰래 기타를 만지작거리기는 했다. 하지만 금세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는 음악 쪽에 전혀 재능이 없었다. 노래도 잘 부르지 못하고, 마음 따로 손가락 따로 움직였다. 그 뒤로 오랫동안 기타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처참했던 기억이 희미해진 탓일까? 어쩌면 기타를 배우고 싶은 게 아니라, 무료하고 답답한 나날을 어떻게든 들쑤시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기간제 신분인 탓에 조심스레 회원 조건이 되는지 문의했다. 통기타 모임 총무를 맡은 직원은 아무 문제가 없다면서 가입을 권유했다. 심장이 뛰는 방향으로 앞뒤 재지 않고 성큼 나아가는 건 피 끓는 청춘들이나 가능한 일이다.


나는 쉽사리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다가 몇 주가 지나서야 용기를 내 18층 음악실을 문을 두드렸다. 통기타 회원들은 초보라고 해도 대부분은 나보다 훨씬 뛰어났고, 이미 수준급 실력을 갖춘 분들도 있었다. 그분들의 현란한 손놀림에 나는 잔뜩 주눅이 들었다.

놀랍게도 기타 수업은 무척 즐거웠다. 매주 한 번 열리는 기타 수업을 손꼽아 기다렸다. 내 안에 숨겨진 음악 재능이 이제야 깨어나는 듯했다. 하지만 두어 달 지나면서 부풀어오르던 마음은 다시 바람 빠진 풍선처럼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기본 코드와 스트로크도 익히지 못한 탓에, 회원들 눈치를 봐야 했다. 수업이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스트레스만 쌓였다. 괜히 사서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시절에 음악 공부를 성실히 하지 못한 탓에 오선지에 그려진 음표, 쉼표, 되돌이표가 암호처럼 난해했다. 기타를 배우다 보면 고고(8비트), 슬로우락(12비트), 슬로우고고(16비트) 등 다양한 리듬이 있다. 이걸 스트로크나 아르페지오 주법으로 연주해야 하는데, 이때 주법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박자감이 없다 보니 연주는 늘 엉망진창이었다.


부족한 실력을 만회하기 위해 가끔 집에서도 기타 연습을 했다. 그럴 때마다 아내와 애들이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왔다. 내 딴에는 제법 연주가 잘 되고, 노래도 그럭저럭 불렀다고 뿌듯해하다가 애들의 지청구에 귓불이 빨개지곤 했다.

숱한 좌절과 구박을 뒤로하고, 나는 매주 화요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기타 교실에 나갔다. 열심히 했던 회원들은 어느덧 공연도 하고, 개인 발표회 나가서도 멋진 연주를 뽐내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초보 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가끔 잘하는 회원들끼리 초청공연에 다니기도 했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때마다 이를 악물고 기타에 매달렸다. 중년의 느닷없는 승부욕이라니.


그런데 이럴 수가! 어느 날 내가 공연팀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영산강 서창들녘에서 열리는 ‘억새축제’였다. 아직 서투른 나는 맨 뒷자리에 앉았다. 연주가 시작되자 팔다리가 떨리고, 가슴은 콩닥콩닥 뛰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지금까지 연습했던 게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당황해서 실수를 연발했다. 연주가 마무리될 즈음에야 겨우 안정을 찾고 주변도 눈에 들어왔다. 공연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천변의 흐드러지게 핀 억새가 보였다. 비록 엉망으로 끝났지만, 그래도 내 인생의 첫 기타 공연을 잊을 수 없다.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과 자신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로부터 다시 몇 해가 흐르고, 나는 제법 노련한 기타 연주자가 되었다. 기타 교실을 제집처럼 편안하게 드나들고, 공연팀에도 빠짐없이 참석한다. 공연 일정이 잡히면 집중력 있게 연습할 수 있어서 좋다. 바짝 연습하면 그만큼 실력이 느는 느낌이다.

한창 재미와 흥미를 느낄 때쯤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사람들이 모여서 연습하는 것도, 공연도 멈췄다. 기타 교실은 문을 닫았다. 회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래 봤자 회사에서 다시 만날 사이지만, 헤어지던 날의 풍경은 생이별하는 이산가족의 처연함에 비할 만했다. 코로나 기간에 나는 집에서 틈틈이 기타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맥이 풀린 탓인지 연습에 몰두할 수 없었다. 발전은 커녕 현상유지도 힘들었다. 연습한 영상을 강사 선생님께 보내면 박자를 놓치거나 잘못된 부분을 꼼꼼히 짚어주었다. 그나마 강사 선생님 덕분에 잘못된 부분들을 고칠 수 있었다.


처음 기타 회원 모집 공고문이 뜬 날부터 7여 년이 흐른 지금, 나는 여전히 같은 회사에 다닌다. 기분이 울적하거나 기쁘거나 애매한 날에, 비가 내리거나 햇빛 눈 부신 날에, 심심하거나 쉴 새 없이 바쁜 날에, 나는 틈틈이 기타를 꺼낸다. 그러고는 아직 미숙한 실력이지만, 이런저런 곡을 두서없이 연주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나만의 공간에 평온이 찾아온다. 심각한 자기애에 빠졌다고 타박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내 기타 연주 소리가 더없이 좋다.


소음이라고 싫어하던 아내와 아이들도 이제는 좀 음악처럼 들린다고 칭찬해준다. 어느덧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거리두기도 완화되거나 해제되었다. 기타 교실이 다시 문을 열었다. 나는 가장 먼저 음악실에 도착해서 강사님 생수를 챙겨드리고 맨 앞자리에 앉아서 미리 기타를 조율했다. 그리운 강사 선생님과 회원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우리는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곧장 기타 연습에 들어갔다. 다들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회원 중에 내가 따르던 형님이 한 분 계셨다. 음악적 재능이 탁월한데다 성실한 노력형이었다. 지긋한 나이에도 뒤로 물러서 팔짱을 끼고 있는 법이 없었다. 남들 앞에서 스스럼없이 연주하고,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항상 누구보다 먼저 키타 교실에 나오고, 누구보다 늦게까지 연습했다. 타고난 재능과 열정적인 모습을 따라 해보려 했지만 넘사벽이었다. 형님은 기타 모임 회장까지 하면서 넉넉한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형님은 얼마 전 개인 사정으로 직장을 그만두었다. 기타를 칠 때마다 그분이 그립다.


내 기타에는 우아한 백합이 그려져 있다. 기타를 살며시 안아본다. 어등산 저녁노을과 어울리는 기타의 자태가 아름답다. 가녀린 6줄, 화려한 14개 가지에서 피어나는 화음들이 빛난다. 내 손가락에 따라서 깨어나고, 나지막이 속삭이고, 때로는 울부짖고 아우성친다. 밤이 깊어가고 백합이 그려진 기타도 잠이 든다. 견딜 수 없는 적막감, 잠들어 있는 기타를 깨우고 싶지만, 식구들이 깰까 조심스럽다. 기타를 어루만지며 하루를 잊는다. 언제부터인가 통기타는 내 인생의 도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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