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골목길, 그 자취방

by 류재준

도시는 언제나 분주하다. 수많은 사람으로 시끌벅적하고, 도로는 자동차로 넘쳐나고, 높고 위압적인 건물이 복잡하게 늘어서 있다. 사람들은 여유를 잃어간다.


도시의 삶은 지독한 경쟁의 연속이다.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긴장과 화를 탑재하고 만성피로에 시달린다. 사실 이 집단 히스테리의 근저에는 도시 공간의 폐쇄성과 압박감이 도사리고 있다. 비좁은 땅에 들어선 우리나라 대도시의 밀집도는 세계적으로 손꼽힌다. 이곳에서 숨 쉴 공간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디에서 잠시나마 긴장을 내려놓고 휴식할 수 있을까?


나에게 골목길은 도시 생활의 시작이었고 치열한 삶의 공간이었다. 골목길에서 청춘을 보냈고, 성장했다. 때로는 골목길에서 실연의 아픔을 겪었고, 쓸쓸함을 배웠다. 나는 1986년 광주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여 북구 서방의 어느 오래된 골목길에서 처음 자취를 시작했다. 부모님께서 돈이 없어서 형편상 어쩔 수 없었다. 그때는 돈이 있는 집안의 학생들은 하숙하거나, 전셋집을 얻어 자취했다. 나처럼 가난한 시골집에서 올라온 학생들은 열 달 치 선금을 내고 사글세 자취를 했다. 내가 입학한 학교는 주월동에 있었는데, 그 당시 두 살 터울의 형이 북구 지역의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터라 불가피하게 그곳에서 학교에 다녔다.


서방 골목길 자취방은 그 당시 북구 지역에서 가장 방값이 쌌을 거다. 천장과 부엌에는 쥐들이 자주 드나들었고, 주인댁 내외는 허구한 날 부부싸움을 하는 통에 시끄러웠다. 책상 하나에 이불 몇 개, 냄비가 살림의 전부였고 두 사람이 겨우 몸을 누울 만큼 작은 방이었다.


석유곤로를 사용해서 밥을 해먹었는데 간혹 반찬이 떨어질 때는 고추장, 된장, 간장에 밥을 먹는 경우도 있었다. 정말 반찬이 없을 때는 고춧가루를 비벼 먹기도 했다. 자취방에 형 친구들이 수시로 드나들다 보니 쌀과 반찬이 턱없이 부족했다. 아침저녁으로 서방에서 주월동까지 먼 거리를 통학하느라 힘들었다. 매일 타고 다니던 24번 시내버스는 직장인과 학생들로 늘 만원이었고, 제때 버스를 타지 못해서 지각도 자주 했다.

형이 졸업한 후 나는 비로소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 근처 주월동이나 백운동 주변에서 자취했다. 아침밥은 거의 굶고, 저녁 10시쯤 끝나는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와서는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중에서 겨울철 연탄을 가는 것이 가장 곤욕스러웠다. 늘 연탄불이 꺼진 탓에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이불을 이중삼중으로 두껍게 덮어서 잤던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이 끝나갈 무렵에는 남구 주월동 도로변 2층 주택의 작은 방에서 자취했는데, 마침 맞은편에 새 아파트가 들어섰다. 매일 저녁 건너편 휘황찬란한 아파트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어른이 되면 저런 아파트에서 꼭 살아야지 다짐했었다.


지금은 백운고가 도로가 철거되고, 남구청이 들어서고, 그 당시 학교는 매월동으로 이전하고 옛 부지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모하여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도시의 골목길은 자본주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다. 큰 거리 빌딩의 뒤편으로 돌아가면, 거기에 작고 지붕 낮은 집들의 담벼락을 경계 삼아 좁고 삐뚤빼뚤한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도시가 요구하는 신분과 재력과 능력을 지니지 못한 가난한 이들의 거처이다. 골목길은 그들의 고달픈 일상처럼 늘 그늘지고 쓸쓸하고 적막하다. 골목길을 가로지르는 뒤엉킨 전선과 가로등이 처량하고 가끔 개 짖는 소리도 구슬프다. 멀리 보이는 높은 아파트는 동경과 욕망을 자극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현실의 늪은 깊고 짙다. 그곳에서 지내던 때는 어떻게 해서라도 빨리 탈출하고 싶었다.


이제 나는 아파트에 산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나도 모르게 그 지긋지긋하던 골목길로 발길이 향한다. 비좁고 가파른 언덕배기, 소형아파트, 다세대 연립주택, 먼지 가득한 구멍가게, 차량이 빼곡히 주차된 낯익은 골목길을 찬찬히 걷는다. 말할 수 없이 어지럽고 이상하리만치 적막한 공간에서 나는 어느샌가 위안을 얻는다. 오래전 기억을 회상하며 얻는 평온은 아니다. 그러기에는 그 시절은 내게 너무 가혹했었다.


어쩌면 도심에서 극적으로 탈출했다는 해방감과 안도감이며, 그보다는 비로소 골목길을 제대로 ‘발견’하면서 얻는 기쁨일 것이다. 골목길은 도시가 분출한 쓰레기처리장이며 아직 자본의 힘이 닿지 않는다. 도시가 강요하는 질서와 관계가 통용되지 않는다. 그러니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고 되고, 도시가 싸질러놓은 잡동사니가 얼마나 흉측한지 확인할 수 있고, 사람 사는 날것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 골목길 한구석에 쭈그려 앉아서 지나가는 개미 행렬을 멍하니 관찰할 수 있는 기쁨도 덤으로 얻는다. 나에게 골목길은 도시의 비밀정원이자 여백이다.


도시의 골목길은 익숙함과 낯섦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도시는 힘이 닿는 한 확장을 거듭한다. 덕분에 골목길은 점차 사라져간다. 낮은 지붕 집도, 눈높이 담벼락도, 구불구불 좁은 길도 허물어지고 거기에 높고 건물과 넓은 도로가 들어선다. 언뜻 보기에 소란스러움이 사라지고 정리된 듯하지만, 나로서는 아쉽고 무서울 따름이다. 또 누군가는 저 빌딩의 틈바구니에서 숱한 좌절과 절망의 고비를 넘어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견고한 회색 거리에서도 가끔 위안을 찾곤 한다. 찬찬히 걸으면서 두리번거리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회색 도시 거리도 계절에 따라서 모습을 달리한다. 봄에는 가로수 새잎이 돋고, 담벼락 사이, 보도블록과 아스팔트의 작은 틈 사이에 민들레와 이름 모를 들꽃이 핀다. 여름과 가을에는 가로수 잎이 초록에서 진녹색으로 조금씩 바뀌고 열매도 맺는다. 자연의 경이로움이 새삼스럽다. 도저히 꽃을 피울 수 없다고 생각되는 틈을 헤집고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먼지에 찌들었던 가로수 잎들이 쏟아지는 빗줄기에 깨끗이 새 단장 한다. 거리의 꽃과 나무들도 목을 축이고 갈증을 해소한다. 여학생 둘이 신호등 앞에서 우산을 다정하게 함께 쓰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젖은 꽃잎들이 아스팔트 바닥에 불규칙하게 들러붙었다. 꽃그림을 망칠까봐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스치듯 지나가는 바람 속에는 온갖 꽃의 향기가 담겨 있다. 곳곳에 퍼지면서 도시의 악취가 사라진다.


비가 갠 후, 도시의 거리는 산뜻하다. 아파트 창문을 열고 새벽 공기를 길게 들이마신다. 평소에는 흐릿하고, 아득했던 앞산이 뚜렷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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