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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Nov 12. 2022

시간들의 서랍

리움미술관 ROOM Project | 2022.06.22 - 12.18

리움미술관에서 이번에 새로이 시작한 ROOM Project는 신진작가들을 선보이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리움의 탄탄한 전시들을 마주하기 전 로비 공간에 마련된 이 프로젝트는 유지영 작가를 프로젝트의 첫 작가로서 선보이고 있습니다. 유지영 작가는 회화가 가지는 규칙들을 탈피하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물들의 구조에 회화를 대입합니다. 또한 시간, 생각과 같이 물리적으로 담을 수 없는 것들을 담는 방법을 고민하며 사물의 형식과 그 안에 속한 대상 간의 관계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문>, 2022, 나무에 페인트, 스테인리스강, 제스모나이트, 스위치, 잠금장치와 열쇠, 석고, 200x80x13.5cm

새벽노을 같은 하늘색과 분홍색 벽면으로 둘러싸인 이 전시 공간에는 마치 수많은 문과 창문 그리고 선반 같은 것들이 걸려있어 더욱 비현실적인 공간처럼 보이도록 하고 있습니다. 특히 문처럼 생긴 작품들은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미지의 공간이 나올 것만 같아 벽을 가득 채운 몽환적인 분위기에 비현실감을 더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문'일 겁니다. 공간을 넘어갈 때 사용하는 문들은 그 너머에 한정된 공간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더 넓은 공간으로 펼쳐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잠기기도 하는 문은 공간 속에 있는 수많은 물건들을 보관하거나 가두기도 합니다. <시간들의 서랍>이 진행되는 아담한 전시장에 수많은 문들은 전시장의 안에서 밖을 나눔과 동시에 작가의 작품에서도 안과 밖을 나누어 줍니다.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들은 전시장의 안이자 동시에 작품의 안에 머물며 작가가 상상하는 밖의 세계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가장 눈길이 갔던 작품은 전시장에 실제로 기계실로 통하는 문을 가지고 제작한 작품 <문>이었습니다. 이 작품에 달려있는 모든 시계, 손잡이, 열쇠 구멍, 스위치는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문 앞에 놓인 음료와 쿠키조차 먹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문을 열고 싶고, 열쇠를 돌려 문 뒤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작가가 어떠한 작품세계를 펼쳐놓았을지 상상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상 속에서 평범한 기계실을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container unfolds what you desire>, 2022, 나무, 캔버스에 유채, 제스모나이트, 참피나무, 시계 무브먼트, 각 30x30x3.5cm

벽에 나란히 걸린 다섯 개의 시계에는 숫자가 들어갈 자리에 알파벳이 적혀있습니다. 분침이 가리키는 알파벳을 순서대로 읽으면 작품의 제목인 'container unfolds what you desire'라는 문장이 완성됩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작가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참고한 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닫혀있는 상자 속에는 언제나, 열려있는 상자 속 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다. - 공간의 시학


관객들을 사로잡는 수많은 전시들을 진행하는 리움의 한 쪽에 동시대 미술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신진작가 유지영의 작품의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ROOM Project였습니다. 앞으로 이 공간에서 리움이 새롭게 선보일 작가들의 작품들과 프로젝트의 시작을 함께한 유지영 작가의 또 다른 작품들을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전시 제목: [특별프로젝트] 유지영: 시간들의 서랍

전시 위치: 리움미슬관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55길 60-16)

전시 날짜: 2022.06.22 - 12.18

관람 시간: 10:00 - 18:00(매주 월 정기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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