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드디어 10년 만에 암으로부터 완전한 졸업을 선고 받았다. 2014년 2월 15일 유방암 선고를 받고 8회의 선항암 후 그해 8월 11시간에 가까운 유방 전절제와 복원 수술을 받고 드디어 10년이 지나, 2024년 8월 14일 아산병원에서 마지막 검사를 했다. 그리고 2024년 8월 22일 그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다.
사실상 지난 7월 26일에 유방 초음파 검진을 받아서 아주 깨끗하고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말씀을 이미 들은지라 혹시나 하는 불안감은 없었지만, 진짜 10년 유방암 추적 검사를 하는 마지막 검사 결과라서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다.
아직도 아산병원은 보호자 한 명만 병원 내로 진입이 가능한지라, 동생은 들어가지 못하고 남편만 같이 들어갔다. 동생은 이미 결과는 알고 있으니 안심이라며 "언니, 맡겨 놓은 좋은 이야기 듣고 와"라며 환하게 웃었다.
10년 잘 이겨내시고 이렇게 졸업을 말씀 드릴 수 있게 되어서 기쁩니다.
의사 선생님의 환한 미소와 함께 이 말을 들은 순간 울컥했다. 초음파 검사를 받아서 이미 알겠지만 그 외의 모든 검사 결과도 깨끗하다며 걱정말고 졸업하셔도 된다고 하셨다. 감정을 꾹꾹 눌러 담고 나와서 남편이 병원 벽에 감사의 메시지를 남기는 그 순간까지도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맡겨 놓은 좋은 이야기를 받아왔을 뿐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정작 함께 병동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나를 기다리던 동생을 본 순간 눈물이 터져나왔다. 서로를 안고 등을 쓰다듬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남편이 우리 둘을 안아주며 왜 나랑 있을 때는 안 울고 여기서 이러냐며 억울하다고 했다. 자매의 눈물을 멈추려는 남편의 노력이 가상했다. 웃기로 했다. 울다가 웃어서 똥구멍에 털이 나든가 말든가 알게 뭔가...기쁨의 눈물과 기쁨의 웃음은 공존하는 거 아니겠어?
이 회송 후 절차 안내를 정말 받고 싶었다. 이제 동네 병원에서 1년마다 유방초음파와 유방촬영 받으면서 관리 잘하고 앞으로 5년 뒤에 오면 된다고 한다.
가족들에게 소식을 먼저 알리고 암 투병의 인연으로 만난 지연씨에게 소식을 알리고 내 SNS에도 소식을 알렸다. 많은 지인들이 축하를 해주었고 스레드를 통해서는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스친분들의 축하도 받았다. 내가 살다살다 좋아요를 500개가 넘게 받아보는구나...글 올린지 6시간 만에 대한민국 사람들의 정을 느끼며 온 우주가 나의 졸업을 축하하나보다 라는 착각에 듬뿍 빠지기로 했다.
이제는 재입학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만 남았다.
타목시펜은 9월 말까지 먹으라는 지침을 받았다. 안전하게 꽉 채워서 먹는 것이 좋다고 약을 더 처방해주셨다. 그리고 주에 160분 이상의 땀이 나는 운동다운 운동을 하라고 했다. 현재는 뭘 하고 있냐고 하셔서 필라테스를 배우고 있고 남편 따라서 산책을 한다고 하니까, 산책은 산책이니 좀 더 빠른 속도로 걷는 운동이 되게끔 하라고 하셨다. 이제 실내 자전거를 시작할 거라고 하니 아주 좋다면, 꼭 운동을 빼먹지 말고 해달라고 건강하라고 덕담을 해주셨다.
의사 선생님이 시키는 건 또 잘 하는 나니까! 주에 160분 이상 운동하기 꼭 해내야지! 그리고 내 친구 소영이가 알려준 토마토양파 주스도 꼭 잘 만들어 먹고 싫어하는 야채랑도 친해져야지! 건강을 지키는 찐어른의 길로 이제 향해봐야겠다.
이 고통의 경험 또한 나에게도, 남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만들어 보고 싶다.
내가 암에 걸렸을 때 사실 가장 힘들었던 건 몸의 고통보다 마음의 고통이었다. 특히 유방암은 여성성을 대표하는 가슴이라는 부위가 큰 데미지를 입기에 암이라는 목숨을 위협하는 병을 넘어 목숨을 살려내도 여성성이 훼손되는 것 같은 충격이 찾아온다.
암은 긴 시간 동안 우리의 일상을 빼앗으려고 든다. 이 때 암에게 우리의 일상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암투병의 과정만큼 암투병 이후의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특히 젊은 암 환자가 많은데, 그 사람들은 사실 투병 보다도 투병 후가 더 걱정이다. 내가 젊은 암 환자였기 때문에 잘 알 수 밖에 없다.
암투병의 필수적인 시간들이 있다보니 정말 초기 암이 아닌 이상은 최소 3개월씩은 쉴 수 밖에 없게 되는데, 아직 내 손에 쥔 무기가 많지 않다 보니 과연 그 이상의 기간을 기다려 줄 지 불안할 수 밖에 없다. 나를 대체할 인력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다들 사회 복귀에 대해 걱정이 많다.
그래서 나는 암 환자들이 암투병 후 재취업 준비나 직장 복귀를 위해 필요한 준비 등을 돕는 등 암 환우들의 투병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콘텐츠나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나는 암으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우울증에 대한 정신과 치료를 따로 받지 않았다.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검사를 하게 했을 때도 늘 매우 건강한 정신 상태로 나왔다. 아마도 가족들의 헌신적인 사랑이 있고 내가 암 이후의 내 미래에 대해 모든 정신이 쏠려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실제로 항암 하면서 자격증 4개 땄는데, 그 때 경험과 지식들이 내가 리더십을 할 때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암을 겪으며 삶을 보는 관점도 달라져서 인생에 많은 변화가 긍정적으로 생겼기에, 암이 나에게 득이 되는 부분도 분명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나의 경험은 다른 환우들에게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줄여주고 희망도 생기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다양하게 시도를 해볼 생각이다. 이것이 바로 졸업 후 나의 포부가 되시겠다.
하여튼 오늘 이 졸업에는 섭섭함 없는 시원함만 가득하다. 함께 해서 더러웠고 두번 다시 보지 말자, 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