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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Aug 22. 2024

고모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8월의 일삶기록

1967년생, 58세, 정년 2년을 앞두고  직장 내 괴롭힘???


20대나 30대 사회초년생도 아니고, 1967년생, 58세, 정년 2년을 앞두고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할지 어떻게 알았을까? 현실적으로는 고모가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가 되었다는 것이 더 납득되는 이야기다.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만한 유치한 사건과 억지 인사위원회, 폭언과 막말 등 기가 막힐 이야기들 속에서 한가지 명확한 건 고모는 명예로운 퇴직을 위해서 맞서 싸우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에겐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고모가 잘못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고 쳐도 정도가 심한 사건들의 내용을 들으면서, 그리고 우리 고모가 자신의 평생이라고 할 수 있는 회사 생활에 흠을 내는 행동을 할리가 만무하다는 것을 알기에, 이것은 내가 가족이라서 고모 편을 드는 것이 아니어도 직장 내 괴롭힘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것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노무사, 변호사, 노동부 등에 상담도 받았다. 철두철미한 우리 고모답게 수 개월 간의 증거가 확보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상담 결과는 당연히 무조건 이기니까 싸우고 싶다면 싸우셔도 된다였다.

인생 전체를 보면 한창 나이지만, 60대로 곧 진입하는 고모에게 증거 자료를 확보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었다. 증거로서 인정 받는 증거 자료를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좌충우돌도 많이 있었고 그래도 하나하나 답을 찾으며 증거로 채택될 수 있는 증거물들을 잘 확보했다.


지리멸렬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고모에게 지금의 회사는 자신의 인생이었다. 전문대학을 졸업하자마자 21살에 입사한 첫 회사였고 이제 2년 뒤면 정년퇴임을 하기에 회사에 대한 애사심도, 본인 일에 대한 자긍심도 매우 컸다. 생긴지 꽤 오래되었고 강남권에 있는 유명한 호텔에서 40년 가까이 근무하고 있는 막내고모는 나에게 롤모델이 되는 사람 중 하나다.


37년 간 다닌 회사에서 꾸준히 자신의 일을 해내는 것도, 퇴근 후 공부를 하면서 부족한 학위를 채우고 자격증을 따고 강의를 나가는 등 나이가 들어도 계속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고 해낼 수 있다는 걸 눈 앞에서 보여주고 있는 스승이다.

새로운 걸 배우고 도전하는 걸 즐기고 일과 삶은 나눌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고 가족을 모든 것의 최우선으로 두고 살아가는 고모와 나는, 조카와 고모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인생의 친구라고 할 정도로 서로 기질적으로도 많이 닮았고 잘 맞는다. 내가 자기 자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기를 많이 닮아서 깜짝깜짝 놀란다고 할 정도다.


그런 고모가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한다는 것이 연상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괴롭히는 가해자들의 정체가 뒷통수를 얼얼하게 만드는 사람들이어서 더 충격적이었다.

이 중심에는 두 사람이 있었는데, A씨는 함께 오랜 시간을 일했고 직장 내 절친이라고 할 수 있던 사람에게 말이다. 우리 부부와도 몇 번을 만난 적이 있고 친가 식구들도 모두 아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또 한명의 가해자인 B씨는 황당하게도 고모가 근무하는 호텔의 손님으로, 외부인이다. A씨는 현재 해당 호텔의 사장이고, B씨는 경기도권의 유명 병원의 닥터 사모님이다.


기도 안 차는 많은 사건들이 있는데 이건 앞으로 다루기로 하고...우리 고모는 힘들지만 차분히 신중하게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절차가 번거롭고 지지부진한 싸움이지만, 싸울만 하다는 걸 안 이상 차분히 준비해서 싸우면 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건 이 과정을 겪으면서 고모가 입은 마음의 상처는 낫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들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모는 그 이유를 몰라서 서글퍼했다.


서로 어긋난 사건이 있었다고 쳐도 정도가 심했다. 대체 왜 이렇게 되었느냐고 가족들 모두 고모에게 물어봤지만 고모도 잘 모르겠어서 답답하다고 했다. 다만 고모가 최근 들어서 A씨에게 거리를 두긴 했어서 이게 서운함으로 촉발되어 뭔가 확대 해석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고 했다.

사실 A씨는 몇 년 동안 퇴근 후 및 휴일 늦은 시간에 지속적으로 전화하며 자신의 힘듦을 이야기 하고 죽겠다는 암시를 해오면서 고모의 마음을 힘들게 했었다. 오랜 기간 지쳐있던 고모는 가족들의 조언에 따라서 전화를 일부러 잘 안 받기 시작했다. 전화를 예전만큼 안 받아줘서 그렇지 계속 친하게 잘 지내왔다고 생각했고, 오히려 B씨가 나서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또는 A씨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본인을 내보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는데...A씨가 작년부터 회장님이 '저 늙은 것들 내 앞에서 치워버려'(여러분들 눈, 귀 버릴까봐 순화함 ㅎㅎㅎ)라는 말을 하시는 걸 본인이 잘 말리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었는데, A씨가 높은 자리로 가면서 그 말을 들어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도 했다.

나는 그건 아닐 거라고 했다. 솔직히 정도 호텔의 회장님이 저런 저급한 표현을 쓸까? 고모는 A씨를 몇 년 전부터 자기를 회사가 내보내려고 하는데 그걸 보호해주고 지켜준 사람으로 이야기 해왔는데,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왜 A씨는 저런 말을 굳이 고모에게 전하는 지와 대체 저 정도 규모되는 호텔이, 요즘처럼 인력난에 경험을 많이 가진 사람들을 나이 많은 여자라는 이유로 정년을 못 채우게 만들어서 내보내려고 한다는 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모는 오래 근무한 만큼 업무적으로 베테랑이었고 단골 고객들이 많아서 호텔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뭐...진실은 지리멸렬한 싸움 끝에 알게 되겠지만...


정석대로 싸우려는 고모가 멋지고, 아프다.


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보니, 흥분을 하면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덤벼드는 편인데, 우리 고모는 이런 상황에서도 어른스럽고 냉정했다.

솔직히 고모는 A씨나 B씨 내밀한 이야기들을 많이 알고 있고 그들을 공격할만한 것들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것들을 확 회사고 커뮤니티고 사방군데 풀어버려서 개싸움을 하자고 했는데, 고모는 지금 자기가 하는 싸움은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은게 아니라, 자신이 평생을 바친 회사에서 명예롭게 퇴직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고 싶은 도전이라고 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그만두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그러기에는 이 회사가 자신의 삶 그 자체였었기에 불명예스럽게 도망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고모는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싶은 것 뿐이다. 내 삶 그 자체였던 이 회사를, 결국에 떠나더라도 평생을 바친 이곳에서의 자신의 삶의 명예를 지켜내고 싶은거다.


그런 고모가 멋졌다. 나도 50대가 되면 저렇게 될 수 있는 건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속이 상해 죽을 것 같다. 지난 7월, 부모님의 칠순 파티 때 친가 식구들과 모였을 때 막내고모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살이 많이 내린 고모의 모습에 울컥했는데, 최근에는 괴롭힘의 강도가 심해지면서 식사도 잘 못하고 잠도 잘 못자면서 '말랐다'라고 할 정도로 살이 빠졌다. 몇 개월째 정신과 상담까지 받고 있는 매우 힘든 상황에서도 가족들 모임에 나오면 늘 웃고 잘 이겨내겠다고 다짐하는 고모 모습을 보면 불안하기까지 하다.


늘 긍정적이어야 하고 강해야 한다는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신념을 무리하게 지켜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고, 나약해도 되고 때려쳐도 되고 포기해도 되니 그저 고모가 행복하면 된다고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같이 싸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모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알아봐주고 같이 고민하고 위로하는 것 외에도 말이다.

나는 그 방법을 고모의 이 싸움을 글로 기록해두는 것으로 선택했다. 고모가 명예롭게 맞서는 이 과정들을 가감없이 기록하고 고모가 그걸 보면서 자기 스스로를 뿌듯하게 여기고 잘하고 있다고 응원할 수 있게 하고 싶다.




당분간 내가 쓰려고 했던 글들은 모두 다 접어두려고 한다. 기존에 서랍에 저장해놨던 3-4가지 글들만 마무리 하고 나면 <고모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라는 타이틀로 글을 쓰려고 한다.

지금은 고모에게 더 집중하고 싶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고모에게 내 사랑을 전하고 싶다. 우리 가족은 모두 당신의 편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이것이 매우 편중적인 이야기가 되더라도 나는 고모의 편으로서 고모의 명예를 지켜나가는 여정을 써 내려가고 싶다.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을 핑계로 고모와 만나서 처음부터의 이야기를 듣고 계속 이 과정들을 올리려고 한다. 우리 고모의 싸움이 누군가 고모처럼 괴로워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희망과 위로가 되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정보이자 힘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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