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도 말~22년 초 한창 코로나가 유행하고 있을 시기 적은 글입니다
중증 치매가 있는 할머니가 코로나 병동에 입원했다. 코로나가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답답하다며 병실 밖을 나가려 한다. 왜 격리가 필요한지 계속 설명해도 까먹고, 같은 말만 계속 반복한다. “답답해! 나갈래! 여기 어디야?!” 새벽 한 시가 넘도록 실랑이를 거듭했다. 같은 병실을 쓰는 사람에게 피해가 갈 것 같아 빈 병실로 할머니를 옮겼다.
결국 한 명씩 두 시간 동안 교대로 할머니를 옆을 지키기로 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병실 안에서 할머니와 함께 있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랜 시간 동안 가만히 있으려고 하니 몸이 쑤셨다. 할머니는 이런 시간을 열흘 이상이나 버텨야 한다 생각하니 밖으로 나가려는 마음이 이해되었다.
“어휴…. 늙으니까 살기 힘들어”
“왜 살기 힘들어요? “
“젊었을 때 남편이 일찍 죽고 혼자서 애 키우느라 힘들었어. 그래도 고등학교까지 졸업했어.”
“졸업하고 뭐 했는데요?”
“일했지! 회사에서 일하면서 혼자서 사 남매 다 키웠어!”
과거의 기억은 남아 있지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인지를 못 하신다. 여기가 어디인지, 자신이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자신을 하얀색 방에 가둬 놓고 나가지도 못하게 하니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환자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사는 게 힘들다는 푸념도 들어줄 만하게 되었고 어느새 교대 시간이 다가왔다.
학생 때는 환자에게 신체적 간호뿐만 아니라 정신적 간호까지 제공하는 간호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쏟아지는 일을 치러내기도 바빠 환자의 입장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오로지 의료적 관점으로만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는 혈액 수치, CT나 MRI 결괏값 등뿐이지 환자의 의견이 아니다. 환자와 이렇게 긴 시간을 함께해 본 적은 처음이었다. 환자를 대하던 나의 태도를 다시 돌이켜 볼 수 있었다. 귀찮게만 느껴지던 순간이 감사하게 변화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