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직장을 결혼하자마자 하나도 아니고 둘 다 그만둔다고 하니, 양가 부모님은 얼마나 기가 찼을까. (너희, 제정신이니?) 이제 막 대리를 단 나의 회사엔 꽤 많은 여자 상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커리어적으로도 개인적 삶의 모습으로도 롤모델이 없었다. 대학 졸업 후 7년간 한 회사를 다닌 남편의 회사엔 이상적인 아빠의 모습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것도 쉽진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고민. 10년 후 우리의 모습은 과연 그들과 다를 수 있을까. 하지만 20년간 대기업을 다니신 우리 부모님도, 30년간 제조업 사업을 하신 시부모님도 우리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말보단 결과로 증명해야 했다. 우리가 결코 틀린 길을 선택한 게 아니라는 걸.
그렇게 우당탕탕 자영업자의 삶은 시작되었다.
어른들의 말, 틀린 것 하나 없다. 시 까만 콜라 같은 바깥세상은, 만나자마자 우리를 톡! 쏘며 격하게 맞이해주었다.
독서실 인테리어 공사가 보름이나 딜레이가 됐을 때도 어떻게든 눈물을 꾹꾹 참았다. 사회가 진짜 만만하지 않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며 간신히 오픈하였는데 맙소사, 열흘만에 회원 중 한 명이 코로나 확진이라니. 오픈 빨 제대로 받아 거의 만실이었던 독서실이 그 순간만큼은 원망스러웠다. (feat. 어머니들의 전화 약 100통..) 옆자리에 앉아 밀접접촉자로 분류된 다른 회원은 결국 중간고사 시험을 못 보게 되었고 그제야 참았던 눈물은 펑-하고 터져버렸다.
너무 미안해서. 그리고 너무 억울해서.
아, 힘들다-
표현할 수 있은 감정은 그게 다였다.
신고식 에피소드에 고시원이 빠지면 섭섭하다. 고시원 인수한 지 2주 만에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입실자 한분이 술에 취해 옆 미용실과 스크린골프장의 기물을 파손했다는 내용. 물론 내가 취할 수 있는 액션을 없었지만 경찰서의 전화를 처음 받아본 나는 내 잘못이 아닌데도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 입실자는 다음 달 퇴실을 하며 마무리되었지만 이 정도면 신고식, 아- 너무 찐하다.
옆에서 '다 잘 지나갈 거야, 너무 걱정 마'라고 토닥여준 남편이 없었다면 나는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우리의 상황'에 속상해하며 답 없는 고민에 밤을 새웠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야'
사진 공부를 시작한 남편이 괜찮은 스튜디오 매물을 발견하고 인수를 고민하고 있었다. 스튜디오의 컨디션도, 위치도, 금액도 우리가 원한 조건에 모두 부합했다. 하지만 우리가 원래 세웠던 계획보다는 이른 시점이었기에 남편은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난 꽤 좋은 기회라 생각해 두려움보다는 용기를 가지고 시작해보라고 했다. 결과는? 보수적으로 예상한 매출보다 더 높은 매출을 유지하고 있고, 오픈한 지 한 달 만에 남편은 유료 촬영을 하기도 했다.
'이것 봐, 우린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준비가 잘 되어있었어!'
이 글은 절대 자영업을 찬양하는 글이 아니다. 그 길은 여전히 어렵고 고민이 많다. 다행히 추진력 강한 나와 신중한 성격의 남편이 만나니 뚝딱거리지만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며 어찌어찌 나아가고 있다. 희로애락을 함께 느끼며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고비를 잘 넘기다 보니, 요즘은 부쩍 '우리 많이 컸네'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고 모든 건 지나갈 것이라는 문구를 가슴 깊이 새기고 자주 꺼내보며, 그렇게 버티고 있다.
근데 더 중요한 건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을 함께 하고 있는 게,
"재밌다"
책임감과 성취감. 그 무게는 직장인일 때와 비교도 안되게 무겁지만 생각보다 재밌다. 그 재미를 발견하기까지는 무수히 많은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고 있지만 "재밌다"는 말을 꺼낼 수 있다는 건, 적어도 이 길이 우리에겐 틀리진 않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우린 우리 방식대로 아등바등하며 앞으로도 재밌게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