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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담 Jun 05. 2023

[시를 소개합니다]03. 검은 개 - 홍지호

시적 화자와 시인을 동일시 하면 안 돼요

검은 개

                      - 홍지호


개들에게 물어볼 수 없다 정말 노래 부르고 있는 것인지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앉아서 새가 내는 소리와 공사장에서 공사하는 소리를 듣고 있다


정말 미안한 일이 있었다

어릴 때 생활이 어려워져서


키우던 개를 시골 할머니 댁에 두고 온 적 있었다

할머니는 검은 개를 묶어 키웠다


검은 개가 죽고 나서 나는 대학에 갔다

겁이 많은 아이였다는 것은 최근에 생각났다


검은 개가 죽었다는 것은 전화로 들었다

거믄 개를 두고 올 때 차를 타고 떠나며 일부러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은

최근에 생각났다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던 것도

잊고 있었다는 것도


너를 두고 왔다 겁이 많은 너를 돌아보지 않았다

개가 짖으니까 다른 개들이 같이 짖는다


잊지 않을 거란 말은 거짓말이 된다

가끔씩 생각날 거라는 말은 진심이 된다

나는 순수했던 적 없다는 말도


검은 새가 대신 울어주고 있다는 말은 거짓이 될 수 있다

개들에게는 물어볼 수 없다


아침이라 공사가 재개되었다


간밤에는 정말 미안한 일이 많았다




홍지호 작가님의 책을 읽게 된 건 지인을 통해서였다.


사실 자기 형이 쓴 시집이라고 지인이 선물해준 거였는데,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시들이 많아서 이 시집도 '끝까지 읽었다.' (나는 호불호가 강하고 끈기가 부족해서인지 시집을 끝까지 읽는 게 쉽지 않다.) 그 중 '안국역'이나 '주기', '중보'와 같이 오래 기억에 남는 시들이 많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시들도 많았다.


시집 잘 읽었으니 보답으로 밥 한번 사겠다며 지인을 불러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시인의 의중을 물어볼 기회가 많지 않으니까. 그것도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은 좀 부담되는데 '너네 형은 무슨 의도로 그렇게 쓰셨대'라고 물어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놓칠 수 없었다.


"정말 검은 개를 키웠어?"


정말 되도 않는 질문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게 정말 궁금했었다. 사실 검은 개는 얼룩무늬 코카스패니얼이었다!


그리고 지인은 이 시집을 읽은 할머니께서 갑자기 전화하셔서 '내가 애한테 상처를 준 것 같다'며 어쩔 줄 몰라하시길래 작가분이 웃으며 '이러시면 저 아무것도 못 써요'라고 말했다는 후일담도 들려주었다.


시적 화자랑 나를 동일시해서 시를 쓰게 되면 오히려 자유롭게 쓸 수 없다던 시 쓰기 수업의 선생님 말씀이 그런 얘기였을까. 그럼에도 나는 진짜 작가와 시적 화자의 다른 점을 짚어가는 게 즐거웠던 것 같다.


나는 '검은 개'의 견종 외에도, 시 중에 '형'이라는 시가 있던데 그건 너를 칭하는 건지, 혹은 정말 노래로 백만불을 번 친구가 있는지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시집에 포스트잇까지 붙여가며 하나하나 물어보는 재밌는 경험을 했다. 더불어 다음 시집이 나오면 꼭 주겠다는 다짐도 받아냈다.


강남 한복판에서 김서방 찾듯이 그 친구를 우연히 다시 마주쳤을 때, 곧 형의 두 번째 시집이 나올 것 같다는 좋은 소식을 들려주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그의 형이 썼다던 시집을 다시 꺼내 읽었다.


나는 촌스럽게도 '검은 개'가 얼룩무늬 코카스패니얼이라는 작은 비밀을 내가 안다는 게 내심 뿌듯했다.


(두 번째 시집은 언제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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