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몸을 움직이는 기쁨
한동안 아무 의욕이 없어 '조용한 퇴사'같은 '조용한 잠수'를 했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줄이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 나는 방에 숨었다. 방향을 못 찾는 동안, 그리고 방향을 찾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동안, 나는 계속 방에 숨고, 독서실에 숨고, 도서관 구석 자리에 숨어 들었다. 그런 시간이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동안 운동을 관뒀던 것은, 운동은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듯 했고 그런 허무한, 뭐랄까 불멸의 존재라는 게 공허해서였기도 하다.(너무 거창한가)
몸에 탄력과 살, 근육이 한꺼번에 빠져나갔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살 좀 찌우라고 하지만, 나만 아는 뱃살과 허벅지살이 고민되는 난감한 몸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다시 멈춰뒀던 필라테스를 하며 운동보다 교정에 가까운 몸짓들을 배우고,
5시 20분에 알람을 맞춰놓고 6시 수영을 갔다가 출근을 한다.
그리고 주말에는 클라이밍을 가고, 이번에 제주도로 여행을 가면 오래오래 걸을 생각이다.
수영은 내가 10년이 넘게 해왔던 운동이고, 자유수영을 가면 그럭저럭 할 수 있는 마음 편한 운동이었다. 한 때는 연수반에서도 곧잘 했었고, 군살에 대해서는 '나중에 수영장 가서 한 2주만 고생하면 빠지겠지' 식의 안일한 생각을 하게 했다.
다시 돌아간 수영장에서 힘 없는 팔을 휘저으면서, 자세가 다 흐트러졌다는 걸 깨달았다. 자유형만 해도 정말 평생 배워야 하는 게 수영인 것 같다. 팔을 좀더 앞으로 모으고, 밀 때 힘을 주고, 고개를 너무 들지 말고, 팔을 끝까지 유지하고, 등등 일주일 가량의 시간 동안 동갑내기 강사님의 많은 지도편달을 받았다.
새로 간 그 수영장에는 큰 통창이 있고, 나무가 보인다. 처음 그 수영장을 간 것은 주말 자유수영 일일권을 끊고 간 날이었다. 주말 오후 편안하게 내리는 햇살 속에 천천히 몸을 나아가면 수영장 바닥에 그려지는 물결 무늬가 어여뻤고, 도롱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았고, 나무가 오후의 빛에 빛나는 모습이 좋았다.
리셉션에서 아주머니가 외국인 꼬마와의 통역을 요청해 한참을 도와주다 겨우 들어가서 짧은 시간만 하다 나왔지만 운동이 얼마나 기분좋은 것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고, 씻고 나오니 고맙다는 쪽지와 쿠키 하나가 내게 남겨져 있어, 나는 또 기분이 좋았다.
그런 기분좋음에 취해 덜컥 새벽 수영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그 새벽 수영장에는 내게 몇 살이냐고 물어봐주는 동갑내기 강사분이 계시고, 수영복에도 작은 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멋쟁이 아주머니들과 약간의 서열 다툼을 하는 아저씨들이 있다.(나는 늘 맨 뒤로 가서 그 서열 싸움을 구경하다,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무리로 돌아온다.)
새벽 수영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사실 별로 열심히 안 하는데) 나는 아주 열심히 사는 사람인 것만 같고, 수영장 근처에 하나 둘 불이 켜지는 상점을 신기하게 두리번 거리며 출근을 한다. 사람이 붐비는 한낮의 그곳을 상상하며.
저녁에는 조금 피곤하지만, 아침에는 평소보다 커피가 덜 땡긴다. 배도 덜 고프다.(물을 먹어서인가)
때로 예민해지던 신경도, 하루종일 귓가에 맴도는 듯한 둥그런 물소리로 무뎌지고,
음식이 좀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 같다.(벌써 1kg가...)
우리는 작은 차이에도 얼마나 많은 변화를 느끼는가. 나는 내 발이 컴퍼스와 같다고 생각한다. 한 발 앞으로 나가면, 그 작은 반지름이 원을 그리며 내 영역을 넓힌다고. 한 발 한 발, 작은 차이를 만들고 하루의 변화를 만들어가면 좋겠다.
참, 오늘 인터넷으로 산 수영복이 도착했는데 꽤 이뻤다.
(그 시간대 똑같은 수영복 입은 사람 한 세 명은 본 거 같다는 건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