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자기 형이 쓴 시집이라고 지인이 선물해준 거였는데,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시들이 많아서 이 시집도 '끝까지 읽었다.' (나는 호불호가 강하고 끈기가 부족해서인지 시집을 끝까지 읽는 게 쉽지 않다.) 그 중 '안국역'이나 '주기', '중보'와 같이 오래 기억에 남는 시들이 많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시들도 많았다.
시집 잘 읽었으니 보답으로 밥 한번 사겠다며 지인을 불러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시인의 의중을 물어볼 기회가 많지 않으니까. 그것도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은 좀 부담되는데 '너네 형은 무슨 의도로 그렇게 쓰셨대'라고 물어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놓칠 수 없었다.
"정말 검은 개를 키웠어?"
정말 되도 않는 질문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게 정말 궁금했었다. 사실 검은 개는 얼룩무늬 코카스패니얼이었다!
그리고 지인은 이 시집을 읽은 할머니께서 갑자기 전화하셔서 '내가 애한테 상처를 준 것 같다'며 어쩔 줄 몰라하시길래 작가분이 웃으며 '이러시면 저 아무것도 못 써요'라고 말했다는 후일담도 들려주었다.
시적 화자랑 나를 동일시해서 시를 쓰게 되면 오히려 자유롭게 쓸 수 없다던 시 쓰기 수업의 선생님 말씀이 그런 얘기였을까. 그럼에도 나는 진짜 작가와 시적 화자의 다른 점을 짚어가는 게 즐거웠던 것 같다.
나는 '검은 개'의 견종 외에도, 시 중에 '형'이라는 시가 있던데 그건 너를 칭하는 건지, 혹은 정말 노래로 백만불을 번 친구가 있는지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시집에 포스트잇까지 붙여가며 하나하나 물어보는 재밌는 경험을 했다. 더불어 다음 시집이 나오면 꼭 주겠다는 다짐도 받아냈다.
강남 한복판에서 김서방 찾듯이 그 친구를 우연히 다시 마주쳤을 때,곧 형의 두 번째 시집이 나올 것 같다는 좋은 소식을 들려주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그의 형이 썼다던 시집을 다시 꺼내 읽었다.
나는 촌스럽게도 '검은 개'가 얼룩무늬 코카스패니얼이라는 작은 비밀을 내가 안다는 게 내심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