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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나무 Nov 18. 2024

'도민(馟民)'의 꿈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거란이 고려를 침입했을 당시의 일이다.(거란은 993년부터 1019년에 이르기까지 약 30년동안 고려를 침략했다) 개경에서 멀지 않은 어느 고을에 도민(馟民)이라는 어리지만 총명하고 가난하지만 남다른 기개가 있는, 한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에게 가족이라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신보다 어린 동생 뿐이었지만, 도민은 어려서부터 글공부를 해 관직에 나가고자 하는 학문에 뜻을 두었는데 특히 그는 문학에 능통했으나, 문학과 경전은 주로 귀족과 향리 자제가 주로 응시할 수 있었으므로 실질적으로 그가 응시할 수 있는 과거는 ‘잡과’였다. 이렇게 남다른 기개와 강직한 뜻이 있었으나 그에게는 오직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건강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기관지가 약해 천식을 자주 앓았고 이 때문에 의원이 자주 집에 드나들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신라의 강수(强首) 선생을 흠모하여 그 같은 인물이 되고자 꿈꿨으며, 통일신라의 해상무역으로 이름을 떨친 해상왕 장보고(張保皐)의 기지를 보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다만 어린 도민은 글공부에 대한 꿈과는 별개로 집의 생계를 이어나가야 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주경야독을 일상으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갔다. 당시 고려는 잦은 이민족의 침입으로 많은 하층민이 목숨을 잃거나 다른 곳으로 피난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도민은 어떻게든 생계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아 이곳 저곳으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마침내 그는 당시 군사제도와 역을 분담하는 조운로(뱃길)에서 허드렛일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어린 도민의 뜻과 기지를 무시한 채 배를 타고 임진강 장단나루에서 한강까지 갈 수 있는 체력은 있는지, 어디 출신인지, 그곳에서는 무슨 일을 했는지 캐묻기 시작했다. 그들은 심지어 도민의 부모님의 출신과 집안, 친척들의 벼슬이 무엇인지까지 물었다. 이쯤되면 당신은 그들이 무엇을 우선시하는지 눈치챘는가? 그들이 관심있는 것이라곤 오르지 조운로를 통해 한강까지 가는 ‘긴 여정에 부려먹을 수 있는 머슴’이 필요했던 것이다! 도민은 이에 굴하지 않고 그의 뜻과 의지를 열심히 피력했으나, 그들에게 도민은 그저 ‘쓸모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들은 도민이 나이가 너무 어려서, 경험이 부족해서, 건강이 약해서 라는 부차적인 핑계만 댈 뿐이었다. 이는 마치 조선 말기, 평민이 부과해야 할 군역과 포를 다른 사람에게 부과하고 심지어 벼슬을 사고파는, 한 국가의 징조가 다했음을 증명하는 병폐적인 현상과 매우 흡사했다. 그러나 도민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에게 이런 반응은 그저 일상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경험을 쌓는 것이었다. 그 외에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에서 처음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밑바닥부터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처음부터 높은 벼슬에 오른 사람이 드물 듯, 그는 옛 선조들 또한 많은 시행착오와 역경을 경험한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앞서 도민이 흠모하는 인물이 있었다고 나는 여러분에게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강수(强首) 선생은 7세기에 활동한 신라의 대문장가인데 어릴 적 이름은 ‘두’였다. 그의 아버지는 나마 벼슬에 있던 '석체'(昔諦)로, 어느 날 그의 아내가 꿈에서 뿔 달린 사람을 보았다고 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 아이가 태어났다. 그런데 아이의 머리에 작은 뿔이 있었다. 도깨비가 아닐까 걱정한 그의 아버지는 소문난 어진 노인을 찾아가 꿈이야기를 했고, 노인은 “예로부터 어진 이들은 하나같이 그 생김새가 기괴했다오”라고 답했다. 그제서야 그의 아버지는 아이에게 ‘두’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나라의 큰 인물로 잘 키우리라 다짐했다. 두는 유학에 뜻을 두고 열심히 스승을 찾아다니며 공부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는 어느 경지에 이르렀고, 그를 가르친 스승들은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며 하산하라 했다. 그 무렵, 두는 대장장이의 딸을 사랑하고 있었다. 신분상 많은 벽이 있었으나 당시 두는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대장장이의 딸과 혼인했다. 나중에 그의 아버지는 그가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치자, 집안 규수에 맞는 여자와 혼인할 것을 권했으나,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가난하고 미천한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배우고 실천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줄로 아옵니다. 또한, 옛 성인들도 조강지처는 버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버님의 말에는 따를 수 없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는 잘못했다고 시인했다.  

   

 장보고(張保皐) (?~846년) 역시 통일신라 시대의 인물로, 활을 잘 쏘아 어릴 적 이름은 궁복(弓福) 또는 궁파(弓巴)로 불렸다. 그는 노비출신이었으나 어릴 적부터 당나라로 가겠다는 뜻이 있었다. 결국 그는 당나라로 가 무예로 이름을 떨쳐 무령군 소장에 임명된다. 노예 신분임에도 이런 직책에 임명되었다는 것은 그의 무예 실력이 얼마나 출중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후에 신라 정부에서도 하지 못하는 해적을 소탕하고 지금의 전라남도 완도에 ‘청해진’이라는 진(鎭)을 세운다. 오늘날로 치면 장보고는 세계 무역으로 신라를 국제에 알리고 백성을 보호하는 군사 기지를 세운 것이다. 그의 신분이 노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활의 명사수인 그를 떠올리면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이 떠오른다. 사람의 인생은 비유하자면 어둠과 빛이 공존한다. 어느 때에는 밝은 햇빛처럼 일이 잘 풀리다가도 갑자기 예상치 못한 어둠이 찾아와 우리를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도민’에게는 거란이 고려를 침입한 상황이 그렇고, 가족의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는 현실이 그렇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가고자 애쓰는 그의 모습에서 어떻게든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자 했던 우리 역사의 인물들이 겹쳐 보이며 바로 거기에 가난과 신분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 인물들이 있다.


한국만 그런 것은 아니다. 실례로, 독일의 역사가 에밀 루트비히에디슨의 전구 발명 ‘인류사의 두 번째 불’로 정의한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것은 어떤 점에서 ‘혁명’이었지만, 단순히 “그가 전구를 발명했다”라고 말하기엔 간과된 부분이 너무 많다. 에디슨의 전구 발명은, 에디슨의 혁명, 곧 인류사의 두 번째 불은 백금, 말의 털, 머리카락 등 약 6000가지의 재료로 시행착오를 거쳤기에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그는 1만 가지의 시도 끝에 대나무 섬유를 이용한, 40시간 이상 빛을 내는 백열 전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따라서 우리 또한 에디슨이 시도한 그의 정직한 땀방울과 끈기를 좇다 보면 우리가 원하는 곳에 다다르진 못하더라도 빙그레 웃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인내는 시간 없이 이룰 수 없다. 그러나 시간 또한 인내의 과정 속에 틈틈이 스며들어 살고 있는 것이다. 둘은 비유컨대 자전거의 두 바퀴와 같고,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하는 관계인 것이다. 이 공생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간다고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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