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레슨을 통해 얻은 Lesson을 위한 개입의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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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Lee

‘개입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건 마치 음악에서 크레센도(점점 더 크게)와 디크레센도(점점 작게)를 연습하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엔 그 차이가 너무나 미미하여 듣는 사람으로써 알아차리기 힘들다. 하지만 더 작고 더 큰 부분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스펙트럼은 넓어지고 이것이 조절 가능하다는 것은 많은 연습과 경험이 동반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관계에서 여유란 이런 것이기 때문에 크고 작은 사고들이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관계에 있어서 시간과 에너지를 중요한 컨텐츠라고 손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절대적으로 한정적이고 에너지는 상대적으로 한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면에서 시간과 에너지의 허락 하에 모든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말을 하고 싶다. 마치 결혼식 주례사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건강과 양보를 강조하듯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경험해보기전까진 와 닿지 않는 그런 말이 되겠다.


개인이 필요한 정보를 알아서 찾아주는 웹 3.0시대에 큐레이션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개인의 행복을 위한 길을 모색하는 방법이 다양해졌고 그만큼 어떤 의미에서의 개인화는 이 전에는 없었던 단절을 동반할 것이다. 메타버스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나 또한 시공간을 초월하는 메타버스의 매력을 익히 알고 있지만, 카카오톡 채널로 구독중인 채널의 메타버스형 광고메세지가 올 때 가슴 한편에 이런 메타버스의 환승에 합류하지 못하는 사람은 메시지가 와도 합승하지 못하겠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크게 자리잡기도 하였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모두가 원하는 큐레이션 속에는 분명한 ‘개입의 정도’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없는 세상속에서 나 혼자 산다는 것이 의미 없다는 것 또한 와 닿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지쳐 있고 조절이 가능한 공간속에 살고 싶어한다. 나는 이러한 쉼의 갈망이 더욱 ‘니치’하게 자리잡은 형태가 메타버스라고 생각한다. 복사판 디즈니 비디오를 시청 뒤에, 나는 심즈 오리지널부터 해리포터 게임까지 다양한 형태의 메타버스 세계를 즐겼지만 왠지 요즘은 세상 팬인 브루노마스의 ‘Leave the door open’이라는 노래가 제일 와 닿는다. 미너멀하고 큐레이티드된 세상속에서 분명이 새롭게 태어날 소중한 어떤 것을 위해 평생 완성되지 않을 개입의 정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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