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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솔 깨부맘 Feb 21. 2023

부정적 감정도 내 감정이다

감정의 키를 ‘나 자신’이 움켜쥐는 용기

  “에이~ 뭘 그렇게 생각해~” “너무 예민한 거 아냐?” “그건 아니지” 이런 말을 들을 때 문득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곤 한다. 부정적인 감정에도 각자의 이유가 있다. 좋고 나쁨이 아닌 해결해야 될 과제일 뿐이다.


  1남 2녀에 둘째인 나는 어려서부터 참고 양보하는 것에 익숙하다. 둘째는 자라는 동안 많은 양보가 필요한 위치였다. 생존을 위해 터득한 방식이어서 차별받는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달갑지 않다. 무의식적으로 불평이 올라오고 서운함을 느끼곤 한다.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연기한다.


  “싫어?”


  이 한마디가 사람을 움찔하게 만든다. 사람은 누구나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이 드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어떤 행동으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말이다.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이 들면 왜 그것이 내 마음에 생겼는지 쳐다보기보다 얼른 감추려 한다. 누군가에게 들키기 전에 마치 ‘나는 그런 적 없었다’는 듯이.


  왜 부정적인 감정은 거부하게 되는 것일까? 부정적인 감정을 대면하는 것은 힘이 든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힘들여 대면할 여력이 없기도 하다.




  “말 한대로 된다!” “생각한 대로 된다!”


  어려서 주변사람들에 의해 이 말을 듣고는 했다. 그 경우는 대부분이 나쁜 상황이었을 때였다. 그래서 나에게 이 문장은 ‘나쁜 말은 말 한대로 된다’는 의미가 되었다.


  요즘 사람들이 들으면 이해 안 될 테지만 같은 시절을 살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어린 시절 1980년대에는 “나쁜 말 하면 아무도 모르게 잡아간다”는 말을 듣고 자랐었다. 이유도 몰랐지만 매우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하는 어른의 표정에 겁을 먹었었다.


  2002년 월드컵 때, “꿈은 이루어진다.” 응원이 정말 기억에 남는 이유도 그래서다. 나에게는 나쁜 표현에 사용하는 것으로 인식되던 말인지라 저렇게도 쓰인다니 색다른 느낌이었다. 좋은 상황 속에서 이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나쁜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주고 싶었던 것일 테다. 주변에서 듣기만 한 나조차 나쁜 말로 인식이 되어버렸는데 당사자였던 그 누군가는 오죽했을까. 좋은 쪽으로 이끌어주고 싶었던 마음에서 한 것인지, 정말 겁주려고 한 것인지 나는 모른다. 결과적으로 두려움만 심어주었다는 것은 알겠다.


  두려움으로 인식된 이 말은 나에게 나쁜 말을 하거나 나쁜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것이 되었다. 그 나쁜 것에는 통상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들이 속해졌다.

나쁜 사건이 일어날까 봐 무서웠고, 나를 싫어할까 봐 무서웠고, 죽을까 봐 무서웠고, 실패할까 봐 무서웠고, 소중한 사람이 떠나갈까 봐 두려웠고, 아플까 봐 무서웠다. 


  두려워하던 나의 무의식은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조심하고 긴장시켰다. 그 긴장은 편안할 때조차도 긴장모드를 실행됐고, 긴장해야 할 때는 초긴장모드를 만들었다. 초긴장모드 상태일 때는 머리도 몸도 굳어버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며 실수를 초래하게 했다. 그로 인해 또 긴장을 했다. 선순환이 아니라 악순환이 지속됐다.


  내게 이완이 필요한 상태인 것을 인지 못했던 것이다. 또, 두려움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전환해야 한다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두려움에 맞서서 이겨내지 못하면 약한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았다. 의지가 약한 사람 되는 것 같았고, 이런 나를 들켜 나를 무시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한 채 회사를 다녔다. 회사의 화장실은 주저앉아 사용하는 옛날방식의 좌변기였다. 만삭의 몸으로 회사를 다녔는데 화장실은 곤욕스러운 부분이었다. 그래서 애써 화장실을 덜 가도록 물을 적게 마시게 되었다. 


  또, 일의 특성상 야근은 아무것도 아니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다. 게다가 임신한 여성을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지금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던 때였다. 직장 상사는 이미 내가 육아휴직을 쓰기 전에 마음을 먹고 행동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유 없는 갈굼과 폭언으로 하혈하며 응급실을 가기도 했다.


  출산 후 육아휴직으로 잠시 회사를 떠났다가 복귀했다. 본격적으로 갈굼과 버티지 말고 나가라는 상황이 주어졌다. 내가 해왔던 일이 아닌 분야의 일을 뜬금없이 요구하며 능력이 부족하다고 갈궜고, 결혼 전보다 나의 행동반경을 옥죄여왔다. 게다가 급여를 늦게 주는 경우가 생기고, 급여를 낮추기까지 하였다. 사회 통념이라 생각하고 묵시한 탓일까? 싫은 말 하지 않고 따른 탓일까?


  그때 당시 유부녀에 출산을 한 여직원의 경우는 회사에서 싫어하는 유형에 속했다. 그래서 여러 방법으로 자진해서 나가도록 하는 일이 알게 모르게 일어났다. 그 일을 나도 겪은 것이다.


  직장 상사 한 명은 나보다 뒤늦게 들어온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나를 내쫓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유부녀로 애 있는 상태에 갈 수 있는 곳이 있을까? 불가능하겠지?’ ‘일부러 고생해서 전문직으로 바꿨는데. 뭐야. 여자라서 달라지는 게 없는 거야?’ 화도 났고, 슬펐고, 불안했다.

부정적인 감정이 내 마음을 잠식하니 우울감이 심해져 나를 집어삼키려 했다.


  퇴사를 어렵게 결정했다. 퇴사 후 신랑에게 이야기했다. 우울증 약을 한 달 간만이라도 먹고 이 위기를 넘겨야겠다고.




  나는 내가 하는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 말, 행동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두려워 오히려 잠식이 되어버렸던 순간이었다. 부정적인 감정이 무엇인지 대면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만약에 내게 든 부정적인 감정을 들춰보며 ‘자의에 의한 퇴사가 아니라도 퇴사를 하게 된다면 그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해보고 싶은가?’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이 무엇인가?’ ‘그 감정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직을 할 것인가?’ ‘어떻게든 버틸 것인가?’ ‘퇴사하고 육아에 전념할 것인가?’ 


  만일 내게서 답을 찾았다면 우울증으로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내 삶의 키를 내가 아닌 다른 이에게 주고 있었다는 것을 이젠 알게 되었다. 부정적인 감정도 내 것이다. 분명 내 안에서 그 감정이 든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직면해야 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나에게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있구나’ 내게 필요한 뭔가 있음을 받아들이고, 과제를 해결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감정은 좋고 나쁨의 평가 대상이 아니다. 감정을 평가하지 않고, 직면 과제로 해결하며 내 감정의 키를 ‘나 자신’이 움켜쥐는 용기를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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