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관한 이야기(1)
<할 말 많은 편지>는 서로를 돌보고 싶은 두 20대 여성의 다정한 시선을 담아낸 교환 편지입니다. 다섯 번째 주제는 ‘불안’입니다.
안녕하세요 사하님, 키키예요.
다사다난했던 2022년이 지나고, 새해가 찾아왔네요. 부디 올해는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하는데… 가스 요금 인상부터 국민연금 고갈 위기까지, 힘겨운 소식들이 밀물처럼 떠밀려 오네요. 기나긴 경제 침체를 향한 우려가 결국은 제 현실이 됐습니다. 파프리카 2개에 5천 원인 걸 보고 나서는 파프리카를 사지 않게 됐고요, 애호박 1개에 2,000원인 걸 보면서는 요리에 넣는 애호박 양을 더 줄이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하루 세끼에서 두 끼로 식사량을 줄이기도 했고요(사실 이건 저의 일상 패턴 탓이 크지만요).
20대 후반의 또래 친구들과 먹고사는 문제를 이야기하다 보면, 부모님의 퇴직 소식도 종종 들려요. 저번 주에 만난 친구 A의 아버지는 최근에 명예퇴직을 했는데,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또 B라는 친구의 아버지는 업무 특성상 회사에서 스케줄이 나오면 출근하시는데, 코로나로 업계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회사를 나가지 않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고 해요. 지금은 사실상 퇴직 직전이라고 하고요. 자식이 독립했다면 부모님 입장에서는 그나마 다행일 텐데, 안타깝게도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또래 친구들 중에는 무직 상태인 경우가 많아요. 경제 불황으로 인한 취업난과 우리 세대 부모님의 퇴직 소식은 술자리에서 흔한 이야깃거리가 되었죠.
이렇듯 먹고사는 문제가 삐걱대기 시작하면서, 제 일상 전반에는 불안이 빠르게 스며들었어요. 저는 소위 말하는 ‘N잡러’인데요. 고정수입이 있고 일하는 시간이 규칙적인 직장인과 달리, 저는 무소속 노동자라서 일과 삶이 뒤엉켜 있고 수입도 들쭉날쭉 해요. 불안이 디폴트인 삶인 거죠. 저만의 업을 찾고 싶어서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시기가 시기인지라 실패하면 진짜 큰일 나는 거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듭니다.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시대잖아요. 내가 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높은 확률로 넘어질 것 같은데 바닥은 너무 차갑고 딱딱해 보여요. 하나에 진득하기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자니 도태되는 거 같아 무섭습니다. 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늘 손톱 주변이 피로 물든답니다.
그런데 저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더라고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먹고사는 얘기를 하다 보면 빠짐없이 불안과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나와요. 너도 나도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 정신과를 다니며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죠. 숨이 가쁘고, 식은땀이 나는 공황 증세를 느꼈다는 경험담은 흔할 정도고요.
사하님, 제가 이 아득한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저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너무나도 싫었어요. 어떻게 해서든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계속해서 저 자신을 채찍질했죠.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하자’라는 생각으로 중국어를 배우고, 영상편집을 배우고, 인스타툰도 배우고… 소위 말하는 자기계발에 한동안 미쳐있었어요. 그런 저를 오랫동안 묵묵히 지켜본 지인이 한 분 계셨는데, 어느 날은 그분이 넌지시 이런 말을 하더군요.
“키키 님, 불안은 없앨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살아있는 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존재하고 욕망하는 우리에게 불안은 마치 공기 같은 거예요. 어쩌면 우리는 불안감을 없애는 법보다 그걸 품에 안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될지도 몰라요.”
사실 알고 있었어요. 불안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그저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걸요. 하지만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마음으로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불안감에 의연해지는 게 어디 쉬운 가요. 그럼에도 지인이 제게 건네준 말은 그 힘이 강했어요. 불안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됐거든요. 나를 좀먹는, 내 마음을 갉아먹는 감정이 아니라 어쩌면 못 보던 무언가를 발견하게 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을 갖게 됐죠.
한창 불안감에 시달렸을 때, 2달 동안 질문 다이어리를 쓴 적이 있어요.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8시까지, 두 시간 동안 명상을 하고 글도 쓰고 책을 읽었죠. 그중 “지금 당신이 가장 불안해하는 것, 두려워하는 것은?”이라는 질문이 기억에 남는데요. 저는 실패할까 봐 불안하고 두렵다고 답했어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 거 같아서. 하고 싶다거나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하는 것들이 철부지 없고 소꿉장난처럼 느껴지는 거 같아서 속상하다고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실패한다는 게 뭐지?’
‘어디까지가 실패일까?’, ‘나는 무엇으로 실패인지 아닌지를 판단할까?’ 남들을 바라볼 땐 실패에 대한 기준이 엄청 관대해지거든요. 필라테스를 일주일 다니고 포기했다거나, 블로그를 3일 정도 쓰다가 말았다거나. 친구들이 이런 얘기를 하면 “그래도 시도했다는 게 어디야. 멋있다”라고 말해요. 남들이 털어놓는 실패에는 박수쳐주고 좋은 시도였다고 칭찬해주면서, 정작 저는 저 자신에게 높은 잣대를 세우고 있더라고요.
지금까지 제가 포기했던 일들,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끄집어내어 이런 말을 덧붙여 주었어요.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는 게 힘들어서 포기했다고? 잠 많은 너한테 오히려 안 맞는 루틴일 수 있어 오히려 잘했어.”
“배드민턴을 1년 쳤다가 쉬고 있다고? 1년이나 한 게 어디야 잘하기만 했구먼!”
“독립출판을 하겠다고 떵떵거렸다가 지금은 글도 안 쓰고 있다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인간미 넘치고 좋다!”
여기서는 한 줄로 쓰긴 했지만, 실제로는 왜 제가 포기하게 됐는지 그 과정을 세세하게 적었어요. 결과가 아닌 과정에 초점을 맞춰서 쓰다 보니 ‘이런 사정이 있었는데 왜 나는 포기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지?’ 싶어서 의아해지더라고요.
왜 그럴 때 있잖아요, 일기를 쓰다 보면 마치 활자에 담긴 말이 남일처럼 느껴지는 거. 질문에 따라 내 생각과 감정을 적다 보니, 내면에 자리하던 막연한 감정들이 구체적으로 보이더라고요. 그렇게 두 달 동안 질문 다이어리를 썼는데, 신기하게도 막상 적고 나니까 다시 하고 싶다는 의욕이 샘솟았어요. ‘생각보다 별 거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예전에는 불안해질 때마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바쁘게 살았는데요. 요즘은 불안한 마음이 불현듯 들면, 심리상담사처럼 나를 대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뭘 보고 듣고 느꼈길래 이런 감정이 드는 거지?’하면서 지난 일상을 돌아보는 거죠. 그런 점에서 참으로 지긋지긋하다가도.. 어떤 면에서는 감사하기도 한 게 불안이라는 감정 같아요.
저는 결심했어요. 내가 남들을 보는 만큼 나를 봐주기로, 또 어떤 감정이 밀려오는 그 순간에 충실하겠다고, 내가 나 자신의 심리상담사가 되어주자고요. 생각만큼 쉽지는 않지만, 사하에게 보내는 편지를 막 완성한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정말 기뻐요!
2023년 1월 28일 토요일
편지를 완성하는 기쁨을 느끼게 해 준 사하에게 감사를 보내며,
키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