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를 떠난 지 6년 만에 이스탄불에 갈 기회가 생겼다.
늘 사람에겐 가장 마지막 인상이 그 대상의 기억으로 남게 마련이다.
이스탄불은, 건조하고 심심한 내륙의 도시 앙카라의 살며 가끔 출장을 가거나 주말 짧은 일정으로 바람 쏘이러 가서 숨통을 트이던 곳이지만, 사실 이스탄불이 가진 자산은 그런 바람 쏘이기 용도보다 훨씬 큰 것이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낀 천하제일 풍경을 제공하던 톱카프 궁전이며, 오스만 제국 마지막의 처연한 아름다움을 가진 돌마바흐체 궁전이며, 그 유명한 아야 소피아 성당(몇 년 전 에르도안 대통령의 결정으로 다시 이슬람 사원이 되었지만..)까지, 기독교 하에서든 이슬람교 하에서든 천년이 넘는 영광의 역사가 만든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가진 아주 특별한 도시가 바로 이스탄불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달라지듯, 이번 이스탄불 여행에서 내가 기대 이상으로 기쁘고 흥분되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화창한 여름 날씨와 대도시가 가진 에너지 덕분이었다. 돌마바흐체는, 12월의 스산함의 기억을 품고 돌아왔지만, 웬걸, 다시 보니 여긴 완연히 피어난 커다란 붉은 장미며 녹색에 가까운 분수대의 물, 모래색 궁전 건물벽과 새파란 보스포루스의 바다색이 쨍한 햇빛 아래 원색으로 빛나는 밝은 여름의 궁전이었다.
1500만 인구의 도시가 갖고 있는 에너지는 또 어떻고. "이스탄불은 아름다운 유적이 정말 많지만 정작 교통체증 때문에 그 유적지들을 돌아다닐 수가 없다."라는 한탄 섞인 현지인들의 푸념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차량의 행렬과 거리마다 넘쳐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교통체증이란 걸 거의 느낄 수 없는 작고 조용한 브뤼셀에서 온 내게는 오히려 인간사는 모습의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 에너지였다. 아마 서울에서 왔더라면 이 풍경마저 익숙했겠지만, 글쎄, 차가 막혀도 왼쪽으로 아야 소피아, 오른쪽으로 탁 트인 해협이 펼쳐지는 이런 풍경이라면, 여전히 탄성의 대상이었을 것 같다.
이스탄불의 둘째 날, 보스포루스를 끼고 바닷가에 위치한 츠라한 팰리스 캠핀스키의 카페에 앉아있다. 호텔은 으리으리하고, 폭락한 리라화와 암담한 터키 경제상황과는 관계없이 하룻밤에 5백 유로씩을 받고도 번성하는, 국제적인 장소인 듯하다. 카페에는 온통 외국인들이 가득하다. 내 테이블을 잡고 아이랑 케이크 하나 커피 한잔 시켜놓고 망중한에 빠지려는 그 찰나, 바로 앞 테이블에 앉은 잘 차려입은 유럽 노부부와 그 맞은편 테이블에 친구 사이로 보이는 부유한 터키 중년 아주머니 두 분이서 열심히 푸틴이 저질러 놓은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중임을 발견했다. 대충 예상할 수 있는 바대로, 유럽인 노부부는 푸틴이 저지른 잔혹한 행위와 그로 인한 유가상승 등 여러 가지 경제적 충격을 비판하는 쪽이었다면 터키 아주머니들은 그에 어느 정도 동조는 하면서도 전쟁을 벌인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약간의 수긍의 느낌도 보이며 응수를 하고 있다. 마치 서방 지도자들이 단결하여 푸틴과 러시아 정부에 제재를 가하는 데 비해, 터키는 대러제재에 소극적이고 그 덕분에 다른 서방 국가에 가지 못하는 러시아 재벌들이 오히려 이스탄불로 몰려드는 웃지 못할 사태가 만들어지고 있는 현실을 이들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게 하는 장면이다.
아닌 게 아니라, 시리아에서 넘어오는 난민들이 일자리와 경제활동을 찾아 이스탄불로 몰려들며 이스탄불 유럽지구는 과거보다 더 많은 중동 사람들로 가득 차 현지인들이 밀려나고 있다더니, 러시아 사람들까지 더해져 이래저래 이스탄불은 원래도 그랬지만 오늘날엔 더욱더, 국제적인 도시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이번 여행에서 재회한 내 터키 친구 투바는 그래서 아시아 대륙과 유럽 대륙에 땅이 걸쳐진 이스탄불에서 서쪽 유럽 지구는 과거보다 너무 혼잡해져서 싫다는 이야기를 한다. 뭐, 서울 사람들이 한때, 명동에 몰르든 중국인들로 상점이든 면세점이든 제대로 쇼핑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불평하던 그때의 장면을 보는듯하다.
셋째 날, 이곳에 오면 반드시 들르는 아야 소피아와 술탄아흐멧 모스크가 위치해, 언제나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술탄 아흐멧 광장에 오랜만에 가본다. 이제는 코로나의 여파는 어디로 사라진 듯, 광장은 전 세계에서 모여든 여행객들과 깃발 든 가이드 뒤로 수십 명이 따라다니는 단체여행자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예전의 모습을 완전히 회복한 상태다.
내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몇 년 전의 나는 술탄아흐멧의 관광명소를 보는데 집중했다면, 이젠 나름 2년을 거주한 자의 여유를 갖고, 가장 번화한 골목의 뒤편을 어슬렁거릴 줄 알게 되었다는 것. 이 복잡한 광장을 조금만 비껴 나면 마치 비밀의 정원처럼 터키식 하맘을 즐길 수 있는 부띠크 호텔들이 있다. 터키 하맘은 우리나라 대중목욕탕과 비슷한데 다른 점이라면, 바닥이 오스만 시대의 전통대로 대리석이라는 것, 그리고 몸을 다 노출하지 않는 이슬람 문화의 영향으로 목묙중에도 수영복을 입고 하맘에 들어간다는 정도. 오랜만에 하맘에서 때도 밀고 누워서 뜨거운 물을 끼얹으니 몸이 후끈해지며 개운하다. 그리고 옆 수영장으로 옮겨가서 수영도 하고. 수영을 마치고 나오니 27도 정도의 완벽한 온도에 선선한 바람이 불고, 이슬람 양식의 대리석으로 된 분수대에서 물이 졸졸 흘러나오는 광장에 호텔에 딸린 카페가 차려져 있다. 한참을 앉아 이 대도시의 가장 번화한 도시 뒷골목의 여유를 흠뻑 들이마신다. 이렇게 조용하고 한적한 공간이 있다는 건, 늘 현지에 사는 친구들이 있을 때만 알 수 있는 커다란 행운이다. 얼마나 많은 여행지에서, 우리는 그 도시의 대표적 명소만 보고 떠나가고 있었을까. 정말 인연이 되어야만, 그 도시의 속살을 제대로 느끼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 날, 보스포루스 2 대교가 보이는 바닷가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간다. 언뜻 생각하면 굉장히 비쌀 것 같지만, 사실 터키 물가와 약세인 리라화 때문에, 구운 생선과 샐러드, 애피타이저, 음료까지 시켜도, 서울에서 좋은 식당에서 둘이 저녁 먹는 정도의 가격으로 해결할 수 있다. 거기다 바다를 건너 아시아 지구가 보이고, 바다를 가로지르는 보스 포러 2 대교의 장관을 보면서 먹는 저녁이란.
우리나라의 한강에 비하자면 우리 역시 한강을 둘러싼 강변에 고급 주택과 상업지역들이 번성한데 보스포루스는 강이 아닌 바다를 끼고 그런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다는 것, 그리고 한강보다 훨씬 그 반경이 넓고, 이 넓은 해협에 시내 쪽에는 다리가 2배밖에 없어, 시야를 가리는 구조물이 더 적다는 차이도 있다. 이런 명소이니,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의 옛 이름으로, 오스만 제국에 정복당하기 전 비잔틴 제국의 수도)을 놓고 수많은 공방전이 벌어졌을 것이고, 오스만 제국 당시에도 가장 좋은 별장들이 해협을 따라 만들어지고, 이곳의 교역을 도맡았던 베니스 상인들 또한 번성했던 것이리라. 유럽의 동쪽 끝과 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 걸쳐진, 그리고 흑해와 에게해가 만나는 두 바다의 교차 지점에 위치한 이스탄불은, 아마 언제까지나 독특한 지리적, 역사적 위상으로 인해 매력을 잃지 않는 국제도시로 남아있을 것 같다.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까지 내려쬐어주었던 5월 말의 강렬한 햇빛. 햇살이 강렬하지만 습하지 않아서 그늘에만 들어가면 선선했던 이 며칠은, 마치 긴 겨울과 쌀쌀했던 서유럽의 봄을 지나오며 아직 몸 구석구석에 남아 있던 차가운 기운을 날려버리고 따뜻하게 채우는 느낌이었다.
마지막 날, 작년에 문을 연 이스탄불 신공항을 통해 유럽으로 돌아간다. 인천공항을 지었던 건설회사가 설계해서 그런지 인천공항을 물씬 연상하게 하는 모습의 멋진 새 공항. 다시 3시간을 날아가면 나는 다시 유럽의 서쪽 끝, 벨기에로 가겠지. 세계는 묘하게 닮아 있고, 내가 사는 곳에서 조금씩 동쪽으로 가면 내가 아는 아시아와 조금씩 닮아가고, 서쪽으로 올수록 이질감이 더해지는 이 당연하고도 놀라운 경험은, 서양과 동양의 존재, 그리고 여행을 통해 익숙함과 낯섦을 넘나들 수 있다는 감사함을 되새기게 한다.
이제 이스탄불 여행이 가져다준 따뜻한 에너지로, 나는 다시 유럽의 작은 도시에서 또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여전히 나는 이곳에서 많이 이질적인 존재이지만, 이스탄불이 안겨준 익숙함과 편안함을 맛보고 와서인지, 나는 다시 많이 힘이 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