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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연 Jun 22. 2023

유년의 뜰2

과거의 밤






어린 시절 나는 여러 차례 버려졌다. 

내 기억 속 그날이 정확히 몇 번째인지 모르나 아마 첫 번째로 부모에게서 버려진 날인 것 같다. 

당시 학교를 다니지 않던 어린 내가 제일 먼저 할머니 집으로 버려졌다. 

어떻게 누구와 할머니 집에 왔는지 머리를 헤집어 보아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언제 잠이 들었는지 단잠에서 막 깨어났을 때가 기억의 시작이다. 




낯선 집이 두려웠다. 

눈주위 덕지덕지 달라붙은 잠을 겨우 떨쳐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둠 깔린 방안. 사람의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냉한 그 방이 소름끼쳤다.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며 어서 빨리 어둠에 눈이 적응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미세하게 보이는 물체들이 도깨비 같기도, 망태기 할아버지 같기도 했다. 

간담이 서늘했다. 

두려움 섞인 목소리로 할머니를 불러보았다. 

대답 없는 적막과 고요는 나를 공포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언니 이름을 불렀다. 

돌아오지 않는 대답을 한참동안 기다렸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 질 것 같았다. 

어둠에 삼켜질 것 같은 공포감이 나를 휘감았다. 

목을 옥죄는 울음을 계속해 삼켜댔다. 

서늘한 방안 공기에 온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할머니 집에 온 게 맞는 걸까',' 다른 곳에 버려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소리는 빈방 가득 울려 퍼졌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 누구라도 만나야 이 공포가 가실 것 같았다. 

힘 풀린 다리를 끌고 눈앞 창호지 문을 향해 기었다. 

어떻게든 어둠에서, 이 공간에서 도망쳐야했다. 

두 발짝 걸음이면 갈 수 있는 문 앞까지 가는데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겨우 문고리를 잡은 나는 납치라도 당한 사람마냥 문을 밀쳐내고 맨발로 밖을 향해 뛰었다. 

캄캄한 밤인 줄 알았던 밖은 훤한 대낮이었다. 

안도의 숨이 흘렀지만 눈물은 멈출 생각을 안했다. 


저 멀리 할머니가 보였다. 

단숨에 할머니 곁으로 달려갔다. 

헐떡대는 숨과 눈물 때문에 무섭다는 말도 내뱉지 못한 채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할머니 옆에 쪼그려 앉아 빽빽 울어 댔다. 

가시지 않은 어둠에 대한 공포를, 낯선 곳에 홀로 남겨져 울고 있는 가여운 나를 달래주길 바랬다. 

하지만 그런 내가 가엽지도 않은지 눈길한번 주지 않는 할머니가 미워 더 소리 내 울었다. 




해가 떨어지고 밤이 돼서도 내 울음은 잦아들지 않았다. 

어두운 시골의 밤. 그것도 어린 내가 혼자 감당해 낼 리 없었다. 

저녁도 고사하고 언니한테 전화 해 달라 성화를 부리는 통에 할머니는 수화기를 들었다. 

통화음이 들리자 침이 한방울 꼴깍 넘어갔다. 


‘나연아’ 


언니의 목소리가 들리자 또다시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제야 무섭다, 언제 오냐, 혼자 자기 싫다 등 어리광을 부려댔다. 

큰언니와 작은언니는 번갈아 전화를 받아가며 치기어린 동생의 투정을 받아 주었다. 

할머니 집으로 버려지기 전 두려운 마음이었을텐데도 울음소리가 가여웠는지 열밤 자고 갈 테니 울지 말라며 언니들은 어린 나를 다독이기 바빴다.

짧은 통화 덕에 마음이 진정되자 할머니가 차려놓은 밥상이 눈에 들어왔다. 

낮부터 울어댄 탓에 기력이 지칠 대로 지쳤는지 눈물, 콧물 적셔가며 먹는 밥이 목구멍으로 잘도 넘어갔다. 


며칠 눈물의 밤을 보내고 난 끝에 언니들이 할머니 집으로 버려졌다. 

언니들이 왔다는 사실에 그저 좋았다. 

언니들이 온 날 밤. 

큰언니와 작은 언니를 양쪽에 끼고 가만히 온기를 느꼈다. 

그럼에도 불 꺼진 방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은 여전히 나에게 공포였다. 

돌아누워 있는 언니들을 어깻죽지로 살살 흔들었다.  

‘훌쩍’하는 소리와 함께 나를 바라본 언니들의 눈엔 어둠의 공포가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이제 우리를 찾아줄 이가 없다는 사실을 철든 언니들은 이미 알고 있었으리라. 


돌아갈 곳이 없다. 

버려졌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아무도 우릴 찾지 않는다는 슬픈 현실을 느끼며 어린 세 자매는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밤새 울었다. 

손에 손을 잡고 누구하나 놓칠세라 두려움에 떨어가며 우리는 겨우겨우 잠이 들었다. 




해가 저무는 시간이 달갑지 않았다. 

시골의 해는 빨리도 자취를 감췄다. 

슬그머니 달이 얼굴을 내밀 쯤이면 눈물이 앞을 가리기 시작했다. 

어둠은 자꾸만 나를 불안 속으로 밀어 넣었다. 

언니들이 옆에 있다는 사실을 위로 삼아 겨우 시골의 밤을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억지로 청한 잠은 새벽이면 나를 깨워댔다. 


어느날 새벽이었다.

잠결에 습관처럼 언니들의 존재를 확인하던 내 손길에 공허함이 느껴지자 번뜩 잠이 달아났다.

떠지지 않는 눈을 두 손으로 마구 비벼 남아있는 잠을 떨쳐내 겨우 눈을 떴다.

캄캄한 방안에는 할머니와 나 단 둘뿐임을 알게 되었다.


'언니들이 왔던 게 꿈이었나'

'난 혼자 인건가'

'언니들이 날 두고 어디 가버린건가'

'또 다시 나는 버려진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하자 공포는 순식간에 나를 집어 삼켰다. 

잠든 할머니 옷자락을 부여잡고 악을 쓰며 울었다. 

나의 울음소리에 집 밖 화장실을 다녀오던 언니들이 달려왔다. 

등을 두드리며 울지 말란 손길에도 눈물은 쉽사리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후 잠이란 행위는 나에게 불신을 갖게 했다. 

잠들었다 일어나면 아무도 내 옆에 없을 거란 생각. 

혼자 남게 될 거라는 두려움에 편히 잠들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성인이 되어서도 자다 깨다를 수없이 반복하며 옆에 사람이 있는지 강박적으로 확인하곤 했다. 

그러다 혼자 눈 뜬 날이면 두려움과 설움에 휩싸여 이불에 얼굴을 묻고 울어댔다. 

혼자 버려진 날의 감정이 자꾸만 나를 겁쟁이로 만들었다. 

잠들 수 없게 만들었다. 

밤을 싫어하게 만들었다. 

잠은 그저 타인들과 일상을 맞추기 위한 행위였을 뿐 내게 숙면이라는 안락함을 알려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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