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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연 Jun 09. 2023

유년의 뜰1

현재의 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녹초가 된 몸으로 대문 앞에 섰다. 

손가락에 힘을 넣어 도어락을 밀어 올린다. 비밀번호를 힘겹게 누르고 문을 연다. 

집이 어둡다. 

온기 없는 집을 느끼고 나서야 남편의 숙직날 임을 깨닫는다. 정적이 감도는 집은 서늘하다. 

서둘러 TV리모컨을 찾아 전원을 켠다. 

웃음소리 가득한 채널로 고정해두고 사람의 기척을 채워본다. 

스피커 밖으로 흘러나오는 타인의 목소리마저 다행스럽다. 

그래도 허한 마음에 휴대폰을 들어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흐르는 통화음소리가 왠지 길게 느껴진다. 


‘여보세요?’ 


남편의 목소리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러고는 괜히 별일 없던 오늘 일과를 이야기한다. 조잘대는 소리에 정성스레 통화를 해주는 남편이 고맙다. 하지만 일과를 마치지 못한 남편은 일하러 가야한다는 말을 건넨다. 

조심히 일하라며 통화를 끊고는 아쉬운 마음에 휴대폰 속 연락처를 훑어본다. 


‘이야기할 사람이 없나?’


아래에서 위로 움직이던 엄지손가락의 움직임이 멈춘다. 

자정을 향해가는 늦은 시간에 전화를 달갑게 받아줄 리는 만무하다. 엉거주춤 소파에서 일어난다. 

통화를 위해 줄여둔 TV볼륨을 다시 높인다. 집안 가득 냉기가 돈다. 

보일러 스위치를 조절해 방 온도를 높게 올린다. 인위적인 따스함이라도 필요했다. 

방안 온도가 올라가길 기다리며 욕실로 들어가 더운 물에 몸을 데운다. 

뜨거운 물줄기가 몸을 타고 흐르면 그제야 나른한 기분을 느낀다. 긴장이 풀린다. 

한껏 데워진 몸의 온기가 달아날까 얼른 수건을 두른다. 

방안으로 들어가 몸에 남은 물기를 무시한 채 여름이 다가오는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기모가 달린 수면 바지와 양말로 온몸을 꽁꽁 감싼다. 열기가 내 몸에서 빠져 나가길 바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외로움이 나를 둘러 감싼다. 씁쓸해진 마음을 견디기엔 밤은 너무 길다. 

씻기 전 미리 켜둔 온수매트로 곧장 들어간다. 일찌감치 잠을 청하는 게 좋을 듯하다. 

집안 곳곳에 켜진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와 덮는다. 

어두워진 방안은 크기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리 넓지 않은 침대도 혼자 누우니 태평양처럼 넓게 느껴진다.

몸을 뒤척여 잠들기 좋은 자세를 찾는다. 이리저리 몸뚱이를 굴려도 낯선 방에 누운 듯 마음이 편치 않다. 

남편과 잠든 시간보다 혼자 잠든 기간이 더 길었음에도 혼자 인 밤은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다. 

함께 잠들 때 수면에 방해만 되던 그의 코고는 소리마저 그리울 지경이다. 

이 지독한 고요가 싫다. 

칠흑 같은 어둠이 싫다. 


머릿속 어지러운 망상들이 나의 수면을 방해한다. 쉽사리 잠들기 틀렸다. 

몸을 일으켜 침대 옆 수면등을 켠다. 방안 천장위로 수많은 별빛이 반짝인다. 

멍하니 불빛을 바라본다. 

온기가 없는 집, 컴컴한 암흑 속 혼자 누워있는 내가 서글프다. 

어미 양수에 들어앉은 아기마냥 온몸을 웅크린다. 얼굴을 타고 한 방울 눈물이 내려온다. 

문득 어린 시절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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